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이 인터넷 루머를 진정시키거나 거르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사태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에 '나는 가수다 일본 열풍' 떡밥으로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나는 가수다>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란 게시물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덥석 기사화했다가 일본 네티즌의 조롱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의 게시글은 조작임이 뒤늦게 드러나서 기사가 삭제된 상태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런 걸 두고 국격훼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조금 화제가 된다 싶은 이슈가 있으면 덮어놓고 기사화하는 관행은 심각한 문제다. 네티즌과 언론이 이인삼각으로 사단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일이 커지면 언론에서 네티즌의 과열을 비판하는 칼럼이나 기사를 내놓는다. 코미디다.

루머를 확산시킨다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위험한 대중감정까지 덮어놓고 확산시킨다. 국가감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도 그렇다. 문제가 된 <나는 가수다> 관련 게시글은, 일본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를 보고 자신들에겐 왜 이런 가수들이 없냐며 한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평소에 일본이나 타국에 대해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고, 한편으론 타국 특히 선진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정확히 짚은 떡밥이었다.

이런 떡밥에 대중적인 폭발력이 있을 건 자명한데, 바로 그 폭발력을 노리고 언론이 덥석 물은 것일 게다. 이렇게 비뚤어진 국가의식이 담긴 내용을 단지 흥행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앞뒤 확인도 없이 기사화하는 것이 우리 언론의 수준인 것이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가 한국을 비웃었다는 루머가 나왔을 때는 대부분의 매체가 경쟁적으로 그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화하기도 했다. 대단히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함께였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마녀사냥하는 네티즌을 탓한다.

달아오르기 쉬운 국가적 정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보도태도는 단지 루머 보도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에 이승엽이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상대로 홈런을 친 후, 주니치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이건 루머도 아니고 아예 소설 수준의 기사였다. 어떡해서든 국가간 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병헌이 헐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을 했을 때는, 일본의 어느 한 사람이 블로그에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을 뿐인데 그것을 마치 일본 네티즌의 집단적인 반응인 양 침소봉대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뿐인가. 연예인은 공인이므로 국민의 알권리를 대행한다며 마구잡이식으로 사생활을 파헤치는 기사를 내놓기도 한다. 언론이 루머, 논란, 인권침해, 비이성적 대중행동의 온상이 돼가는 것이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부 매체의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크게 봐서 한국의 망신인 건 분명하다. 언론이 인터넷 집단여론의 확성기 역할을 해선 곤란하다. 언론은 인터넷 게시판 그 이상이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이번 '나가수 떡밥'이 짚어낸 우리의 알량한 무의식도 문제다.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재밌으면 우리끼리 재밌게 잘 보고 자족하면 그만이지, 왜 일본의 반응을 신경써야 한단 말인가?

''나가수' 대단하지? 대단하지? 너희 일본엔 우리처럼 엄청난 가수들 없지? 부럽지? 용용 죽겠지?'

이런 아이 같은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어느 네티즌이 만들어낸 떡밥이 한국인과 한국언론의 심부를 찔렀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