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얼마 전 KBS 뉴스 9 클로징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볼펜 이야기였다. 뉴스를 보던 시청자가 KBS로 전화를 해왔는데, 뉴스 진행자의 볼펜이 일제로 의심되는데, 이런 시국에 적절치 않은 일이라며 우려를 전해왔다는 것이다.

KBS 측은 즉각 사실 확인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문제의 볼펜은 국산 제품으로 밝혀졌다. 뉴스 진행자는 자랑스럽게 “이 볼펜은 국산이며 시청자들이 이런 걱정을 할 정도로 일본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 말할 수 있었다. KBS는 이 얘기를 디지털 기사로도 썼다. 널리 알리고 싶은 이야기였다는 거다.

드루킹 이후 보수정치 지지자들이 절대 강세를 보이는 포털 댓글을 보니 KBS의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은, 촬영은 어느 나라 카메라로 했느냐는 거다. 방송용 카메라는 대개 대체불가의 일본 제품이다. 이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 조선일보는 기사에 “KBS 메인뉴스 촬영 카메라는 일본 소니사(社) 제품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볼펜은 국산”이란 말에 “카메라는 일본산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는 것은 냉소적 현실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불매운동을 해봐야 ‘완전한 불매’를 할 수 없으므로 애초에 소용이 없다는 거다. 안 되는 일을 된다고 말하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배경에 ‘불순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지지자의 눈으로 보면 KBS는 반일감정을 정치적 이유로 조장하는 정권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 볼펜 이야기를 강조한 게 된다. 일본산 카메라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으면서 남들에게 일본 제품 불매를 강요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매운동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스스로를 일본산 제품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도’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거듭나려고 하는 일본에 ‘경고’를 하자는 게 핵심이다. 평범한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무기는 오직 소비자로서의 권리일 뿐이니 불매운동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의 일본 불매운동 열풍이 과연 이런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는 또 의문이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정서의 표현을 보면 그렇다. 대개는 이런 식이다. 일본이 우릴 먼저 건드렸으니 우리도 일본에 복수해야 한다, 그래야 침략국인 일본이 다시는 식민피해국인 우리를 깔보지 않는다…. 여기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는 일은 서로의 이해득실에 관한 문제로 둔갑한다.

서울 중구청이 명동 등 주요 거리에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깃발을 걸었다가 다시 뗀 사건은 이 맥락에 있다. 한겨레는 7일 사설에서 “이제부터라도 ‘노 재팬’이 아니라 ‘노 아베’에 초점을 맞추는 등 지혜롭고 성숙한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면서 이 사례를 언급했다. 내셔널리즘보다 시민 간 연대를 중요하게 판단한 결과처럼 서술했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아무리 불매운동이 중요해도 당장 경제적 손해를 야기하는 건 곤란하다는 판단이 핵심 아닐까 한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 인근에서 중구청 관계자가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노(보이콧) 재팬' :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배너기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가 이 일을 전하면서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런 이유다. 그렇잖아도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해 사정이 어려운데 구청까지 나서서 반일 캠페인을 해야겠느냐는 논리다. 물론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앞서 KBS 사례와 마찬가지로 “본지 확인 결과 깃발은 'VJ 밸류젯'이라는 인쇄기로 제작됐다. 인쇄기 제조업체는 일본 무토(武藤)사. 1952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된 회사다”라고 쓰는 걸 잊지 않았다.

불매운동보다 경제적 피해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소위 자유무역의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같은 기준으로는 일본의 시민들에게 경제적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정치적 주장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불매운동’의 형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양자가 양립 가능한 경우는 오직 ‘같은 편’들의 이득과 손해를 따지는 게 기준일 때 뿐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을 자유무역의 가치를 훼손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품 소재의 국산화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칭 ‘진보’ 메이저 언론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대기업들이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를 이루기 위해산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논리는 정부 국민 기업이 똘똘 뭉쳐 일본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약자의 희생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일종의 퇴로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이 지면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한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면서 환경규제의 후퇴를 정당화 하는 하나의 축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대기업 회장들의 주장에 따르면 부품 소재 분야에서 일본 수준에 이르려면 반세기는 걸린다고 한다. 당장 못하겠다는 건 아니다. 일본보다 떨어지는 기술력으로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용이 더 들고 효율이 떨어질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고 나서, 그러니까 일본이 다시 자유무역의 이상으로 복귀하겠다고 하면, 대기업이 일본 의존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해온 게 자유무역의 이상과 가치를 말하는 사람들의 지금까지 태도였다.

애초에 안 되니까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불순한 의도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잘못은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민중의 삶을 국제정치라는 장기판 위의 말로 취급하는 국가의 특성을 더 강화하는 정치를 하려는 데에 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간의 이해득실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이 권력에 의해 무엇으로 다루어지느냐가 핵심이다. 언론이 이 점을 계속 짚어야 한다. 그러면서 대중의 반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맥락화 하려는 시도를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의 여론에 편승하면서 ‘칭찬’받는 양품이 되기를 시도하거나,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결론으로 달려가 버리는 사례가 대부분인 것 같다. 과거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BBC가 국적과 민족을 떠나 오직 사실을 다루려는 태도를 유지해 정치권력으로부터 견제를 당한 사실은 저널리즘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이다. 얼마 전에도 보수언론이 인용했다 비웃음만 샀다. 하지만 보수정권이 언론 장악을 시도했을 때 많은 언론인들이 제대로 된 언론의 필요성을 말한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제대로 된 자기 역할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가? 국산 볼펜 이야기에 신나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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