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미래통합당이 새 정강·정책에 TV수신료 폐지를 내건 가운데, 보수적 성향의 언론학자로부터 '한번 던져보는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비판이 나온다.

종편출범 과정에서 당시 통합당 전신 한나라당 추천으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 참여했던 황근 선문대 교수는 24일 중부일보 칼럼 <KBS수신료의 정치>에서 "어차피 소수 야당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KBS 수신료 폐지처럼 한번 던져보는 정치적 퍼포먼스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그 배경에는 방송을 정치적 도구나 전리품으로 보는 정치권의 낡은 인식이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13일 통합당은 새 정강·정책에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개혁'을 담겠다며 ▲TV수신료 폐지 ▲방통위의 실질적인 정치적 중립 담보를 위한 위원구성안 개편 ▲공영방송 이사회 정치적 중립성 확보 ▲공영방송 사장에 대한 대통령 임명권 폐지 ▲권력의 언론개입 사건 중대범죄 규정 및 공소시효 폐지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왼쪽부터) 미래통합당 김병민 정강정책개정특위 위원장,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윤주경 의원 (사진=연합뉴스)

황 교수는 "아마 야당에서는 KBS수신료 폐지 정책은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 수도 있고, 친정부 성향의 공영방송을 압박하는 효과도 기대했을 듯 싶다. 하지만 정치적 이득은 둘째 치고, 공영방송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라고 썼다.

통합당의 수신료 폐지 주장은 '공영방송의 정치예속화'라는 속성을 띄고 있고, 통합당이 이 같은 방식으로 공영방송을 압박하면 공영방송은 더 강한 정부 보호를 받기 위해 정권과 유착될 가능성이 높아져 방송이 정치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황 교수는 "만약 정치적으로 수신료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향후에는 공영방송이 생존을 위해 정권에 충성하는 일이 더 만연될 것"이라면서도 "야당의 KBS수신료 폐지 주장 역시 공영방송의 정치예속화라는 속성에서 별 반 다르지 않다. 집권 여당에 충성하는 공영방송의 돈줄을 끊어 압박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차라리 수많은 방송채널들과 인터넷 언론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데, 국민들이 거의 보지 않는 공영방송 자체가 필요 없다는 '공영방송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 그나마 나아 보인다"며 "물론 필자는 이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야당이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을 위해 공영방송 개혁을 주장한다면, 수신료 폐지가 아니라 공영방송 체제 개편방안과 합리적 재원구조 방안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어찌 보면 우리 공영방송을 이렇게 만든 주범은 여·야를 떠나 정치권과 모든 정치인들이라 할 수 있다"며 "국민들에게 정책정당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야당이라면, 집권하게 되면 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는 그럴듯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중부일보 8월 24일 <[황근칼럼]KBS수신료의 정치>

언론단체들도 통합당의 수신료 폐지 주장을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는 18일 공동성명을 내어 "KBS를 장악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것이 수신료 인상"이라며 "그랬던 통합당이 ‘수신료 폐지’를 정책이라고 발표한 것은 수신료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자, 내년 있을 보궐선거와 2년 뒤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방송장악 프레임을 씌우려는 뻔뻔함의 소치"라고 비판했다.

언론단체들은 "수신료로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통합당의 저급한 언론관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선포할 뿐"이라며 "말끝마다 ‘언론자유’를 외치는 미래통합당이 정말 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에 나타나는 정치적 후견주의를 없애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당은 근래 방통위원 추천과정에서 추천 몫 2명 모두를 자당 전직 국회의원 출신으로 추천, 정치적 후견주의를 강화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서는 직전 국회에서 정치권 추천 몫을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2018년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여야는 2019년 2월 임시국회까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개입이 만연했던 과거 보수정권 시절 언론장악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차악'책으로 발의됐던 박홍근 민주당 의원의 법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박홍근안'은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 있어 여야 7대6 비율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사장 추천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관행'인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추천 몫을 법에 명시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시민사회, 공영방송 구성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전 정부에서 '박홍근안'을 반대했던 통합당 전신 자유한국당은 입장을 뒤바꿔 이를 당론으로 고수했다.

통합당은 21대 국회 들어서도 '언론 자유를 담보하겠다'는 새 정강·정책과는 반대되는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통합당 과방위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통합당 정강·정책 발표 전후로 MBC를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하는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개정안, 정부 방송사업자 허가·승인 시 심사 계획을 국회에 사전보고토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모두 공영방송과 방송통신 주무부처에 대한 정치권 예속을 강화하는 법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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