안철수, 안철수, 안철수... 주요 일간지, 인터넷 언론, 아침 시사 라디오가 모두 안철수로 뒤덮였다. 6일 있었던 박원순 이사와의 서울시장 단일화 때문인가? 그렇다고만 생각하기에는 박원순 이사의 이름이 너무나 보이지 않는다. 역시 가장 큰 이슈는 안철수 대 박근혜의 양자대결 여론조사 결과다. 두 가지 여론조사에서 둘 다 오차범위 내로 안철수 교수의 승리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탈정치의 정치니 기존 정치세력의 반성이니 이런 말은 일단 다른 평론가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이로 인해 벌어질 정치적 상황을 예상하고 이해하는 것이니 말이다.

'1등'이라는 사실이 흔들리게 된 박근혜

일단 여권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해보자. 9월 7일자 CBS 라디오 뉴스쇼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반응을 보면 상황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안철수 현상은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라면서 '한나라당으로서는 1급 태풍경보가 켜졌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전 대표를 바짝 추격하거나 따돌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도 말했는데, 이미 그 시점에 여론조사는 그가 말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 박근혜 의원
당 내에서 친이계 내지는 소장파로 분류되는 원희룡 최고위원의 이 반응은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 이 상황이 갖는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들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친이, 친박이 나눠 암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실은 특히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제2, 제3의 안철수가 친이계 대선후보 정도의 중량감을 가지게 되기만 하면..' 이라는 전제가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반응을 예상해보아도 여권의 이런 움직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국민들 역시 '박근혜 전 대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표가 흔들리지 않는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아닌 그가 '1등'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던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은 가랑비에 옷 젖듯 계속 빠질 수 있다.

이러한 기회를 친이계가 놓칠 것인가? 그들의 봉기를 억누르고 소장파를 항복시킨 것은 순전히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항마로 실질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힘의 원천은 누가 뭐래도 국민의 흔들리지 않는 지지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바뀐다. 그렇지 않아도 친이계 정치인들 앞에 놓인 길은 험난한 탄압의 가시밭길이었다. 그들로서는 이 어려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마침 반(反)박근혜의 구심점 이재오 의원도 당에 복귀했다.

만약 서울시장 후보 선출 등의 국면을 지나며 여당 내 계파 갈등 상황이 부각된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원희룡 최고위원이 '홍준표 대표는 외부인사 영입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나경원 최고위원이 출마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 결국 박근혜 전 대표가 거부감을 갖지 않을만한 인사를 내보내느냐, 아니면 계파전쟁의 전초전에서 일익을 담당할 사람이 나오느냐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칼 빼들었지만 머쓱해진 정동영, 천정배

이제 야권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야권 입장에서는 그림이 상당히 곤란해졌다. 여기서는 안철수가 박근혜를 이겼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박원순 이사와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 상황도 중요한 요소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당내 계파갈등을 초래하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잠시 정리해보자. 천정배 최고위원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은 정동영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내 비주류의 당권투쟁 선언과 같은 것이었다. 이 국면에서 손학규 대표를 흔들고 2012년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런 시나리오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손학규 대표 입장에서도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권으로 가는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포인트였던 것이 분명하다. 박원순 이사라는 카드로 야권연대를 모색하고 수도권에서 성과를 내 '수도권을 잡을 수 있는 손학규'로 확고히 자리매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천정배 최고위원과의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이 상황을 한방에 해결해 버렸다. 안철수 교수 입장에서는 상대가 박원순 이사였기 때문에 단일화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지 한명숙 전 총리였다면 이런 행보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때 안철수-박원순 단일화의 공은 순전히 안철수 교수의 결단에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한다면 천정배 의원이 모처럼 빼든 큰 칼은 갈 곳을 잃는다. 그가 박원순 이사를 비토할 수 있었던 근거는 '서울시장 선거를 손학규 대표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냐?' 였는데 이제 그런 포인트는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박원순 이사 자체를 공격하자니 박원순 이사가 가지는 야권에서의 상징성이 만만찮다. 만일 박원순 이사와의 갈등 국면으로 가게 되면 정동영 의원이 그간 쌓아올린 '야권연대에 대한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이래 저래 곤란한 수다.

최소한의 방어만 한 손학규

▲ 손학규 대표
이에 반해 손학규 대표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방어는 할 수 있는 명분을 잃지 않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어쨌든 박원순 이사이기 때문에 안철수 교수를 범야권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그림을 만든 것은 이렇게 됐든 저렇게 됐든 손학규 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계산도 전부 무의미해지는 경우의 수가 있다. 그것은 박원순 이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한 방에 모두 같이 망하는 수가 벌어질 수 있다. 지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민주당 전략은 실제 민주당의 당적을 가진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인데 이런 판에 선거마저 지면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은 그야말로 붕괴되고 만다. 안철수 교수의 경우도 본인이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당선된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에 시달리게 되고 대권을 향한 스텝 역시 꼬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승패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여권이든야권이든 이 선거는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가 됐다. 그만큼 서로의 입장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어렵다. 1급 태풍경보는 원희룡 최고위원의 머릿속을 넘어서 정치권 전체에 울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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