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기자협회보’에서 기자협회장에 의한 편집권 침탈 의혹이 제기됐다. 기자협회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조건부 재승인 결정 관련 기사에 대한 TV조선 기자협회지회의 입장을 넣을 것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분회는 29일 성명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기자협회장에 의한 편집권 침탈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사건을 발행인의 자격을 내세워 편집국장을 굴복시키려 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까지 간섭해 편집권을 침탈한 것으로 규정하며 기자협회보 역사에 다시 없을 치욕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2일 발행된 기자협회보 1981호 1면 머리기사와 만평

지난 22일 발행된 기자협회보 1981호 1면 머리기사 <방통위 “이번이 마지막”…TV조선, 11가지 조건 달아 3년 재승인>이 사건의 발단이다. 언론노조 기자협회분회의 성명을 종합해보면, 해당 기사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TV조선지회는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TV조선 소속인 한국기자협회 수석 부회장은 사퇴를 거론했으며 1982호 마감일인 29일 오후 TV조선지회가 작성한 입장문이 편집국에 전달됐다.

TV조선지회는 입장문에서 22일 발행된 기사와 같은 날 실린 만평을 지적하며 “TV조선과 채널A의 재승인을 취소했어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고 했다.

29일 발행된 기자협회보에 실린 TV조선기자협회지회 입장문

하지만 기자협회보 편집국은 1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TV조선지회의 입장문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사에 명백한 오류나 왜곡이 없고 TV조선지회의 입장문이 인상비평 수준에 머물렀다는 판단에서다. 편집국장은 이러한 결정을 TV조선지회장에게 전달하고 개인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같은 날 밤 11시 경 김동훈 기자협회장이 편집국장을 불러 TV조선지회의 입장문을 반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기자협회분회는 “‘아니, XX. 이게 뭐라고’라며 욕설까지 섞어가면서 편집국장을 다그치는 소리가 협회장실 문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며 “그 후로도 회장은 한 시간 넘게 편집국장을 몰아세웠다”고 전했다. 결국 편집국장은 ‘마감과 신문 발행을 위해’ 회장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 TV조선지회 입장문이 29일 발행된 신문 2면에 실렸다.

언론노조 기자협회분회는 “기자협회보는 한국기자협회의 기관지인 동시에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 비평지”라며 “주 독자인 회원과 회원사의 합리적이고 타당한 비평에 대해선 겸허히 경청하고, 반론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회원이니까’ ‘회원사니까’라는 이유로 모든 문제 제기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순 없다”고 규탄했다.

특히 “국장 책임하에 편집국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사안에 대해 회장이 내용과 방식까지 일일이 결정하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편집권 침탈”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회장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의견 개진’ 정도가 아닌, 납득 가능한 수준의 설득이나 회유 차원이 결단코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언론노조 기자협회분회는 김동훈 협회장에게 기자들이 요구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공개 사과할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향후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서면으로 약속할 것을 촉구했다. 편집국장에게는 편집국 기자들과 논의 끝에 정한 결정을 번복하고 편집권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하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동훈 회장은 “언론매체는 반론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편집국장과 TV조선의 반론 또는 입장문을 싣기로 했는데, 어젯밤 갑자기 못 싣겠다고 해서 실랑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편집국장에게 욕설을 했냐는 질문에는 "욕설한 적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기자들의 사과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자 김 회장은 "기자협회보는 저널리즘 비평지와 협회보의 성격이 혼재되는 데서 오는 갈등이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었으며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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