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경제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만한 뉴스가 2개 있었다. 하나는 저축은행 부실 문제 관련 청문회 소식이고 또 하나는 환율급락에 대한 관계 부처의 대응 소식이다.

저축은행 부실 관련 청문회의 결론은 한나라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정권 시절의 저축은행 관련 정책과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고 민주당은 그 당시 관련한 중요한 정책결정을 했던 당사자들이 모두 현 정부의 경제관료들이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시행된 정책들이 이 문제를 심화시킨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부실화 원 인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 증인들. 왼쪽부터 김석동 금융위원장, 진동수·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 연합뉴스
사실 저축은행 문제를 제대로 짚으려면 박정희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개발경제 시절 대기업들이 무리한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 위해 사채를 끌어다 쓴 것이 엄청난 문제가 되자 정부는 8.3조치라는 것을 통해 사채를 동결시키고 소위 사금융양성화 정책을 발표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사금융양성화 정책이란 이런 저런 형태로 난립하던 사금융회사를 단자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여 제도권금융으로 편입시키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 중 단자회사의 경우 상당수가 종합금융회사로 전환이 유도된 이후 무모한 자산 확장 등을 통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무더기로 퇴출됐고 이때 은행으로 전환한 회사의 경우도 기업대출 부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자기들끼리 인수 합병을 거듭해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상호신용금고에서 출발한 저축은행의 부실 대출이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이다. 이들의 부실대출 현황을 보면 8.3조치의 후예들이 똑같이 겪었던 문제가 한 눈에 들어온다.

흔히 저축은행의 문제를 얘기할 때 두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을 지적하는데 저축은행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거액의 자금을 융통하는 주거래기업의 사실상의 사금고로 활용될 가능성이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시중은행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다른 저축은행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금융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PF대출부실이라는 문제로 드러난 셈이다. PF대출이라는 것이 말이 좋아 ‘프로젝트파이낸싱’이지 보다 공격적으로, 과감하게 돈을 꿔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 핵심 아닌가? 저축은행으로서는 운명을 같이 할 주거래기업의 미래를 믿고 자금을 과감하게 대출해주거나, 보다 많은 실적과 이에 따른 이득을 위해 PF대출에 뛰어들거나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청문회 과정에서 차주의 연체이자를 정리하기 위해 추가대출을 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증액대출'이 불법으로 이루어진 정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한 업무임에도 상당수의 저축은행들이 알아서 증액대출 형식으로 연체이자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도 두 가지 가능성을 나타낸다. 하나는 기업이 연체 이자를 사업을 통해 이득을 얻고 나서 나중에 한 번에 정리하자는 의지를 보였을 가능성과 또 하나는 연체이자를 숨기기 위해 저축은행이 서류상으로 증액대출 한 것으로 꾸미고 부실채권을 은폐하려고 하였을 가능성이 다.

저축은행들이 금융지주회사 등에 인수, 합병되어 대형화 되거나 자체적으로 부실한 회사를 정리하지 않는 경우 이와 비슷한 일들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8.3조치로부터 40년을 지나는 동안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박정희시대로부터 계속 실무를 주물러왔던 경제관료들도, 아무도 이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건의 진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서로를 탓하며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 청문회를 벌이는 것은 한 편의 쇼이며 코미디이다.

환율 급락에 대한 뉴스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야당 인사들이 대기업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난한 소위 고환율 정책이라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환율 방어 정책이기도 하다. 물가의 지나친 상승으로 정부 외환당국이 원화강세를 방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자마자 환율이 급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당연히 국제 환투기 세력의 움직임과 같은 외환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거래의 폭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환율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 선에서 외환공동검사 등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흐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대기업의 경우 결제통화다변화정책 등을 통해서 환율의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 시키는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환율 변동에 의한 영향력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신세에 처해있는 것은 그러한 시스템을 갖출 능력이 없는, 주로 해외에 수출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에 주력하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물가를 잡기 위해 원화강세를 방치한 정책이 아무 소용없게 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고환율 정책’ 그 자체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동안 소위 야당 인사들은 환율이 높아서 한국경제의 모든 것이 문제가 된 것인 마냥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포기했을 때,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동안 해왔던 주장은 무책임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정치인들의 발언 탓에 우왕좌왕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것은 불행한 서민들뿐이다.

지금 내가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환율이 높다’는 사실, 그 하나의 사실이 우리가 처해있는 부조리를 모두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환율을 이야기 한다면 어떤 고환율 정책인지, 누구를 위한 고환율 정책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끝까지 밀어 본다면, 집권을 하려는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내놓아야 할 것은 결국 ‘어떤 경제’냐 하는 물음과 이것을 위한 ‘어떤 수단’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한나라당 내의 개혁세력도, 민주당 세력도, 소위 진보정치 세력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당분간, 우리의 고통은 조금 더 길게 이어져야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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