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31일 비를 맞으며 최근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본 서울시 서초구 남태령 전원마을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호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소문의 진원지는 또다시 호남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된 '박근혜의 입' 이정현 의원이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근혜 의원의 본격적인 정치활동이 임박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후 스스로 '잘못된 표현이었다'는 언급을 하긴 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최근 행보가 본격적인 대선 준비를 전제로 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최근 폭우와 수해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몇 가지 감각있는 '준비된' 코멘트는 이러한 예측을 더욱 신빙성 있는 것으로 만든다.

박근혜의 컨텐츠는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갖는 자연스러운 의문은 '도대체 어떤 콘텐츠를 들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것인가?' 일 것이다. 답은 어느 정도 나와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같은 패러다임이나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 같은 법안 발의 등으로 미루어 보면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와 같은 중도적 스탠스를 취할 것임이 거의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가 워낙 우파적으로 완고한 정책을 펼쳤다는 이미지가 강해 이에 대한 반발을 자연스럽게 지지로 수렴시키면서 야권의 공세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포석이다.

다시 말하자면 박근혜의 이러한 전략은 야권에 새삼스러운 고민을 안겨줄 수가 있다. 국민의 다수가 박근혜 전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정권교체'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전 대표를 하나로 묶어 비판하고 이를 차별화의 주요 근거로 삼아 전선을 형성하는 식의 방법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박근혜 전 대표의 '중도 전략'이 민주당의 그것과 일치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구도가 고착된다면 결과적으로 야권 전체가 박근혜 전 대표와의 차별화에 실패하여 대선에서 패배하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도 무리한 얘기는 아닐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급등하고 있는 물가 문제에 대한 양측의 대안을 검토하면 보다 잘 드러난다. 거의 몇 개월째 물가 안정 대책에 대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여야의 주장을 들어보자.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물가 급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했다. 첫째, 기준금리를 4% 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 둘째, 저소득층에 정책금융을 통한 저금리 대출을 실시하고, 셋째, 유류세를 인하하여 유가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당 등의 야권과 그동안 정책적 보조를 갖춰온 전문가 집단에서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위 진보적 경제학자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상 동일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물가관리 방식은 전혀 효과가 없으니 금리를 인상하고 시중은행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저금리대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6공화국 시절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경제수석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는것 같다.

박근혜와 구별 안 되는 민주당의 경제 정책 기조

그런데 문제는 한나라당의 반-박근혜 진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계파가 이와 동일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제교사로 유명한 이한구 의원은 이미 작년 말부터 정부의 물가대책을 질타하며 기준금리의 인상과 고환율 정책의 폐기를 주장해왔다. 친이계로 분류되며 한나라당의 경제통으로 알려져 있는 나성린 의원의 경우 최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정부 정책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앞서 언급한 견해들과 큰 차이가 없는 인식을 드러냈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현상일 수 있는데, 그건 지금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주류 경제학에 정통한 이들의 입장에서도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 측과 민주당 주류가 근본적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같은 철학적 기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다.

일례로 김종인 전 경제수석의 말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자신이 경제수석이던 시절의 업적을 언급하면서 '물가 상승률을 9.9% 까지 용인했고 시장원리에 가격결정의 흐름을 맡겨 이후 물가 안정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언급을 했는데,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관치를 하지 말자'는 불평의 일종인 것으로 '시장원리에 맡기면 저절로 최적의 균형이 맞춰진다'는 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경제 관료를 크게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그래도 허용하는 측과 국가의 모든 개입을 혐오하는 측으로 나눌 수 있다면 김종인 전 경제수석의 경우는 아마 둘의 가운데 정도에 위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6공화국에서 경제수석을 하고도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을 했던 것인데, 어쨌든 문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허용하는 모피아들이 한나라당에 친화적인 반면 국가의 모든 개입을 혐오하는, 시장원리에 충실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경제 관료들이 민주당에 친화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얘긴 여러 차례에 걸쳐서 했기 때문에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나 분명한 것은 물가 안정에 대해서 민주당에 친화적인 경제 관료들은 이보다 더한 인식을 가질 것이라는 거다. '물가 안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물가 급등을 시장원리에 따라 방치하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물가 안정에 대한 견해도 다시 정립해야 할 것이다.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단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체질의 문제다.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대외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조성되면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를 통해 조성된 세계적 과잉 유동성과 이에 따른 투기자본의 유입은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구조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것은 금리조정과 환율개입이 오직 물가안정만을 놓고 판단될 수 없는 한 이유가 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이 내수 중심의 튼튼한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호를 10년간 외쳐도 소용이 없는 현실은 내수 중심의 튼튼한 경제 구조를 사실상 이 자들은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내수 중심의 튼튼한 경제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의 실질적인 구매력이 상승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물론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지만 최소한의 국가적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이 중에서도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것이 특히 중요한데, 오늘날 가계부채가 천문학적 규모에 이르고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게 된 핵심적인 연결고리 중 하나가 부동산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담보 대출일 것이고 빚내서 집 산 이들은 금리의 변동에 따라 언제 자기 빚이 늘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유연화 등의 정책으로 불안정 노동에 내몰리게 되자 원금 상환은 꿈도 못 꾸고 이자만 간신히 상환하며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불안을 바탕으로 금융 산업이 유지되고 이 덕에 기업이 돈을 꾼다. 우리나라의 경제 체제는 대내적으로 부동산 의존적 경제라고 평해야 하는 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정책 금융이 결국 변칙적 방법을 통해 부동산에 대한 담보 대출로 연결될 경우 더 큰 해악으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큰 기대를 갖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유의미한 차별화를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혁신적인 큰 그림을 내놓아야 하고 그것은 이러한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지금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여겨져 온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 지금처럼 사실상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없으면서 오직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을 욕하는 방법만으로는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