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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삶과 함께하는 죽음? 말기암 청년이 던진 화두 'well-dying'[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9.06.18 14:36

'아이구 죽겠다', 우리에게는 일상화된 하소연이다. 하지만 저 '빈 말'이 진짜가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면. 6월 17일 <MBC 스페셜> 지난 3월 9일 고인이 된 송영균 씨의 '죽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1987년생 송영균은 스물여덟이 되던 해, 화장실에서 피를 쏟았다. 자고 일어나니 침대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대장암 4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공익인권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스물여덟의 대장암, 그리고 4년 

MBC 스페셜 <내가 죽는 날에는> 편

‘대장암입니다. 정액을 보관해야합니다. 불임이 될 수도 있어요. 성기능을 잃을 것 같습니다. 간에도 전이가 되었네요. 무려 열 개의 종양이 있어요.’ 이런 선고가 매일 내려졌다고 한다. 직장을 자르고, 간에서 폐로 전이된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다섯 번째 수술을 했다. 그렇게 4년여가 흐르고 이제 그는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지 않는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찾는 병원, 이번에도 어김없이 골반이 아프더니 종양이 자랐다. 암수치도 올랐다. 수술을 거듭하면서도 다녔던 로스쿨이 이제 한 학기가 남았다. 거의 다 끝났다 싶었는데 못 끝낼 것 같다. 

이렇게 증상과 상황을 나열하면 송영균 씨는 그저 말기암 환자일 뿐이다. 하지만 송영균 씨는 말한다.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이고,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고. 다큐는 인생의 마지막 길을 최선을 다해 뚜벅뚜벅 걷고자 하는 송영균 씨의 일상을 지켜보는 제작진의 시선, 그리고 그와 함께 송영균 씨 자신의 셀프 카메라가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암으로 자신이 꿈꿨던 로스쿨 이후의 삶을 실현할 수 없게 되면서 송영균 씨는 고민했다. 죽을 때까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미처 생각 못하는 고민, 아니 사실 결국은 누구나 같은 종착지이지만 먼 미래일 거라는 섣부른 예단으로 하지 않는 고민. 하지만 송영균 씨에겐 절박한 과제다.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많은 책을 섭렵했던 그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철학, 죽을 때까지 읽기'

MBC 스페셜 <내가 죽는 날에는> 편

단 한 글자도 안 읽어도 책을 읽은 것 같도록, 10p의 책 소개를 10시간 넘게 작성했다. 하지만 그는 나와 주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알려줄 수 있어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줘서. 그렇게 송영균 씨는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찾아냈다.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 몸이 그 지경인데 뭔 독서모임이냐고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커져갔다. 하지만 송영균 씨는 호흡이 가빠져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먼 미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을 읽어준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쁘다고 한다.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축하받고 싶어요 

그러나 암은 늘 그를 이겼다. 그가 건강해지고 싶은데, 암이 건강해져 가고 커져만 갔다. 그의 몸의 주요한 부분을 정복해 버렸다. 더는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송영균 씨는 이제 죽음을 준비한다. 

아무 생각 없이 찍었던 사진이 죽음의 자리에서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것이 싫어 친지와 함께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어릴 적 동네를 찾았다. 일상의 한 장면처럼 찍겠다는 포토그래퍼의 의도에 그는 늘 그랬듯이 환하게 웃는다. 

그가 31개월 되던 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자신의 짧은 삶을 회고한다. 아버지가 없어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간,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어머니를 도와야 했던,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시간. 하지만 이제 죽어가면서, 두고 갈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둔다. 

그리고 10년 동안 가게 문 한번 안 닫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구두까지 챙겨 신고 한껏 멋을 부린 영균 씨. 어머니의 사진 속에, 기억 속에 멋들어지게 뿌듯한 아들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MBC 스페셜 <내가 죽는 날에는> 편

그리고 손수 음식을 준비하고, 정장을 챙겨 입고 마지막 파티를 준비한다. 2018년 연말 '영균이 드리는 저녁 한 끼'. 사랑했던 사람들, 그가 자신의 투병기를 올렸던 SNS의 친구들과 함께, 이제는 더는 할 수 없을 한 끼를 자신에 대한 좋은 기억을 담아가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다. 2018 '영균 어워드'라는 갖가지 기지 넘치는 상들의 수상과 함께.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면서도 이어갔던 독서 모임, 입원 권유에도 휴대용 산소마스크로 버틴 나날들, 하지만 결국 119가 왔다. 3월 9일 4년 9개월 동안 그를 괴롭히던 암으로부터 송영균 씨는 자유로워졌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안락사'를 고민했던 영균 씨. 우리나라의 의료법 상황 상 그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겠습니다'라는 서명으로 대신했다. 

암과의 전쟁에서는 비록 암이 승리를 거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끝내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던 사람. 송영균 씨는 그저 말기암 환자가 아니라 삶의 끝에서 '잘 죽어갔던( well-dying)' 선구자로 오래오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가 바라던 대로 꽃피는 화려한 봄날 그의 추도식을 마련했다. 그가 좋아하던 와인잔을 들고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그가 쓴 글을 읽으며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수고했어, 영균!”

MBC 스페셜 <내가 죽는 날에는> 편

마지막 셀프 카메라에서 송영균 씨는 말한다. '너무 슬픈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전 참 열심히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되돌아보니 즐거웠던 일도 많았네요.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축하받고 싶어요’

고령화 사회, 가족 해체와 맞물려 최근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자기 주도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웰 다잉(well-dying), 지난 2009년 대법원에서 인정한 존엄사 등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MBC 스페셜>이 마련한 송영균 씨의 '웰 다잉(well dying)'은 삶의 한 과정으로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에 대한 자기주도성을 부각시킨 문제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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