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는 모든 대학, 모든 학과가 서열화되어 있다. 대학입학 수능시험 점수가 한 줄로 세운다. 법과대학은 사법고시 합격자수에 따라 더 분명하게 줄서기가 이뤄진다. 그런데 그 서열를 재는 또 다른 기준이 생겼다. 그것은 로스쿨이다. 인가가 났느냐 정원이 몇 명이냐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판이다. 그 까닭에 대학마다 가두시위에 나서고 법정투쟁을 벼른다.

대학들이 서열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사활을 걸고 투자했다. 교수들을 스카웃하고 시설투자에 많게는 수백억원씩 들였다. 인가조건에 맞추려고 학생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탈락대학들은 시설활용도 문제지만 당장 새로 충원한 교수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심각한 고민거리다.

▲ 한국일보 2월25일자 10면
인가받은 25개 대학 역시 불만이 많다. 인가기준이 132가지라지만 사법시험 합격자수보다 더 큰 잣대는 없을 것이다. 2003∼2007년 4년간 서울대가 34%를 배출했는데 정원은 150명만 배정받았다. 배출비율이 0.1%인 충북대의 70명에 비해 2배 조금 넘는 수준이다. 경북대는 1.8%, 전남대는 1.6%인데 16.6%를 차지한 고려대와 같은 120명이다. 지역균형발전이란 설명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다양한 법률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원을 2,000명으로 족쇄를 채우는 이유가 뭔가? 현재도 사법시험 합격자가 해마다 1,000씩 배출된다. 로스쿨을 마치고 보는 변호사 자격시험에서 탈락자를 고려하면 공급측면에서 달라질 게 없다. 교육부는 설치기준만 제시하고 정원은 대학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정원을 신청인원의 절반으로 줄이니 대학마다 반발하는 것이다.

로스쿨이란 미국식 법학교육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영어로 로스쿨이라고 쓰는 것도 우습다. 법학대학원이란 번역도 적확하지 않다. 대학원 과정이나 법학연구보다는 법무행정을 주로 공부하니 법무대학원이란 표현이 옳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3년간 법률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간적-경제적 낭비다.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다. 웬만한 봉급생활자는 자녀 대학 보내기가 버겁다. 1년 동안 아르바이트 해봐야 한 학기 등록금 내기도 어렵다. 그 까닭에 대학에 휴학생이 많다. 그래도 사법시험은 대학재학중 합격자가 많다. 이제는 학부 4년 마치고 다시 3년 동안 로스쿨에 다녀야 변호사 길이 열린다.

수업료를 1,000만∼2,000만원선에서 책정할 모양이다. 그런데 시설투자비와 교수급료를 감안하면 이 수준으로는 적자운영이 뻔하다. 결국 수업료를 크게 올리는 길 밖에 없다. 경영대학원 수준인 3,000만원대로 말이다. 미국에서도 부자가 아니면 로스쿨에 갈 꿈을 못 꾼다. 특별전형을 통해 장애인과 빈곤층을 선발한다고 한다. 이것은 귀족학교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대학에서 전공이 다른 학생들을 상대로 로스쿨 입학을 위한 수업을 별도로 하기 어렵다. 학원에 다니는 길 밖에 없다. 벌써부터 서울 테헤란로 일대에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는 로스쿨 학원들이 성업중이다. 법학적성시험과 영어, 학교에 따라서는 제2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 결국 대학 4년은 로스쿨 입학을 위한 준비기간이 되고 만다. 전공이 뒷전으로 밀려날 텐데 다양한 전문지식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한다니 헛소리다. 로스쿨에 따라 실력격차가 크니 변호사 자격시험에 붙으려면 또 학원에 다녀야 한다.

국가가 관리하는 대학수능시험이나 사법시험은 공정하다. 그런데 대학 수시입학이나 편입학에서는 부정입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적이 적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지원자의 출신대학과 전공이 다른데 학부성적을 어떻게 사정하느냐에 따라 정실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 구술면접이나 논술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앞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로스쿨을 통해 사법개혁을 이룩한다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 법조계가 기득권을 지키려고 담합해 정원을 묶다보니 이런 파행이 일어났다.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기회 불균형을 시정하고 기득권층에 의한 법조세습을 막기 위해는 증원이 필요하다. 법조계가 자질저하를 이유로 반대하는데 이는 시장이 해결할 문제다. 로스쿨은 부자를 위한 제도이다. 밥그릇을 지키려는 저급한 논리가 미국처럼 변호사 아버지, 변호사 아들 만들 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