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던 4.27 재보선이 끝났다. 성적표를 받아든 여야의 상반된 표정이 이채롭다. 최종스코어를 확인해보면 민주당의 완승, 한나라당의 참패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여권, 참패 그러나 최소한의 명분은 건진 미묘한 결과?

▲ 이명박 대통령ⓒ연합뉴스
잠시 여권의 상황을 확인해보자. 애초의 전망은 한나라당이 분당에서 패배할 경우 친이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며 까딱 잘못할 경우 친박계에게 당권을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분당에서 강재섭 후보가 패배하고 김해을에서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김태호 후보가 승리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미묘해졌다.

왜냐하면 오히려 강재섭 후보를 지지했던 것은 친이-비주류 의원들이었고 친이-주류 의원들은 정운찬 등의 전략공천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태호 당선자는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이 끔찍이 아끼는 인재(?)다. 한나라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천당 아래 분당’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당장 수도권-소장파를 비롯한 중립지대 인사들이 흔들릴 것이므로 전체적인 재보선 패배의 책임 문제를 피해갈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마지막 명분은 가까스로 건진 셈이다.

물론 이 정도로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화와 한나라당 내 계파간의 권력투쟁, 분란을 제어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최소한의 각 계파 간의 권력분점이 불가능한 상태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냉정한 판단일 것이다.

김해을의 패배와 유시민 대표

▲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연합뉴스
여권에 대해서는 일단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다음으로 야권의 상황을 확인해보도록 하자. 눈여겨 볼 것은 물론 국민참여당의 패배다. 단일화 과정에서 봉하재단 김경수 국장을 ‘주저앉힌’ 사건 때문에 김해을 패배의 책임은 거의 100% 유시민 대표가 짊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그 지지자들은 김해을에서 민주당의 선거 보이코트 행위가 있었고 따라서 패배의 책임은 민주당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이야 어쨌든 민주당과 유시민 대표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시민 대표의 경우 이런 식의 패배가 경기도지사 선거에 이어 벌써 두 번째라는 점이 중요하다. 소위 ‘대망론’에 치명적인 약점이 생긴 셈이다. 물론 유시민 대표의 대권후보로서의 지지율이 재보선 결과 때문에 급락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지지율은 웬만한 상황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열광적 지지층들의 성원이 단단하게 뭉쳐진 가운데 쌓아올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제부터 작용할 힘은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새로운 계기로부터 반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결국 이 올가미는 유시민 대표의 목을 천천히 죄어올 것이다.

호랑이 등에 날개 단 손학규 대표

이와 비교하면 손학규 당선인의 경우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 대표의 책임을 맡고 있으면서도 원외라는 한계 때문에 박지원 원내대표가 정국을 리드하고 손학규 대표는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원내진입에 성공했으므로 앞으로 1년은 정국의 중심에 주도적으로 설 수 있게 된 셈이다. 국회 안에서의 날카로운 대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때 진보정당 의원들과 힘을 합쳐 한나라당에 맞서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조건도 함께 갖추어졌다.

▲ 손학규 분당'을' 당선자ⓒ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원내진입의 어드밴티지는 ‘플러스 알파’에 불과하고 오히려 당내정치라는 관점에서 손학규 대표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더욱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것이다. 손학규 대표가 분당에 출마하기 전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자. 소위 ‘신정아 자서전 출판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민주당 내에서 손학규 대표의 분당을에 출마를 촉구하며 등을 떠미는 행위는 일종의 ‘흔들기’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일정부분 팩트일 것이다. 당내 대선후보의 자격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 정세균 의원이나 정동영 의원 등의 경쟁자들이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학규 대표는 결국 ‘흔들기’의 파도를 타고 넘어버렸다. 이제 공은 손학규 대표의 손 안에 있다. 다음의 행보에 대해 알고 싶다면 곧 치러질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예상해보면 된다. 사실상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고 있는 김진표, 유선호, 강봉균 후보는 각각 정세균계, 중도파 또는 박지원계, 자칭 범-손학규계 또는 정동영계로 분류된다. 민주당 내 각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보선에서 날개를 달고 돌아온 손학규 대표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일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정세균 의원, 혹은 정동영 의원과 동맹을 맺을 수 있고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구도를 가져가기 위해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밀월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다. 만약 손학규 대표가 빅3 중 나머지 2인으로 불리는 정세균 또는 정동영 의원과 동맹을 맺는 방식을 택한다면, 민주당은 대선 1년 전에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기로 결정한 바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동맹을 수락한 유력 주자가 대권을 포기하고 당권을 쥐도록 하는 딜이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최소한 민주당 내부에서 손학규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평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다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는 어느 쪽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그동안 소위 486과 친노그룹이 해왔던 선택을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07년 대선 직후의 처참한 상황에서 소위 486그룹은 당시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학규 대표를 지지하고 있었다. 손학규 대표의 뒤를 이어 ‘관리형 대표’의 이미지를 업고 새롭게 대표가 된 정세균 의원의 경우 손학규 대표를 지지했던 486그룹에 친노그룹의 지지까지 얹어 그동안 민주당 내 주류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손학규 대표가 대권 주자로서 급부상한 이후 486-친노그룹은 일종의 ‘분산투자’를 감행한다. 이광재 전 지사가 손학규 대표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안희정 충남지사가 당 대표 경선에서 정세균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 좋은 예이다.

만약 김해을에서의 패배로 유시민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입지가 축소되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수순에 들어간다면 486-친노그룹은 ‘분산투자의 시대’ 역시 끝내려 할지 모른다. 물론 여기까지 구체적으로 추리하는 것은 재보선 이후 만 하루밖에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는 시기상조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래도 소위 486그룹과 친노세력이 민주당 내 정국의 키를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소위 야권연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까지를 고려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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