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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 앤 글로리’- 고통 속에서 잉태된 역설적 질문,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02.15 00:27

[미디어스=이정희]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감독작 <내가 사는 피부(2011)>,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그녀에게(2002)>, <나쁜 교육(2004)>부터 제작한 <클랜(2015)>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다양한 주제의식을 독보적인 방식을 통해 구현해 온 세계적인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늘 그해의 화제작이 되었고 새로운 화두를 제시해 왔었다. 

그러나 시간은 이 세계적인 감독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나이가 들었고, 병마가 그를 찾아왔다. 2019년 작 <페인 앤 글로리>는 바로 그 자신을 덮친 세월의 무게를 감독이 어떻게 극복해냈는가에 대한 '자기 고백서'이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을 막으려니 세월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세월을 이겨낼 수 없음을 단호하게 그려낸 이 한시, 그런데 세월은 그저 백발만을 얹어 오는 게 아니다. 머리만 하얗게 세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쇠락을 함께한다. 세계적인 감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페인 앤 글로리>는 극중 주인공인 감독 살바도르 말로가 얼마나 육신의 고통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의학적 설명으로 장황하게 서막을 연다.

영화를 못 찍는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없어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살바도르에게 세월의 무게를 얹은 육체적 고통은 그를 그로서 존재하게 하는 일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니 그렇다고, 감독은 생각했다. 육체적 강행군으로 이어지는 촬영장, 거기 앉아있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된 감독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자포자기한 채 스스로를, 시간을 좀먹어가던 그에게 그의 영화가 손짓을 해왔다. 과거 그가 만들었던 작품이 리마스터링되어 재상영되며 그와 주연배우였던 알베르토를 초대한 것. 자신의 디렉팅대로 연기를 하지 않았다 하여 시사회에도 초대하지 않았던 알베르토, 살바도르는 재상영회를 위해 본의 아니게 그와의 화해를 청하러 간다. 

자신의 디렉팅대로 하지 않았다 하여 주연배우를 부르지 않았을 정도로 괴팍했던, 아니 자신의 영화관에 철저했던 감독은 이제 시간과 타협한다. 그리고 그 타협은 그저 주연배우였던 알베르토와의 인간적 화해를 넘어 그가 오래도록 넘지 않았던 선을 넘도록 만든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으로는 두통과 불면에 이겨내지 못했던 그는 알베르토가 하던 헤로인에 취하게 된다. 

또한 약물로 인해 무뎌진 경계는 그로 하여금 저만치 밀쳐두었던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게 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알베르토가 그의 컴퓨터 속 작품으로 환기시킨 그의 사랑, 그가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스멀스멀 연기처럼 그를 감싸고 돈다. 

무엇이 나를 만들었나?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그곳에는 4년 전 돌아가신, 그토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으나 결국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있다. 어린 그를 데리고 아버지에게 달려간 젊은 어머니는 동굴 같은 집에 좌절하는 것도 잠시, 그 집을 남편과 아들과 함께 살아갈 그럴 듯한 '스위트 홈'으로 만들어 보려 애썼다. 그리고 거기엔 또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벌써 글을 떼서 동네 청년에게 글을 가르쳐 줄 정도로 똑똑했던 어린 날의 살바도르를 어떻게 해서든 학교로 보내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악착 같던 모성이 있었다. 

돈이 없어 학교에 보낼 수 없자 학비가 면제되는 신학교에라도 보내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신부가 되기 싫다며 뛰쳐나가던 어린 살바도르. 그러나 결국 신학교에 간 아이는 뛰어난 미성으로 학교 공부 대신 성가대의 솔로로 몇 년을 보냈다. 

영화는 살바도르의 환각을 통해 단편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올리며 감독의 지난날을 편집해 간다. 늙고 병든 현재와는 전혀 달랐던, 그 동굴 같은 집을 밝히던 어린 살바도르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가 환각에 취한 사이 그의 컴퓨터에서 알베르토가 발견한 그의 원고 '중독'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시절, 젊은 날의 사랑이 소환된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랑해서 놓아줄 수밖에 없었던 동성의 연인. 그 사랑의 방해물은 바로 지금 늙은 감독이 취해 있는 약물, 헤로인이다. 약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젊은 연인을 위해 여행도 해보았지만 결국 그를 약물이 없는 곳으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살바도르. 그런데 그는 젊은 연인이 약물에 탐닉하는 그 시간, 단 한번도 그에 대한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온전히 영화에 심취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만든 영화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관객들이 잊지 않는 명감독으로 만들었다. 

죽음의 체취를 맡으며 길어낸 삶 

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 이미지

태국 사람들은 '카핀 의식'을 통해 간접적 임사 체험을 한다. 하룻밤 동안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태국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관속에 들어가 보기, 유서 작성하기, 장례식 체험해 보기' 등을 통해 죽음에 대비를 해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태국의 카핀 의식을 하면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 과정을 통해 병이 낫거나, 묵은 업보가 해소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죽음을 대비한다는 것은 결국 아직 남은 삶에 대한 '화두'를 끌어안는 것이다. 

첫 장면 물 속에서 죽은 사람처럼 시작된 <페인 앤 글로리>는 결국 알모도바르 식 '임사 체험'이다.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감독, 살아있어도 살아있음을 절감할 수 없었던 감독은 한번도 미혹되지 않았던 약물에까지 손을 대며 삶의 나락으로 자신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마치 관에서의 하룻밤처럼 죽음과도 같은 약물의 나락에서 그는 가장 '사적인' 역사를 마주한다. 그를 살아오게 만들었던 어머니, 연인. 그들은 이제 그의 곁에 없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그에게 생생한 이야기로 남겨져 있다. 

늙고 병들고 지친 육신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샘솟는다. 어떻게든 아들을 교육시키려 했던 어머니의 악다구니, 자신을 한 편의 명작으로 남겨준 청년, 그리고 중독 같은 사랑 속에서도 불태웠던 영화에 대한 열정 등등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한 개인의 죽음으로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찬란했던 시절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에게 바쳤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그 명언을, 알모바도르 감독은 역설적으로 죽음의 체취 곁에서 마주한다. 그리고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찬란한 과거가 존재함을, 그래서 그가 살아있음을 비로소 수긍한다. 그 '수긍'이 병마에 짓눌렸던 그를 일으킨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 사적인 끄적거림이 알베르토의 연기를 덧입힌 1인극으로 되살아나듯, 병과 마주할 용기를 얻은 그는 촬영장으로 돌아온다. 그런 알모바도르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는 또 다른 삶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연예계와 대중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자합니다.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http://neodol.tistory.com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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