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동아시아 정세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들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 무단진입하고 이 중 러시아 조기경보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혼란스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이 자위대기를 긴급 발진시켰다고 밝히고 독도를 자국 영토로 규정하며 한국군의 대응은 부적절한 일이라고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더 복잡해졌다.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 것은 주권을 침해한 것이 되므로 심각한 문제이다. 러시아 당국이 영공 침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 조기경보기의 영공 침범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다만 러시아 군용기의 행태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어떤 착오나 오류에 의한 것인지를 규명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으로 따지면 영공 침범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개별 국가가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라 국제법상 주권이 인정되는 구역이 아니고 각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이 겹치기도 하기 때문에 종종 마찰이 생긴다. 때문에 중국의 군용기가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것 자체는 종종 있는 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사실상 연합훈련에 가까운 기동을 실시한 것은 초유의 사태이다. 이번 사태가 지정학적 문제를 염두에 둔 무력시위라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언론에 많이 보이는 분석은 중국과 러시아가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 속에서 한미일 군사 당국의 대응 태세를 확인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동아시아로 좁혀서 본다면 이런 해석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좀 더 시야를 넓게 볼 필요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한 중국 견제와 미국의 이란에 대한 압박이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는 결과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맞닿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란은 특히 러시아의 우방국이다. 또 호르무즈 해협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상정하는 전선의 서쪽 끝이다. 미국이 중동 정세에 개입해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대만에 무기 판매를 승인하는 등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국과 러시아 간의 공통분모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존 볼턴 미 백악관 NSC 보좌관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 (연합뉴스./러시아 국방부)

존 볼턴 보좌관은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매파적 대응을 이끌고 있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존 볼턴 보좌관의 방한에서 관심사는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중재 또는 개입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 보호를 위한 사실상의 파병 요구, 두 가지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내면서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문제는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선에서 관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의 지렛대 중 하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사실상 파기 검토를 시사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파기를 말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일본이 23일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규정하며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을 문제삼고 우리 군의 대응을 비난하면서 여론전으로 돌입한 배경에는 한일 간 갈등의 폭을 키우면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검토 카드를 무력화시키겠다는 판단 역시 있을 수 있다.

실제 이날 일본 방위상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미일, 한일, 한미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강력 지지한다”며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일본은 이번 사태를 이용해 한국을 한미일 동맹의 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묶어 놓고 과거사 문제와 무역 보복에 더해 영토 문제까지 갈등의 폭을 넓히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을 좀 더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는 우려스럽다.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 문제에서 좀 더 미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파병 가능성에 대해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간의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는 이미 호르무즈 해협의 민간선박 공동 방위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을 검토해왔다고 한다. 해외 파병은 참여정부 때 정권 지지층 분열을 초래한 소재였다. 이 정부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지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를 이동 배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다고 한다. 청해부대 파병은 이미 국회 동의를 얻은 사안인 만큼 국내 정치의 갈등요소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한국도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인 만큼 현실적 접근을 모색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부가 조금이라도 올바른 쪽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도록 하기 위해선 대의와 명분을 근거로 한 목소리가 여론에 반영돼야 할 필요가 있다. 파병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일본과의 갈등에서 미국의 중재가 필요하다는 것과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70% 정도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이라크 전쟁 때와는 다르다는 거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핵심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핵합의를 뒤엎고 중동 정세를 이전 상황으로 되돌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의 배후를 이란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 판단이 맞다면 호르무즈 해협에서 공동방위에 참가한다는 것은 이란과의 충돌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맥락에 대한 판단없이 오직 이해득실을 기준으로만 군사적 행위의 정당성을 논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말하면서 중동에서의 긴장 고조에 일조하는 것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두 경우의 유일한 공통점은 배경에 경제적 이득 또는 손해의 만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게 “평화가 곧 경제”라는 슬로건의 이면이다. 이런 기준이 아니라 반전평화라는 대의를 말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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