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익명보도와 관련해 KBS는 문서화된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보다 경험에 따라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한다”

“KBS 익명 취재원 소속은 행정부와 기업에 집중됐다. 기자와 취재원 간의 사회적 관계 유지 또는 취재 편의주의 동기가 작용한 결과다”

“출입처 의존도가 높고 관급뉴스 비중도 상당한 한국 언론계의 전반적인 취재환경이 부분익명을 포함한 익명 보도 비중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KBS의 익명보도 비율이 BBC보다 높고, KBS가 관행적으로 익명보도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도국 내부 관행, 구체적 가이드라인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오해정 이화여대 박사과정(MBC 기자)·김경모 연세대 교수는 “취재원 투명성 확보는 기사 품질 개선과 신뢰도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2월 한국언론학보에 “공영방송 TV뉴스의 익명취재원 이용 : KBS <뉴스 9>와 BBC <10시뉴스>의 비교 분석”을 게재했다. 논문은 KBS와 BBC 메인뉴스의 익명취재원 활용을 비교분석한 내용이다. 비교 대상은 KBS 14일 치 리포트 253건, BBC 10일 치 리포트 76건이다. 리포트 시점은 2018년이며 주 구성 표집(constructed week sampling) 방법이 사용됐다.

(사진=Pixel perfect)

익명취재원을 사용한 KBS 보도는 76건(30%)이었다. 반면 BBC는 10건(13.2%)에 그쳤다. KBS 뉴스에선 총 112회의 익명취재원이 등장했고, BBC에선 16회였다. KBS에 등장한 익명취재원 50%는 일반서민이었고 중간관리자가 18.1%로 뒤를 이었다. BBC는 범죄관련자 45.5%, 일반서민 36.4% 순이었다.

부분 익명취재원(소속 조직이 드러나는 익명취재원)의 경우 KBS는 중간관리자 60%, 고위관리자 15% 순이었다. BBC는 고위관리자와 중간관리자가 각각 2건이었다. 연구팀은 “KBS 기사 중 중간관리자 부분 익명이 눈에 띈다”면서 “기자가 주로 접촉하는 취재원이 행정부 국·과장급이나 기업체 부장급이라는 출입처 취재 현실과 연계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전체적으로 보면 BBC가 사회권력층 취재원의 익명 처리를 훨씬 엄격하게 제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밝혔다.

KBS의 부분 익명취재원 소속 조직은 행정부 37.5%, 기업 22.5%였다. 완전 익명취재원 소속 조직은 일반서민 58.3%, 기업 18.1%다. BBC의 부분 익명취재원 소속은 경찰·검찰·법원 관계자 2회다. 완전 익명취재원의 경우 일반인 비중이 81%였다. 연구팀은 “(BBC의 일반인 완전 익명취재원 비율이 높은 것은)취재원 신변 보호와 사인의 인격권 침해를 방지하는 조처”라면서 “BBC에서 정부관계자는 실명 처리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KBS의 익명취재원 소속 분석 결과에 대해 “사회적 관계 유지·취재 편의주의가 동기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연구팀은 “부분 익명 처리의 경우 행정부와 기업관계자의 상대적 비중이 높았다”면서 “소속 조직만 노출해 정보출처의 투명성을 적당한 선에서 보장하면서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이 조직 내에서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출입처 기자와 취재원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일종의 묵계가 관행처럼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기사 내 익명취재원의 역할을 분석했다. KBS 뉴스 내 익명취재원은 이해당사자 입장·주장 전달(42.9%), 현장성 인터뷰(21.4%), 사실 전달(17%), 목격담 제공(9.8%) 역할을 했다. 현장성 인터뷰는 특정 사안과 관련해 주변인이 정황을 말하는 경우다. BBC는 주로 사실 전달(37.5%), 목격담 제공(31.3%)에 익명취재원을 이용했다.

연구팀은 “KBS는 주변인이나 일반 시민의 즉흥성 인터뷰를 익명으로 녹여 기사 현장감을 살렸다”면서 “정보 가치가 떨어지는 익명 인터뷰도 있었다.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원을 접촉하려 애썼다는 정황을 알리려는 목적 외에 딱히 이유를 찾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BBC (사진=연합뉴스)

연구팀과 인터뷰한 KBS A기자는 “현장성을 중시하는 KBS 보도국 내부 분위기 때문에 익명취재원을 사용해서라도 기사의 현장감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A기자는 “기자가 어딜 갔는지 실제 현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생생하게 녹취해서 전달하려는 취지가 있으므로 익명을 많이 써서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하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익명취재원 사용이 기사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일반의 우려와 달리, 일선 기자는 익명취재원을 이용해 한 건의 인터뷰라도 더 싣는 것이 오히려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KBS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BS가 취재원 익명처리 이유를 밝힌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BBC는 2건의 보도에서 익명처리 이유를 밝혔다. “빈곤층 여성 2명이 익명을 요청했다”, “사건 당시 목격자가 익명을 요구했다” 등이다.

A기자는 1분 30초 분량의 방송뉴스 포맷을 이유로 꼽았다. A기자는 “데일리뉴스는 분, 초를 다투는데 리포트에서 익명취재원을 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두 문장, 세 문장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저널리즘 원칙을 따르자면 익명 취재의 타당한 사유를 기사에서 밝혀야 한다”면서 “KBS 보도국은 시청률 때문에 짧은 리포트를 연이어 방송하는 ‘백화점식 뉴스’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2016년)은 익명 취재에 대한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KBS는 “책임 있는 보도를 위해, 단순한 소문과 구별하기 위해, 오보나 정보 조작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 취재원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KBS는 ▲시청자에게 정보의 중요성이 매우 크고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주요 사안 ▲취재원 신변이 위태로울 경우 ▲범죄관련자(피해자, 피의자, 목격자 등) ▲심신장애자나 청소년 관련 반사회적 이슈에서 익명 보도를 허용한다.

KBS는 지난해부터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외에 별도의 ‘익명보도 체크리스트’를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KBS는 올해 1월 초에 보도본부 국주간단 회의와 부장단 설명을 거쳐 정제된 체크리스트를 전체 기자들에게 공유해 시행했다.

BBC는 엄격한 익명취재원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BBC는 “에디터는 익명취재원 신원을 알 권리가 있고, 단일 익명취재원에 출처를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나 기사의 주요 기여자를 익명 처리하려면 반드시 프로그램의 법률 담당자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KBS 사옥 (사진=KBS)

연구팀은 “BBC는 익명취재를 제한하는 조직문화를 지녔다”면서 “BBC는 신입 기자를 대상으로 익명 취재 관련 가이드라인을 외우도록 훈련하고 기자도 취재 현장에서 가이드라인을 가장 먼저 참고한다”고 했다.

연구팀은 “공익 목적, 오프 더 레코드 상황, 취재원 보호를 위한 취지라면 익명 보도를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KBS 뉴스에선 규정상의 타당한 목적과 인권 보호 취지를 넘어 취재 편의나 제작 관행에 따라 익명 취재하는 기사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익명취재원은 ‘사실의 투명성에 기초한 진실 추구’라는 저널리즘의 윤리 덕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결과적으로 KBS 보도국에선 현장성 가치와 제작 관행에 밀려 가이드라인의 익명 제한 규정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면서 “익명 허용 원칙과 목적을 벗어나는 다수의 보도 사례는 엄격하게 작동하는 승인 절차 없이 경험에 따라 그때그때 편의적으로 익명 대처한 결과로 보인다. BBC에선 이 같은 문제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수정

보도 후 KBS는 미디어스에 아래와 같은 입장을 보내왔습니다.

KBS는 이미 지난해부터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외에 별도의 ‘익명보도 체크리스트’를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 올해 1월 초에 보도본부 국주간단 회의와 부장단 설명을 거쳐 정제된 체크리스트를 전체 기자들에게 공유해 시행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치를 토대로 일상의 보도에서 관행적인 익명보도의 비중을 줄이고 취재 보도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당 논문에서 조사 대상으로 특정한 KBS 뉴스의 방송 기간은 논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대로 2018년입니다. 이는 현재를 기준으로 최소 1년 4개월에서 최대 ‘2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시점입니다. KBS는 관행적인 익명보도를 지양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익명보도 체크리스트’를 별도로 마련해 일상 보도에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실제로 정부당국자나 기업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관행적인 익명보도 행태는 KBS 뉴스에서 많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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