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위 한선교 한나라당 간사와 김재윤 민주당 간사가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하고 합의처리키로 했다. 최근 KBS 업무보고에 대해 한선교 의원은 수신료 인상안 상정으로 한정하자는 입장을, 김재윤 의원은 수신료 인상안 상정은 의사일정과 관계없이 별도 논의로 처리할 문제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실갱이를 했다. 이윽고 키를 쥐고 있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수신료 인상안 처리에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게 흥분할 일이 아니다. 올 게 온 것이다. 4월 상정이든 2월 상정이든 3500원 인상안 상정은 예고된 일이다.

▲ 서울 여의도 KBS본관 ⓒ 미디어스
‘반대’가 당론이라는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다. KBS의 로비 앞에 민주당은 한낱 허수아비 신세였다. 지역총국이 지역 의원들을 만나 밀착 로비를 벌이고, KBS 직원들이 모든 끈을 동원해 문방위와 지도부를 일일이 마크했다. 외곽도 동원했다. 한국가수협회, 한국코미디협회, 한국연기자협회,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이 수신료 인상안 국회 조속 처리 입장을 발표했고, KBS 직원들의 휴대폰 통화연결음도 수신료 홍보 내용으로 바꿔놓았다. KBS의 의지는 강력했고, 로비는 막강했으며, 민주당은 무너졌다.

여야가 합의처리 예정인 수신료 인상안은 어떤 수신료 인상안인가. 2010년 11월19일 KBS이사회가 합의처리한 수신료 인상안이다. 2011년 2월1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상업재원 비율 축소가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포함한 검토의견서가 첨부된 수신료 3,500원 인상안이다. 방통위는 “KBS이사회의 합의의결 취지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1000원 인상하되, 타당성이 인정된 공적책무 확대방안의 성실 시행과 프로그램 제작비 확대 및 상업 재원의 축소 등이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분명히 명시했다. 아울러 2014년 수신료 금액의 재산정이 필요하며 단계적 광고 축소 및 채널별 회계분리도 필요하다고 덧붙여 놓았다.

수신료 부담의 당사자인 국민은 완전하게 배제됐다. 수신료 인상에 동의하지만 KBS의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미디어운동의 요구는 무시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따르고 미디어운동과 입장을 같이하겠다고 공언했다. ‘상업 재원의 축소’는 정확히 수신료를 인상하되 재원을 줄여 광고시장으로 내놓겠다는 뜻이다. 광고시장으로 내놓으면 종합편성채널사업자 즉 조중동방송이 절반 이상을 챙기게 된다. 인상분 약 1000억원 중 최소 500억원 이상이 조중동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이 3500원 인상안을 합의처리 한다는 것은 곧 민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조중동방송을 만들어온 한나라당의 기획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KBS는 공영방송의 허울을 쓴 관제방송이다. KBS 프로그램은 정확히 김인규 사장의 관리통제 하에 있다. KBS이사회는 수신료 3500원 인상안 심의.의결로 KBS의 발전을 위한 합의체제임을 만방에 확인했다. 반대를 당론으로 한 민주당 문방위원들과 지도부는 KBS이사회가 합의하는 타이밍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야당 추천이사들은 제각기 민주당으로부터 사인을 받아 처리했다는 후일담을 내놓았던 바다. 이윽고 문방위 합의처리와 2월 국회 통과가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18대 국회 문방위는 KBS관제공화국 건설을 위한 행정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 미디어스
광고를 빼지 않는 3500원 인상안 결정이었다고 밝힌 김영호, 이창현 야당 추천이사들의 답을 듣고 싶다. 이창현 이사는 수신료 인상안 심의.의결 직후 “이번 3천5백원 인상안은 최선의 안이 아니다. 시민단체의 비판을 충분히 안다. 그러나 인위적인 광고시장 조정을 통해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에게 광고 몰아주기라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영호, 이창현 이사의 바람과는 달리 인위적인 광고시장 조정이 가능한 수신료 인상안 합의처리를 앞두고 있다.

수신료 인상안의 국회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이경자,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의 답을 듣고 싶다. 방통위의 검토의견서는 물론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송도균, 형태근 상임위원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이경자 상임위원은 반대 입장 표명 후 자리를 떠났고 양문석 상임의원도 표결에 앞서 퇴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합의처리하는 순간 수신료를 인상해 종편한테 광고비로 쓰게 하는, 조중동이 기획하고, 청와대가 사주하고, 한나라당이 집행한 종편프로젝트를 막지 못한 결과가 된다.

반대를 당론으로 밝혀온 박지원 원내대표와 전병헌 정책위원장, 종편은 안 된다며 국회를 박차고 나오면서까지 싸웠던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의 답을 듣고 싶다. KBS가 변화하기 전에는 10원도 안된다며 150일간 명동성당 앞에서 서명전을 하고, 이사회 때마다 KBS 앞 기자회견과 규탄대회를 해온 네티즌과 미디어운동과 등을 돌리겠다는 뜻으로밖에 풀이가 안 된다.

종편 주는 3500원 수신료 인상안 합의처리는 한나라당의 민주주의 뿐 아니라 민주당의 민주주의도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의 확증이다. 국민의 뜻을 거역해도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를 밟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화국체제, KBS의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정권홍보방송을 하고,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조중동방송에게 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방송 영역에 있어 KBS관제공화국 체제의 구축을 예고한다.

파리코뮌 가담자들을 학살하면서 세워진 공화국, 식민지를 정복하면서 단련된 공화국, 파업을 박살낸 조르주 클레망소의 공화국, 1차 세계대전의 살육을 기가 막히게 조직한 공화국, 앙리 페탱에게 전권을 부여한 프랑스 공화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구축하고 있는 민주주의공화국은 종편 주는 수신료 인상은 안 된다는 시민 절대 다수의 의사를 압살하는 공공연한 모의를 진행중이다. 민주당이 종편 주는 수신료 인상안 합의처리에 날인하는 순간 방송영역에 있어 KBS관제공화국은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고,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