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폭탄이 한 발 터진 모양이다. 오세훈 시장이 소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 유지를 연동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지난번 대선불출마 선언을 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모두 '그래도 설마…' 하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거는 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울만큼 배운 정치인들이 이해가 안 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보통 둘 중의 하나다. 첫 번째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소신을 객관적 판단에 앞세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범인은 생각하기 힘든 정치공학의 작동을 염두에 둔 경우다.

대선불출마 선언의 경우 후자로 판단할 수 있었다. 주민투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친박계 의원들을 끌고 오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직을 거는 이 상황은 오세훈 시장에게 유리한 정치공학이 작동하는 방아쇠가 되리라고 볼 수 없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렇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시장직 진퇴 여부 연계 방침을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당내에서부터 반발이 터져나온다. 홍준표 대표는 예정됐던 주민투표 독려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남경필, 정두언 의원은 각각 트위터를 통해 오세훈 시장의 기자회견을 비판했다. 친박계의 의중을 대변하는 유승민 최고위원은 이미 대선불출마 선언 이후 최고위원회에서 주민투표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을 피력했다. 한 마디로 지금 오세훈 시장의 결정을 잘했다고 얘기하는 정치인은 서울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몇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실마리는 오세훈 시장의 회견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오세훈 시장은 기자회견문에서 2004년 자신의 총선불출마 결정을 언급했다. 아마 특별히 이 사건을 이야기 하려 한 것은 이번 결정도 그것과 비슷한 차원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다.

오세훈의 2004년 총선불출마 선언은 정치공학으로 보면 그야말로 눈을 가리고 화살을 쏘는 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당시 초선 이었던 오세훈 시장은 한나라당 내부의 5, 6공 세력의 용퇴를 핵심으로 정치개혁과 공천혁명을 주장하며 불출마선언을 했는데, 단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라는 차원에서 득을 봤다. 이 결정이 지금의 서울시장 자리를 거머쥐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이번 결정도 이런 정도의 판단을 한 결과일 수 있다. 복지포퓰리즘에 맞서 보수의 정책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원칙을 밀어 붙이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취하고 행보를 길게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투표를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훨씬 더 큰 자산이 축적된다. 보수언론이 전하고 있는 바는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주민투표를 이길 수 있는 조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선불출마를 통해 친박계 의원들을 위한 길은 터주었다. 거기에 시장직을 걸면 서울을 지역구로 한 의원들을 끌어 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투표에 지고 오세훈 시장이 사퇴해버리면 그 이후에 이어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연히 민주당이 이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패배하는 흐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울시를 지역구로 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살려면 어떻게든 열심히 뛰어서 실제로 주민투표를 승리로 이끌어야만 한다. 그러면 한나라당도 살고 오세훈 시장도 산다. 즉, 서울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오세훈 시장의 기자회견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일종의 '협박'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당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세훈 시장의 행동은 내부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간의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 오세훈 시장이 대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범친이계로 분류되는 나경원 최고위원이 '오세훈 시장을 계백처럼 버릴 것이냐?'는 발언을 했고, 여기에 유승민 최고위원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근혜 대표 역시 '무상급식은 각 지자체 사정에 맞게 알아서 하면 된다'는 기존의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복지포퓰리즘과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보냈다. 범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 금이 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투표 결과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패배했을 경우의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구도에서 친박계와 소장파 의원들은 일제히 오세훈 시장을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오세훈 시장이 '자기 정치'를 위해 안 해도 되는 주민투표를 하고, 안 해도 되는 서울시장 사퇴를 하여 당에 큰 상처를 입혔다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파장이 총선까지 이어지면 대선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시장직 진퇴 여부 연계 방침을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던 중 무릎을 꿇고 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반대로 반박(反朴)의 입장을 갖고 있는 친이계 일부 인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 상황은 일종의 '틈새'일 수 있다. 즉, 주민투표 패배의 책임은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이 이것에 미온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유승민 최고위원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발언을 해버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통령도 입장을 얘기했다. 그러면 총대를 거꾸로 멘 것은 누구인가? 오세훈인가, 박근혜인가? 이런 물음이 가능해진다.

상황을 이렇게 파악하면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일정이기 때문에 친이와 친박의 이 파열음이 결국 공천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칠 수 있지 않겠는가?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거세질 수록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은 기억하기 싫은 2008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과민반응과 반발... 판이 어떻게 될 지는 눈만 감아도 동영상 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직 그런 예측까지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동안 내각에 있었던 친이계 거물들이 당으로 복귀를 하는 때가 가까워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런 시나리오가 그저 상상에 그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복귀 대상인 이재오, 정병국, 진수희 장관은 전부 수도권 출신 의원들이고 특히 서울이 지역구인 이재오, 진수희 장관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후폭풍에 관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들이 조용히 당의 화합과 박근혜 전 대표가 중심이 되는 정권재창출에 협력할 것인가? 두고 봐야 아는 문제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파국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당에서 제명하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개인의 정치적 야망에 당적 질서를 종속시키고 국회, 서울시, 서울시의회, 서울시민들을 모두 흔들고 있다. 지금 오세훈을 포기해야 한나라당 전체에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떠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여권의 '자중지란'은 한동안 계속되리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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