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혜인 기자] 2017년 방송인 낸시랭과 혼인 신고를 한 왕진진(본명 전준주) 씨에 대해 일부 언론이 그의 범죄 전력과 의혹 등을 보도했다. 이후 왕 씨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최근 법원으로부터 일부 승소를 얻어냈다. 언론이 공인과 혼인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보도를 통해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낸시랭과 왕진진 씨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이다.

연합뉴스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박진환 부장판사는 왕진진씨가 디스패치와 소속기자 3명, 채널A와 소속 기자 5명, TV조선과 소속기자 4명, SBS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인들이 공동으로 왕 씨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를 판결했다.

채널A 뉴스 화면 캡처

왕 씨는 2017년 시각미술가 겸 방송인 낸시랭 씨와 결혼을 발표했다. 당시 디스패치 등은 왕 씨의 출생·성장과 관련된 비밀이나 학력, 가족관계, 과거 범죄 전력 등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그해 12월 30일 왕 씨와 낸시랭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과도한 사생활 관련 보도를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과거 전력이 기사화되자 왕 씨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지난 2018년 5월 해당 언론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낸시랭 씨와 혼인신고를 마쳤다는 이유로 왕 씨의 동의 없이 대중의 관심사라는 명분 아래 사적 비밀을 샅샅이 파헤치고 무차별적으로 상세히 보도했다”며 이로 인한 왕 씨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디스패치 등은 대중의 정당한 관심이 되는 사안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과거 왕 씨가 고 장자연 씨의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낸시랭 씨가 공인이라는 점에서 왕 씨의 과거 전력이 일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사항이었다는 점은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왕 씨에 대한 기사들의 내용이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사적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기술했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선동적인 문구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왕 씨의 사생활은 일부 사람들의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공공의 이해와 관련된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이런 것이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포함된다고 해도 그것이 왕 씨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왕 씨의 사생활 관련 보도를 한 디스패치는 2017년 12월 29일 <단독/ 낸시랭만 모르는 남편의 과거…"장자연, 성폭행, 사실혼의 진실?">보도에서 “J씨의 실체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라며 “취재에 협조한 일부 피해자 역시 같은 생각으로 움직였다”고 보도 이유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 중인 왕 씨가 공인인 낸시랭의 남편이라는 배경을 이용해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도로 인한 사생활 침해 인정 범위는 사안의 공적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미디어 법과 윤리>에서 '개인적인 일의 공표'에 대해 “그 공표된 사항이 합리적인 인물로는 매우 불쾌한 것이고 공중에 대해서는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경우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의했다.

강 교수는 “공적 가치가 높으면 원고의 곤혹스러움을 보호해야 할 가치를 능가할 수 있다”면서도 “한 개인의 과거를 밝히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과거의 사건을 재보도하는 건 괜찮으나 그 사건의 주인공이 지금은 무얼 한다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특히 범죄자나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를 가진 사람의 경우엔 그렇다”고 말한다.

앞서 연예인이 원치 않는 사생활이 기사화돼 언론을 상대로 승소한 사례가 있다. 2007년 1월 2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는 1986년 TV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여주인공 ‘미자’역으로 알려진 차화연 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이유로 여성 월간지 ‘여성조선’과 ‘주부생활’이 각각 1000만 원씩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해당 월간지들은 인터뷰를 거절한 차화연 씨와 직접 인터뷰 한 것처럼 보도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의 사생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갑자기 많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라고 볼 수도 없으며 사생활 보도에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다만, 차화연 씨가 주장했던 명예훼손 및 초상권 침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사 내용이 원고에 대해 주로 긍정적인 측면만 다루고 있고 기사의 사진들은 이미 공개돼 있거나 원고의 동의를 바탕으로 촬영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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