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출국했다. 결과적으로 세 번째 증인소환을 거부한 셈이다.

방 명예회장은 자신이 아버지처럼 무서워하고 존경했던 형인 고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과 세 번째 부인한테서 태어난 2녀 1남의 자식들이 조선일보사와 방상훈 사장 등 주주가족들을 상대로 제기한 재산분할청구 소송에서 원고측 증인으로 채택된 바 있다. 그가 오랫동안 조선일보사 대표이사 회장도 지냈기 때문에 편의상 방 회장으로 부르기로 한다.

조선일보사와 방상훈 사장 등 재산분할 청구 소송 피고

▲ 조선일보 사옥 ⓒ미디어스
방 회장은 세 번째 증인소환장을 받은 상태였다. 방 회장을 증인신문하기 위한 재판은 30일(수) 오후 5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방 회장이 재판을 앞두고 출국함에 따라 이날 재판은 자동적으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방 명예회장은 일단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번 셈이다.

1월 22일 80회 생일 겸한 회고록 출판기념회 연 뒤 출국

방 명예회장의 출국 타이밍이 기막히다.

방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등 각계각층의 저명인사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의 80회 생일(傘壽) 잔치를 겸한, 두 번째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기념회를 가진 바 있다.

따라서 부인(이선영 여사)을 대동한 것으로 보이는 방 회장의 출국은 80회 생일을 자축하기 위한 목적의 여행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담당 재판부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80세까지 사는 것도 쉽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사 중의 하나인 조선일보의 대주주이자(1월 25일자 관련기사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또 증인소환 거부하나’ 참조)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사람이 80회 생일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간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귀국 시점, 재판부 대응도 주목거리

방 회장이 언제 귀국할지도 관심거리다. 물론 방 회장이 출국금지가 된 것도 아니고, 피의자도 아니다. 따라서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귀국한 뒤의 상황이다. 일단 한 달 정도의 시간은 번 것으로 보인지만, 그 다음이 중요하다.

만약 재판부가 원고측 증인으로 채택한 방 회장에 대해 구인장을 발부하거나 네 번째 소환장을 보낼 경우 방 회장은 난감해 진다. 버티기가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2005년 1월 시작된 상속관련 소송 3년째 진행

방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소송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요정을 드나들며 언론계 황제처럼 군림했던 고 방일영 조선일보 전 회장과 세 번째 부인(혼외) 사이에서 난 2녀 1남의 자식들이 친자확인 소송을 거쳐, 조선일보사 주식을 비롯한 상속재산(유류분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피고는 (주)조선일보사와 최대주주인 방상훈과 장남 방준오와 방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등이다. (1월 25일자 관련기사 중 조선일보사 주주명부 참조)

지난 2005년 1월 시작돼 3년 째 진행 중인 이 소송은 현재 방상훈 사장 등 피고들이 고 방일영 전 회장으로부터 조선일보 주식 등 상속받은 재산이 법정상속권을 초과해 상속인들인 원고들의 ‘유류분’을 침해하였으니, 원고들의 상속분(유류분) 만큼의 부동산과 주식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출판 기념회. 왼쪽에서 네번째가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이다. ⓒ미디어스

핵심 쟁점은 주식 등 재산, 증여 혹은 매매인가?

이 소송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는 방상훈 사장 등이 소유한 조선일보 주식이 고 방 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인지, 매입한 것인지다. 방 사장은 2001년 탈세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증여받았다고 답변했고, 2003년 10월 열린 6차 공판에서 본인 외 임직원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주식(11.45%)도 선대(先代) 때부터 명의신탁을 해 온 것이라고 진술했었다.

방 사장의 진술대로라면 회사 고위 임직원 명의로 된 주식지분의 경우도 고 방 전 회장의 것이기 때문에 원고에게도 상속분을 줘야 한다는 것이 원고들의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방 사장이 탈세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뒤, 유류분 반환 재판 과정에서 “돈을 주고 샀다”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 사장은 매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매매계약서나 영수증 혹은 주주명부 등 어떤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 사장 등이 아버지인 방일영 전 회장으로부터 주식과 재산 등을 증여 받았다면 법정상속분을 초과하기 때문에 유류분 반환요구가 가능하지만, 모두 매입한 것이라면 원고의 청구는 성립되지 않게 된다.

방 회장, 소송 사건의 핵심 증인인 셈

따라서 2003년 8월 8일 작고한 형 방일영 회장과 함께 조선일보사를 오랫동안 소유, 경영해 온 방우영 명예회장은 이 소송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보인다.

원고측 증인으로 채택된 방계성 전 조선일보 부사장은 이미 증인신문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송 담당 재판부가 방 회장에 대해 선처(善處)를 베풀지 않는 한, 방 회장이 증인소환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 증인 출두를 피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가 남는다. 방상훈 사장과 장조카 가족들이 원고인 이복동생들과 타협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하여튼 형 방일영과 함께 조선일보를 발행부수 최대의 신문으로 성장시키며 남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살아온 방 회장으로서는 자신이 그토록 존경했던 ‘형님이 뿌린 씨앗’으로 인해 인생 막바지에 험한 꼴을 당하게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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