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20.10.29 목 16:13
상단여백
HOME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EIDF 2020] ‘우먼 인 할리우드’, 할리우드 대표 여성 96인 출연보다 놀라운 사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8.25 18:49

[미디어스=이정희] 메릴 스트립, 지나 데이비스,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클로이 모레츠, 리즈 위더스푼, 산드라 오 등등.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이름을 들어왔고, 이름만이 아니라 이들이 출연한 영화를 기억할 만한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들이다. 이들 여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 바로 <우먼 인 할리우드>이다. 2018년 작품 <우먼 인 할리우드>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20) ‘여, 聲(성)’ 섹션에 초대되었다.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 96명이 출연했다 해서 화제가 된 영화. 하지만 그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아카데미상을 무려 3번이나 받은 메릴 스트립을 비롯하여, 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 '차별'받아왔다는 점이다. 누가 이 유명 배우들이 성차별로 인해 고통받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우먼 인 할리우드> 속 배우들의 발언으로 할리우드 영화 산업 내 차별은 현실감 있게, 그리고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아카데미 상 받은 여배우도 받은 차별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 이미지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이혼 법정에 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 현장에 여성은 메릴 스트립뿐이었다. 이혼 상황에 놓인 여성 캐릭터를 ‘남자’들이 고민했다. 메릴이 자신의 생각을 영화에 투영하려 했지만, 결국 영화는 남성의 생각과 감정선을 따라 흘러갔다. 돌아보건대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하여 화제가 되었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인기를 끌었던 건, 여주인공이 가정을 버린 상황에서도 아이와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였다. 

여배우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영화는 우리를 '부정'했다고. 여성들은 주로 욕망, 욕구, 욕정의 대상일 뿐이었다고. 여성을 통해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소수였다고. 

<델마와 루이스>로 이름을 알린 지나 데이비스의 경우 영화배우가 되어 했던 첫 촬영부터 '란제리'를 입고 촬영을 했다. 지나 데이비스와 세대가 다른 클로이 모레츠라고 다를까? 십대였던 그녀에겐 가슴이 작다고 '볼륨 브라'가 주어졌다. 심지어 <캐리>를 찍으며 초경 장면에서 남자 스텝들이 훈수를 두는 웃픈 상황이 발생했다.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이 이 산업의 핵심'이라는 농 아닌 농처럼, 여성은 '객체'였고 '타자화'되었고 주체성은 배제되어왔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호소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델마와 루이스>가 개봉되고 여성들이 이 작품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며 화제가 되자 이제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질까 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 데이비스는 스스로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젠더 연구소'를 차려 미디어 속 불평등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간 피상적으로 보이던 편견과 차별에 대해 '데이터'를 통해 접근하고 반박하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에서 흥행했던 100편의 영화 중 85%가 남성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다고 한다. 결국 남성들에 의해 남성들의 분노와 고뇌가 주로 작품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등장하는 데이터들은 차별을 명시화한다. 대부분 2018년 기준인 데이터들, 그럼에도 그 데이터 속에서 여성들은 차별받고 편견의 대상이며, 소외되어 있다. 

구조적이며 내재화된 차별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포스터

1980년대는 히어로물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80년대 영화 속 히어로들은 서부영화 속 히어로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과거 영화 속 히어로들을 답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공격하는 대상인 안티 히어로들과도 동일했다. 자신의 남성성에 도전하는 것들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었다. 

이런 '미디어'의 메시지는 그 메시지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결정하고, 그 메시지에 의해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확산된다. 미디어는 '남자들의 리그'였다. 여자들은 버림받는 애인이거나, 구조받는 희생자였고, 아름다워야 했다. 

할리우드 초창기는 지금과 달랐다. 무성영화 시절 <귀부인과 승무원>은 여성이 감독을 하는 등 당시 여성들은 감독과 작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커지며 음향기술이 도입되고 자본이 유입되자 부유한 지배층 남성들의 시각이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산업 전반에서 여성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이 팽배해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오스카 감독상은 2010년 캐서린 비글로우 단 한 명이었다. 역대 오스카 상 심사위원에 여성이 좀 더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라고 다큐는 묻는다. 심지어 주요 영화비평기관인 로튼 토마토 지수를 좌지우지하는 평론가들 중 77.8%가 남성이다. 2018년 할리우드 상위 250편 중 92%가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2017년 여주인공 중심의 영화는 38.1%에 불과했다. 여성에게는 흥행에 기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감독들에게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차기작을 9년 후에야 할 수 있었다. 감독은 전투적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여성 감독들의 입지를 줄인다. 심지어 여성 촬영감독은 더더욱 드물다. 여성감독, 여성 작가가 드문 할리우드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하는 건 당연히 어렵다. 

볼 수 있으면 될 수도 있다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 이미지

어릴 때 보는 미디어 속 성의 역할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내 미디어의 80%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유포해왔다. 이런 미디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지나 데이비스 미디어 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대표적인 작품 중 11편만이 소수자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배우 산드라 오는 처음으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여성의, 인종의 이야기를 다룬 <조이럭 클럽>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전한다. 분명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그걸 보는 여성이나 소수 인종이나 소수자들은 자신들이 가치 없거나 잘못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반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개봉된 후 전형적인 모습과 달리 강렬한 이미지로 등장한 공주의 모습, 그리고 같은 해 개봉한 <헝거 게임> 속 주인공으로 인해 양궁 수업을 듣는 여학생들이 105%나 증가했다고 한다. 

‘CSI 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드 CSI에 여성 법의학자가 등장하자 법의학을 배우는 여성의 비율이 증가했다. 그 결과 현재 현장인력의 절반이 여성이 되었다고 한다. 섹스 어필하지 않은 여주인공에 소수인종이 주인공인 <그레이 아나토미>의 등장 역시 쉽지 않았지만 파급력은 컸다. 

리즈 위더스푼은 150명의 남자 중 유일한 여자였던 현장의 기억을 떠올린다. 여성들에게 안전망은 없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건 위험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리즈 위더스푼은 '여성 혐오적'인 캐릭터를 두고 동료 여배우들과 경쟁하는 대신, 스스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작품화하기 위해 제작사를 차렸다. 그녀가 만든 작품들이 흥행하며 여성들의 이야기에 대한 지평은 넓혀졌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어도 흥행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80년대 유망했던 여성 감독들은 영화 현장에서 여성 권리의 확장을 위해 법적인 소송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런 여성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자발적 준수'라는 법적인 문턱을 넘어섰지만 효과는 미미했고, 정작 여성이 판사였던 연방 법원의 기각으로 좌절되기도 했다. 감독, 조감독, 제2 조감독으로 이어지는 영화계 내 위계질서에서 쉽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는 여성들. 세상의 절반인 그녀들의 존재처럼 영화 현장에서도 '반반'의 비율이 지켜지는 그날을 향해 <우먼 인 할리우드>는 목소리를 높인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디어평론가 이정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임진수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20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