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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 ‘5無’보다 반짝이는 공통점, 선함의 연대로 따로 또 같이![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4.03 13:02

[미디어스=이정희] 6%대(6.325% 닐슨코리아 케이블 기준)로 시작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이 4회 9.8%를 기록, 매회 상승하며 순항 중이다. 이른바 '워노 매직'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주 1회, 한 시간 반 정도의 방영 시간.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시도다. 밤샘 촬영 강행군이 다반사인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사전 제작에 주 1회 방영 시도는 순조로운 시청률로 보건대, 작품이 좋다면 시청자들은 언제나 기다려 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신선한 시도와 구성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선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3회, 오랜만에 외국에서 돌아온 이익준(조정석 분)의 아내는 반가워하는 남편이 무색하게 병원으로 찾아와 이혼을 요구한다. 여느 드라마라면 어떨까? 아마도 익준의 이혼 소재만으로 한 회차를 충분히 우려먹을 것이다. 심지어 외도의 소지가 있는 아내의 이혼 요구는 친구들에 둘러싸인 익준의 에피소드를 얼마든지 구구절절 애달프게 풀어낼 수 있다. 김희애 주연 <부부의 세계>가 수직 시청률 상승은 물론, 세간의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이혼을 둘러싼 갈등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효자' 아이템인가는 새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지만 웬걸. 4회, 계절이 바뀌고 어느새 익준은 서류상으로도 ‘돌아온 싱글남’이 되어 있었다. 가정에 대한 애정이 식은 아내를 아이 알러지조차 챙기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풀어냈던 <슬의생>은 4회, 엄마가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 자신도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는 익준 아들의 덧난 상처 같은 한마디로 '이혼'의 잔상을 담는다. 그렇게 이혼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그걸 겪어내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며 소재주의를 넘어선다. <슬의생>는 이렇게 '사람', '인간미' 넘치는, 그들의 사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4회차에 들어서며 그간 심할 정도로 마마보이의 모습을 보인 양석형(김대명 분)의 사연이 밝혀지며 주연 5명 이익준, 양석형, 안정원(유연석 분), 김준완(정경호 분), 채송화(전미도 분)의 캐릭터 소개가 마무리되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거나한 신입생 환영회를 피해 창고 안에 숨어들었던 5명의 친구들. 그리고 이제 어느덧 노안이 오고, 입맛이 변하고, 꽃이 예뻐지는 마흔 줄이 될 때까지 그들이 여전히 '친구'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정의 조건, 좋은 사람들 

<슬의생> 주인공 5명의 우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같은 직업을 가져서? 함께 밴드를 해서? 대학시절부터 이들을 보아왔기에 이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하는 응급실 봉 선생은 이들의 공통점을 '없는 것'이라고 한다. ‘5無’, 싸가지가 없고, 쉴 틈이 없고, 사회성이 없고 등등 저마다 하나씩 없는 것이 있어서. 그게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에 이르며 5명의 캐릭터를 소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이들 다섯 명이 모두 과는 달라도, 그리고 드러난 면만 본다면 싸가지가 없거나 무뚝뚝하거나 일만 하게 생겼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 아니었을까. 

클럽 죽돌이임에도 수석은 따놓은 당상이었다던 이익준이야 말할 것도 없다. 병실 침대를 고쳐주는 의사, 수간호사가 밥 못 먹는 걸 배려하여 퇴근도 마다하고 자질구레한 병실 수발을 들어주겠다는 의사, 그게 이익준이다. 도시락을 준비한 인턴을 배려하여 선배 의사의 밥투정을 입막음해버리고, 주변 사람들이 의심할 정도로 장겨울의 외사랑을 지원해주는. 잔정 많기로야 이익준을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그의 이혼도 공부하러 간 아내 대신 아들을 키우며 이곳에 오래도록 떨어져 있다 생긴 불상사다. 

그렇게 그 누구에게나 친절한 이익준의 맞은편에 김준완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싸가지가 없는’ 의사. 그 싸가지 없음은 환자 보호자건 인턴이건 레지던트건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공평'하다. 하지만 그렇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김준완은 알고 보면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 딸 결혼식을 앞두고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할 처지의 아버지. 환자와 가족들에게 냉정하게 잘라 말하던 김준완은 정작 아버지도 못간 딸의 결혼식에 제일 먼저 찾아가 인사를 한다. 심장 수술을 앞둔 미숙아의 어린 부모에 대한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어린 엄마의 눈물을 품어준 것 역시 김준완이다. 채송화의 실연도, 양석형의 가정사도, 언제나 제일 먼저 마음 쓰는 사람은 김준완이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준완 못지않게 사람들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석형이다. 친구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와도 함께 있으면 불안해하는 사람. 도대체 이토록 사회성 없는 사람이 어떻게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가 됐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4회에서 무뇌아를 출산하는 엄마의 에피소드를 통해 뚱한 석형이 알고 보면 얼마나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인가를 드러낸다. 

어렵사리 열 달을 품었지만 함께할 수 없는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의 트라우마를 배려하여 음악을 크게 틀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려는 의사. 그리고 출산 후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산모에게 '최선을 다했다'며 위로하는 석형은 그 하나의 이야기로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아버지의 외도와 여동생의 죽음, 어머니의 병을 한꺼번에 겪으며 '마마보이'가 되어버린 모습에서 더욱 석형이라는 사람의 '찐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안정원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장래 희망이 신부여서, 매해 신부가 되기 위해 신청서를 넣는 정원. 하지만 그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헌신적이다.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당장 병원비가 없어 수술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그는 4회에서, 이제는 월급까지 탈탈 털어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다. 돈뿐인가. 친구들이건, 함께하는 전문의이건 그들이 먹는 칼국수건 초콜렛 간식이건 어느 틈에 그는 '남들'의 부족함을 챙긴다. 물론 편한 친구들 앞에서 자신은 못 먹었다 앙탈을 부리지만 '배려'가 몸에 뱄다는 건 정원을 정의하는 데 가장 정확한 말이 아닐까 싶다.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런 정원의 친구가 아니랄까봐, 채송화는 응급실에 들어온 외국인 환자가 당장 수술비가 없어 퇴원하겠다고 하자 솔선수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키다리 할아버지'를 수소문한다. 

이런 식이다. 드러난 성격이야 까칠하기도 하고 대인기피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좋은 사람들, 법 없이도 살 사람들. 결국 '휴머니즘'의 기본을 갖춘 정서가 이들 다섯 명을 오래도록 '우정'이라는 울타리로 묶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석형의 수술에 밥을 거르며 찾아와 대기하는 정원처럼, 그들은 늘 그렇게 ‘선함의 연대’로 따로 또 같이 친구로 살아왔을 것이다. 

<슬의생>은 결국 이렇게, 다섯 주인공들의 선함을 기반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살다 보면 생로병사, 이별도 겪고 죽음도 겪게 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 건 결국 선한 의지, 그 선함을 가진 사람들의 기운이 아닐까라고 <슬의생>는 매회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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