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주적'이 아니다. 다만, "더한 의미가 분명히 담긴 더 강한 용어"로 표현해야 하는 무엇일 뿐이다. '주적'보다 더한 의미가 무엇일까? 만약 '주적'이라면 그냥 '주적'이라고 하면 될 것을 그 보다 "더한 의미, 더 강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이에 대해 KBS <뉴스9>은 "'핵심적인 위협세력' 또는 '제1의 적'이라는 용어로 북한이 주적임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SBS <8시뉴스>는 "2년마다 발간되는 국방백서에 '주적'을 한 번 표기하게 되면 현 정부의 남은 임기 2년 내내 남북관계에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방송 뉴스 간에 발생한 이 온도차는 주목할 만하다. KBS는 "북한이 '주적보다 더한 무엇'이란 점"을 부각했고, SBS는 "주적 표기를 하지 않는다"는 '팩트'에 충실했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뭐라고 설명하든, 어찌되었건 국방부는 이번에도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사실이다. 북한이 천안함을 피격했고, 연평도를 포격했음에도 불구하고 MB가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 27일자, 조선일보 3면
이에 대해 SBS <8시 뉴스>는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를 빌어,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면 나머지 적은 누구냐는 설명을 추가로 해야 하는 부담이 뒤 따른다"며 "주적 명기는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했던 '주적' 표기는 지난 2004년 참여정부 때 빠졌다. 대신,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우리 안보에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등의 표현이 사용됐다. 이에 대해 조중동은 거의 발작 수준의 경기를 보여줬었다. 그렇다면, 오늘 조중동은 어땠을까? 믿었던 이명박 정부마저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거의 까무러쳤을까?

전혀, 아니다. 조선일보는 담담하다. 관련 내용은 1면을 비껴 3면 우측 박스에 자리를 잡았다. "주적이란 말은 안 써도 더 강한 표현 들어갈 것"이란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논란이 생길 전망"이라는 정제된 표현을 사용했다. 비판적 문제의식 역시 군 소식통을 인용 "이미 북한군과 김정일 정권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이 명확한 상황에서 굳이 군사전략문서에까지 직접적 표현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정도의 점잖은 반응에 그쳤다.

중앙일보는 아예 주적 표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단독 기사로 다루지도 않았다. 5면에서 "북, 내년에 서해 5도 직접 침공 가능성"이란 제목으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연례 정세보고서 내용을 다루며 하위의 사실로 전했을 뿐이다. 북한의 침공이라는 섬뜩한 사실을 몸통으로 한 중앙일보의 기사 역시 "주적이라는 개념 자체는 더 강하게 표현될 것"이란 국방부의 립서비스를 순정한 맹세로 믿는 모습을 보였다.

▲ 27일자, 중앙일보 5면
동아일보는 관련 내용을 1면에 쓰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나 별다른 임팩트는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논조였다. "새 국방백서에도 '북=주적' 명시 않기로" 기사를 통해, "이미 내부적으로 북한군을 주적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북한군을 '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만큼"이라는 군의 설명을 강조할 뿐이었다.

▲ 27일자, 동아일보 1면
뭐랄까, 참 착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엄청난 일을 겪고 나니 좀 성숙해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MB의 말대로 조중동이야 말로 정말 전쟁이 무서워진 것일까. 어찌되었건 '주적' 표기 문제를 바라보는 조중동의 시선과 강도는 참여정부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KBS가 한층 조중동의 논조에 가까워졌다는 혐의도 분명한 증거로 확인된다.

남북관계의 양상이 지금과는 비할 바 없이 부드러웠던 참여정부 당시에 조중동은 곧 죽어도 '주적'을 써야 한다고 난리를 부렸다. 조중동 편집국의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제는 그 문제가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도 되는 것이 됐는지 알 순 없다. 다만,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몇 년 사이 입장이 표변하는 언론이 국내 신문시장의 강자들이란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주적'보다 '더 강한 표현'이란 국방부의 설명은 국내 여론을 달래기 위한 립서비스일 뿐, 제 아무리 이명박 정부라고 한들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할 순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를 거치며 온갖 설레발을 부리며 북한을 공격했지만, 끝끝내 더 나아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오랜 만이다. MB가 장고 끝에 그나마 악수를 두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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