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 앞에 북한 인공기를 삽입한 연합뉴스TV에 대해 ‘관계자 징계’ 결정을 내렸다. “방송사가 해선 안 될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징계 자체가 아니라 방통심의위가 이같은 결정에 ‘민족의 존엄성과 긍지’ 조항을 적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규제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한 조항”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10일 연합뉴스TV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소식을 보도했다. 연합뉴스TV는 앵커백 화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진 앞에 북한 인공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배치했다. 해당 화면이 논란이 된 이후 연합뉴스TV는 사과방송을 진행했다. 또 보도본부장을 직위 해제하고, 보도국장·부국장·뉴스총괄부장 등 직원 11명을 징계했다.

▲문재인 대통령 앞에 인공기가 삽입된 연합뉴스TV 방송

13일 방통심의위는 연합뉴스TV에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 결정을 내렸다. 관계자 징계는 ‘과징금’ 부과 다음으로 높은 수위의 징계 처분이다. 방통심의위가 연합뉴스TV 징계의 근거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14조(객관성)과 함께 제25조 3항 위반을 들었다. 제25조 3항은 “방송은 민족의 존엄성과 긍지를 손상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조항은 방송의 역사적 사실 왜곡을 문제삼을 때 적용된다. 실제 방통심의위는 제25조 3항을 적용해 2014년부터 올해까지 총 10건의 법정제재를 내렸다. 주로 일본 군가를 사용하거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등의 방송사고였다.

또한 자의적인 판단 가능성은 문제제기로 이어진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역사 왜곡 방송을 바로잡겠다”면서 심의규정 제 25조 3항을 강화하는 규정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언론·시민단체에서 “박근혜 정부가 백년전쟁같이 정부의 뜻과 다른 역사 다큐멘터리를 막기 위해 규정 개정을 시도한다”고 했으며 결국 규정 개정은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5조 3항이 규제기관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한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연합뉴스TV에 제25조 3항을 적용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앞에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넣었다고 해서 민족의 자긍심을 손상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방송사고라서 연합뉴스TV에 법정제재를 내린다는 것을 동의한다고 가정해도, 그 이유가 ‘민족의 자긍심’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동찬 처장은 “제25조 3항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위험한 조항이다. 이런 조항을 기반으로 법정 제재를 한 것은 문제”라면서 “현재 방송심의규정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조항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조항들을 축소해야 하고,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국기가 국가의 존엄성을 상징한다는 측면에 있어 제25조 3항 적용이 적절할 수 있다. 이번 심의에서 해당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윤성옥 교수는 “다만 제25조 3항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명확하지 않은 조항을 바탕으로 타율규제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규제기관이 의도를 가진다면 모호한 조항을 토대로 자의적인 심의를 할 우려가 있다. 방송심의 규정 중 명확하지 않은 조항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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