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 한 해를 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고 한다. 미디어스는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돌아보기 위해 사람들을 만났다. 2010년의 한복판에 섰던 사람들은 많다. 가리고 추려 사람들을 골랐다. 한 해를 달궜던 사람들은 사회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일관된 하나의 주제가 개입되지는 않았다. 떠오르는 대로 성심껏 가리고 추렸다. 한 해 미디어스가 세상과 조우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 해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편애가 필요하다. 어디에 치우쳐 있는지, 그게 핵심이다.

지난 3월17일 발행된 <신동아> 4월호, ‘김우룡과 MBC, 8개월 전쟁’ 기사의 파장은 매우 컸다. 그 파장은 언론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까지 확산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짐작만 했었던 MBC를 둘러싼 방송문화진흥회와 정권의 적나라한 면모가 김우룡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큰집, 좌빨, 쪼인트… 걸러지지 않은 김우룡 이사장의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발언으로 인해, 한 동안 언론계는 혼란스러웠다.

▲ 신동아 4월호 표지 ⓒ신동아
기사에 등장했던 당사자는 크게 반발했다. 김재철 MBC사장은 기자회견까지 자처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이내 김우룡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또, <신동아> 기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몇 달 뒤, 김재철 사장은 김우룡 이사장에 대한 고소 방침도, 신동아 기자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도 슬그머니 접었다.)

기사의 파장은 인터뷰 주인공이었던 김우룡 이사장에게 이내 되돌아왔다. MBC노조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 민주당 등 야당의 거센 사퇴 요구에도 꿈적도 하지 않던 그가 기사로 인한 파장이 커지가 결국 “책임지겠다”며 사퇴를 표명했다.

<미디어스>는 세밑을 며칠 앞둔 지금 시점, 기획 인터뷰를 통해 2010년 언론계를 돌아보기로 했다. 올 해 ‘김우룡 쪼인트 파문’을 빼놓고는 언론계 이슈를 말할 수 없기에, 해당 기사를 쓴 기사를 쓴 한상진 <신동아> 기자를 지난 16일 오후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1층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자로서 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구분이 확실한 그였다. 다른 이들이 익히, 쉽게, 답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내가 답할 만한 질문이 아닌 것 같다”는 똑 부러지는 대답을 해 적잖게 당황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그가 강조한 것은 또렷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것. 그렇다. MBC를 둘러싼 전반의 과정에 대해 그는 ‘기사’로 말했을 뿐이다. 그는 당시 기사로 인한 후폭풍, 김우룡 이사장의 사퇴 등은 ‘기자로서 생각할 영역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한상진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한상진 <신동아> 기자
‘김우룡과 MBC, 8개월 전쟁’ 기사로 결국 김우룡 이사장이 물러났다. 기사를 쓰면서 이사장의 사퇴를 예상했나?

= 모든 기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기사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다’ 이런 부분은 기자가 생각할 영역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당시 어떻게 해서 그 기사를 쓰게 된 것인가? 단순히 김우룡 이사장을 인터뷰하는 과정이었나?

= 기사 제목이 ‘김우룡과 MBC, 8개월 전쟁’이다. 그 컨셉이었다. 김우룡 이사장이 취임한 이후 MBC와 방송문화진흥회, 정부의 관계가 복잡, 미묘하게 흘러갔고, 대립각이 계속 됐다. 해결되는 것 없이 계속 문제가 반복되었기에 취재, 보도해야 할 영역이라 생각했다.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원인, 결과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우룡 이사장을 만났다. 엄기영 사장이 사표를 낸 그 날(2월8일) 김 이사장에게 전화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신동아는 월간지이기 때문에 (다른 언론에 비해 다루는) 내용이 많고, 방대하니까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본인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약속을 잡아 2월9일 만나게 됐고, 취재를 시작하게 됐다. 정상적인 취재 수순이었다.

처음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엄기영 사장이 사표를 낸 직후였기 때문에 김 이사장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본인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듯해, 새 MBC사장이 선임되고 문제가 정리되면 다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두 번째 인터뷰가 준비된 거다. 김재철 사장이 선임된 후 김 이사장과 다시 전화 통화를 했고, 계열사 임원 인사가 정리된 뒤라 두 번째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주 정상적인 과정을 거친 취재였다.

김우룡 이사장이 쏟아낸 말을 보면서 기자와 친분이 있을 거라고 봤다. 친분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저런 말을 쏟아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미디어스
= 한번 확인해보면 아시겠지만 당시 김우룡 이사장을 인터뷰한 언론은 한 군데도 없었다. 각 사안에 대한 김 이사장의 코멘트를 받는 언론은 많았지만, 김 이사장의 입장을 (온전히) 묻고, MBC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친분이 없는 상황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2월8일 전화해서 9일 인터뷰를 했으니까. 워낙 화제의 인물이라 기자들의 취재 요청이 많았을 줄 알았는데, 이사장은 ‘자기 이야기를 듣는 기자는 아무도 없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언론은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럼 신동아가 이사장님 말씀을 들을 테니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엄기영 사장도 지난 2월8일 사표를 내고 나간 뒤,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짧게 ‘착잡하다’는 코멘트 한 것 말고는. 나갈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엄 사장이 (속 시원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MBC 문제의 핵심에 있었던 이들이 김우룡과 엄기영이기 때문에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인터뷰를 보면 상당히 다듬어지지 않은, 쏟아낸 말들을 거의 그대로 싣고 있었다. 후폭풍을 예상하고 원문 그대로 쓴 것인가?

= 그분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들을 최대한 손대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용 자체가 워낙 민감한 사안이 많았기에 자칫 손을 댈 경우 의도가 왜곡될 수도 있고 당사자가 본인의 발언에 대해 부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인신 공격성 발언 등 부적절한 것들을 제외하고, 그분의 발언 의도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

김우룡 이사장은 사퇴했지만 ‘큰집 쪼인트 파문’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사태는 마무리됐다. MBC노조가 진상 규명을 주장했지만 김우룡, 김재철 모두 입을 닫았다. 이런 부분이 아쉽지는 않나?

= 내가 애초에 기획했던 취지는 실질적으로 MBC를 지배하고 있는 방문진 이사장과 MBC, 노조 경영진 등 갈등에 대해 취재하는 것이었다. 기사를 쓰면서 그 목적을 달성했다. 그분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 끌어냈기에 기자로서 할 일은 다 했다고 본다. 기사로 인해 파장이 있든 없든,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진상 규명은) MBC 등 다른 누군가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신동아>에서 김우룡 관련 보도한다는 것을 신동아가 나오기 전에 들었다. 청와대에서 이를 막으려고 분주히 노력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아닌가?

= 기사 나가는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김우룡 이사장과 두 번 인터뷰를 끝내고, 3월 9일 이후 최문순 민주당 의원을 만났다. 김 이사장의 발언 가운데 최문순 의원의 해명 혹은 입장을 들어야 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MBC를 방만하게 경영했다’ 등 명예훼손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문순 의원, 엄기영 사장도 인터뷰 한 것이다.

▲ 김재철 MBC 사장 ⓒ미디어스
이 보도가 나간 뒤, 김우룡 이사장과 전화 통화를 해본 적 있나?

= 신동아는 통상 매달 15일 밤이 되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16일 오후 MBC노조에서 노보를 발행했는데 신동아 보도 관련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 김 이사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표현을 썼느냐’ ‘이런 내용을 담았느냐’, 예를 들어 ‘좌빨이라는 단어를 썼느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사실대로 썼다’고 이야기 하자 ‘그건 잘했네’라고 말했다. 나중에 전화 끊으면서 ‘수고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아닌가. 나와 다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범위 안에서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좌빨, 우빨이라는 표현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인 입장과 판단을 떠나. 그 분은 소신을 갖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 소신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내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나는 그 분의 정치사상도 충분히 보호 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미디어스>는 양문석 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글 ‘신동아, 왜 청와대를 겨냥했을까’를 게재한 바 있다. 취재한 기자로서 이 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당시 양문석 위원이 말했던 논지는 그거 같다. ‘동아일보가 정부의 종합편성채널 선정이 늦어지니까 청와대를 압박하기 위해 신동아를 앞장 세워 기사를 썼고, 그 기사로 인해 정부가 빨리 안 해주면 신동아가 때리니 안 되겠다’는 효과를 확신하는 글이었다. 그 분은 그렇게 믿고 쓴 것 같다. 또, ‘만약 동아일보가 언론의 본령 지키기 위해 썼다면, 신동아가 아닌, 동아일보에서 보도 했을 것’이란 부분도 있었다. 잊히지 않는다. 이는 신동아의 매체력 폄훼하는 거다.

그분의 품격과 인격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일단 팩트를 말씀드리면 그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가 기획, 취재하고 데스킹을 거쳐 나왔다. 그 과정에서 외압을 받았다든가 동아일보의 지시는 없었다. 그 분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기자를 안 해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를 했더라면 절대 그런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일 전혀 없었고, 세상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신동아 기사로 인해 많은 논평이 나왔다. 중앙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해 많은 신문들이 사설, 논평 등 수십 개를 썼다. 요즘도 가끔 당시 보도를 인용하는 언론도 있다. 각각 사설, 논평 보면 글을 쓰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 있다. 그래야 되고. 대부분 합리적인 영역에 있다. 그러나 양문석 위원의 글은 전혀 제 예상을 뛰어넘는 글이었다.

김우룡 보도와 관련해 언론 인터뷰를 많이 해봤나?

= 처음이다. 기사 나간 뒤, 많은 기자들이 나에게 전화했다. 미디어오늘부터 시작해서 한겨레 등 연락이 많이 왔다. 기자들의 대부분 질문이 그랬다. ‘김우룡 이사장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미안했지만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분의 자유 의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내가 답을 한다면 내 사견이 포함될 수밖에 없지 않나. 어쨌든 기사 때문에 (김 이사장이) 난처한 처지가 되었지만, 나는 그분의 인격, 생각과 사상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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