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이틀 연속 기아를 상대로 판에 박은 듯 유사한 흐름으로 밀리다 연패했습니다. 경기 초반 여러 차례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끌려가다 후반 실책으로 실점하며 점수 차가 벌어져 주저앉는 흐름은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가 대동소이했습니다.

가장 큰 패인은 타선의 집중력 상실입니다. LG는 9안타와 2볼넷으로 11명이 출루했지만 홈으로 생환한 것은 2명밖에 없었습니다. 1, 2, 3, 5, 6회말 5차례의 선두 타자 출루 기회를 얻었으나 두 번밖에 살리지 못했고 그것도 찔끔찔끔 1득점씩에 그쳤습니다. 무수한 기회에서 LG 타자들은 단 한 개의 진루타도 얻지 못했습니다. 주자를 1루에 두고 우타자는 밀어치고 좌타자는 잡아당겨 타구를 우측으로 보내, 우전 안타로 1, 3루 기회를 만들거나 타자는 아웃되더라도 주자는 2루에 안착시키는 타격을 선보인 시범 경기의 고급스런 야구는 실종되었습니다. 진루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연속 안타나 장타, 혹은 사사구가 수반되지 않는 한 득점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LG 타자들은 기아 선발 양현종의 높은 직구를 골라내지 못하고 연신 휘두르며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났습니다.

▲ 정의윤 ⓒ연합뉴스
특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4번 타자로 기용되어 이틀 연속 부진한 정의윤이었습니다. 이대형과 이택근의 분전으로 1회말 1사 1, 2루, 3회말 무사 1루, 5회말 1사 2루의 기회가 매 타석 정의윤에게 돌아왔지만 적시타는커녕 진루타도 기록하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4번 타자라면 기회에서 자신 있는 스윙이 필요한데 정의윤은 갖다 맞히기 급급한 타격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아마도 밀어쳐야 한다는 의식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의윤만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과연 박종훈 감독의 선발 라인업과 선수 기용이 최선인지 의문입니다. 올 시즌 정의윤은 4번 타자로 기용되었을 때의 타율이 0.167(18타수 3안타)에 그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즌 타율 0.231보다 크게 낮습니다. 군에서 갓 제대해 복귀한 유망주에게 4번 타순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LG 타선을 리빌딩하기 위해 정의윤을 4번 타자로 육성하겠다는 박종훈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4번 타순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3번이나 5번 타순 배치되어 노련한 4번 타자의 우산 효과 속에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이 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LG에는 이병규, 조인성, 박용택, 이택근 등 정의윤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검증된 타자들이 건재합니다. 그들에게 타 팀 4번 타자만큼의 무게감은 없다 해도 최소한 정의윤보다는 4번 타순에 대한 부담감은 덜할 것입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4번 타순에 기용된 정의윤이 세 타석 연속 기회를 날리자 7회초 수비에서 오지환으로 교체한 것입니다. 선발 출장한 이학준의 자리에 이진영이 대타로 들어서자 정의윤을 제외시키고 오지환이 교체 출장한 것인데, 이진영을 단 한 타석만 기용하는 것이 아쉬워 경기 후반을 바라보기 위해 정의윤을 제외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4번 타자라면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는 가급적 교체하지 않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끝까지 믿을 수 없는 타자라면 애당초 4번 타자로 기용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4번 타자로 기용시켜 부담감을 잔뜩 안긴 다음, 세 타석 만에 부진하다고 교체하는 것은 선발 라인업 구상이 잘못되었음을 감독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매 경기 상대 선발 투수에 맞춰 큰 폭으로 널뛰는 라인업이 타자들의 혼란과 부진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대형과 박경수의 테이블 세터를 제외하면 중심 타선과 하위 타선구성은 매 경기 요동치고 있는데 최소한 중심 타선만큼은 상대 선발 투수의 좌우완 여부와 무관하게 고정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프로야구 LG와 기아의 경기 3회초 2사 1,2루 기아 이범호가 삼점 홈런 후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투수는 리즈. ⓒ연합뉴스
득점권 위기를 맞을 때마다 실점한 선발 리즈도 아쉬웠습니다. 3회초 이범호의 역전 결승 홈런은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원섭에 2루타, 김선빈에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후 허용했는데, 아무리 껄끄러워도 김선빈과는 정면 승부를 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타력을 갖추지 못한 김선빈에게 맞으면 1점이지만 장타력을 보유한 이범호에게 맞으면 3점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선빈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후 초구에 이범호에게 홈런을 허용한 공 배합도 아쉬웠습니다. 스트레이트 볼넷 다음에 초구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확률이 높다는 것은 타자라면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기에 리즈와 조인성 배터리의 공 배합은 매우 정직했습니다. 이틀 연속 경기 종반 병살 플레이에서 실책을 범해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박경수도 아쉬웠습니다.

LG는 SK와 기아로 이어지는 6연전에서 2승 4패에 그쳤습니다. 시즌 개막 이후 주간 성적으로는 최악의 결과입니다. 4월 13일 SK전 9:4 승리를 제외하면 나머지 5경기 평균 득점이 2점에 그쳤다는 점에서 타선의 부진이 뼈아팠습니다. 타선이 조금만 분발했어도 3승 3패 이상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로페즈가 등판하지 못하고 이용규와 나지완이 빠져 전력이 약화된 기아를 상대로 1승 2패에 그치며 회생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찜찜합니다. 게다가 LG는 상대는 4월 23일 선두 SK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등 타선이 부활한 롯데를 상대로 원정 3연전을 갖는다는 점에서 더욱 부담스럽습니다. 자칫 LG가 기아와 롯데의 부활의 제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아직 승패 마진은 +1이며 선발 투수진은 건재하니 타자들의 집중력 회복과 박종훈 감독의 매끄러운 운영이 절실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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