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권력 이양과 관련해 일부 언론이 지난 5월 일단락 된 '김정은 건강이상설'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4월 CNN 보도를 무분별하게 인용, '김정은 인포데믹'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언론이 또다시 '코마상태' 등 근거 없는 성급한 보도를 내놓고 있다.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는 국가정보원이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김 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등 일부 측근들에게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여전히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실무적 차원에서 조금씩 권력을 이양하고 있다며 후계자를 결정하거나, 후계자 통치에 들어선 것은 아니라고 보고했다.

정보위 미래통합당 간사 하태경 의원은 위임 통치의 이유에 대해 통치 스트레스 경감, 정책 실패 시 김 위원장 책임회피 등의 이유를 들었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 징후에 대해서는 하 의원,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병기 의원 모두 보고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여러 첩보 등을 종합해볼 때 김 위원장 건강 이상 징후는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를 두고 21일 일부 언론에서는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국정원, 김정은 건강 이상 없다면서 "통치 스트레스 때문에 권한 넘겨">에서 "국정원 핵심관계자도 이날 본지 통화에서 '김정은은 최근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가 가족력 등을 앓고 있는 점도 확인된다'고 말했다"며 "올해 서른여섯인 김정은이 최근 수해 지역을 직접 찾아 살펴보는 등 당장 통치하는 데 지장은 없어 보이지만 건강이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130kg의 체중, 흡연과 음주 등으로 심혈관질환·무호흡증·당뇨병 가능성을 언급하고 심장질환 가족력을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김여정이 일부 위임 통치" 北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에서 "그동안 북한에서 대남·대미·군사 문제는 최고권력자만 다룰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김여정이 전면에 나서 강경 메시지를 쏟아냈다"며 "김정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퍼지기도 했다. 여태 본 적이 없던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국정원은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은 부인했고, 김여정이 후계자로 정해진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수령 1인 절대권력 체제인 북한 특성상 '위임통치 중'이란 말이 나온 것부터가 전례 없는 '이변'에 해당한다"며 "'무오류의 화신'으로 떠받들어지는 북한 일인자가 '스트레스 경감 차원'에서 권력을 이양했다는 것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썼다.

SBS는 20일 '8뉴스'에서 "스트레스 경감 차원에서 업무를 분담했다라고 한다면 그게 바로 건강 문제"라며 "예전처럼 혼자서 다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면 권력을 나눠줄 필요가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SBS는 "올봄에 계속됐던 건강 이상설에 주목해볼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크게 아팠던 건 아니지만 경미한 건강 이상은 있었을 수 있다. 이것이 김 위원장 업무 분담으로 이어졌을 가능성, 이 부분, 우리가 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언론은 김 위원장이 회복불능의 코마상태(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장성민 세계와동북평화포럼 이사장의 주장을 옮기기 시작했다. 장 이사장은 지난 4월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에 대해서도 "의식불명 코마상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장 이사장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정은, 아직 회복 불능상태'라는 글을 게재했다. 장 이사장은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딱 두가지"라며 김 위원장이 병상이 누웠을 때와 쿠데타에 의해 실권을 했을 경우라고 주장했다. 최근 북한의 김 위원장 관련 자료들에 대해서는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했다. "지난 30년동안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 온 제 눈에 최근 김정은의 크고 작은 자료 사진은 모두 페이크(조작)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후 월간조선, 국민일보, 쿠키뉴스,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매일경제, 아주경제,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시사저널 등 상당수 언론이 장 이사장 발언을 전하는 중이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 4월 CNN발 김 위원장 신변을 둘러싼 '인포데믹' 파동을 연상하게 한다. 4월 20~21일, 데일리NK와 CNN이 김 위원장 시술설, 수술 후 중태설 등을 보도하자 국내 언론 상당수가 무분별한 인용과 해석을 통해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다. 여기에 장 이사장 "코마상태" 주장 뿐 아니라 탈북자 출신 통합당 태영호, 지성호 의원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 "사망 99% 확신" 등의 발언이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을 통해 사실처럼 번져 나갔다.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특이 동향이 없다", "수술·시술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4월 22일 종합 01면 <北의 심장이 이상하다>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인 이른바 '태양절' 행사에 2012년 집권 이후 처음으로 참석하지 않으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찌라시'가 돌면서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증폭됐다. 이 찌라시에는 '김 위원장이 뇌사 상태에 준하는 심각한 상태이나 사망한 것은 아니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는 불가능하다', '김여정이 명목상의 지도자로 표면에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시안게임 중 방한한 북한 실세 3인방이 현재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통합진보당 최고지도부와 예전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이 동요상태' 등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해당 찌라시는 2014년에 나돌던 허위조작정보의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파장이 일자 '김정은 위독설'을 제기한 CNN은 발을 뺐다. CNN은 4월 22일 '김정은의 건강에 대한 혼란은 왜 타당한가'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북한에서 최고 수준의 기밀 중 하나로, 이런 환경에서 '소문'과 '오보'는 거의 불가피하다고 했다. 또 데일리NK의 보도를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고, 북한에 대한 정보, 그 중에서도 북한 지도자를 둘러싼 정보는 엄격히 통제되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위한 정보 수집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후 5월 1일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소식을 알리면서 건강이상설이 일단락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