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다른 중요한 일도 많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KBS의 문재인 대통령의 2주년 대담 후폭풍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중의 반발 그 자체보다도 문제인 것은 정치인들이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차기 대권주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런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4일 교통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논란이 된 KBS 기자의 질문에 대해 “표현이 살짝 삐끗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의 ‘독재자’라는 비판을) 제3자로써 전달하면서 본인의 소회를 묻는 형식이었으면 괜찮았는데, 거기에 인터뷰어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함께 개입된 형식으로 문장이 구성되어 있다”고도 했다.

과연 그랬는지 확인해보자. KBS 기자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야당 입장에서 보면 여러 현안들이, 야당이라고 하면 특히 제1야당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가 주도해서 여당이 끌어가는 것으로 해서 야당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얘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독재자 들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유시민 이사장이 필요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형식 그대로 말한 것이다. 그러면 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유시민 이사장이 KBS 기자의 말을 잘못 들었거나 지지층의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침 유시민 이사장은 이 인터뷰에서 “(정치를) 나중에 제가 혹시 하게 되면 욕하시라”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유력한 잠재적 대권주자이다.

또 한 명의 차기 대권주자인 이낙연 국무총리의 주장을 보면 여당 내 주요 인사들이 지지층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 10일 페이스북의 글을 통해 “신문의 ‘문’자는 ‘들을 문’자”라며 “많은 기자들은 ‘물을 문’자로 잘못 아십니다. 근사하게 묻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잘 듣는 일이 먼저입니다”라고 썼다. 직접적으로 KBS 기자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맥락을 볼 때 뭘 겨냥하고 있는지 분명해 보인다.

한 마디로 해서 이낙연 총리의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묻는 것’은 기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잘 물어야 새로운(新) 답을 이끌어 낼 수 있고, 그래야 새로운 답을 독자가 들을(聞) 수 있다. 권력에 묻지 않고 듣기만 하는 기자는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21년간 언론인으로 살았고 국회의원 도지사를 거쳐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이걸 모를리가 없다.

2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노무현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무대에 올라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대중이 분노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KBS 기자의 표정이나 태도, 말투를 말하지만 사실 이런 것은 분노의 근본적 이유가 될 수 없다. 분노의 동력은 언론과 정치가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유리되어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일상이 바쁜 현대인은 정치와 언론을 통해 ‘생활’하지 않는다. 신문의 화려한 1면 편집은 오직 그걸 보는 게 직업인 사람에게만 중요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성의 언론 시스템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엘리트-통치 시스템이 다루는 주요 이슈는 여전히 기성 언론의 방식을 통해 다뤄지기 때문이다.

KBS 기자가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들은 최근 정치권과 기성 언론이 중요하게 다뤄온 것들이다. 대통령의 답변 하나 하나가 주류에 속한 방송과 신문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배치될 수밖에 없는, 그런 질문들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이러한 대담은 처음이다.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기성 정치권과 주류 언론이 주로 제기해 온 문제 중심으로 주제를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생활인들에게는 북한이 발사한 것을 탄도미사일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거리로 나간 제1야당과의 교착 국면을 어떻게 풀 것인지, 1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0.3%가 나온 이유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은 말하자면 피부로 느껴지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니 모처럼 대통령이 2주년 대담을 한다고 해서 TV를 시청하게 된 지지층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모적 내러티브는 지식이나 어떤 능력이 아니라 맥락의 부재에서 탄생한다. 기성 언론과 엘리트-통치 시스템의 맥락이 대중의 감각 속에는 없기 때문에 그 빈 공간을 기자와 언론사의 ‘의도’에 대한 추정이 채우는 것이다. KBS 기자의 표정이나 말 한 마디, 시간 통제(?)를 위한 끼어들기에 과도한 관심이 집중되고 그것을 근거로 한 음모론적 인식이 확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을 불만섞인 표정으로 던지며 수시로 끼어들고, 심지어 “독재자”라고까지 하는 의도가 과연 무엇인가? 대통령을 망신주고 정치적 피해를 입히며 이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일전에 썼듯 이 대담으로 대통령이 잃은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대통령이 ‘현안’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고, 개혁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러면서 인간적 모습까지 드러냈다. 인사에 대한 답변이나 경제 지표를 주로 언급한 대목은 따로 지적할 문제가 없지 않지만 전체 대담의 내용을 퇴색시킬만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들이 이유없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식의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앞에서도 “이유가 있다”고 썼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지금과 같은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우리 공동체에 결코 바람직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와 언론이 더 노력해야 한다. 통치를 다수 대중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실제 그런 내용을 다뤄야 한다.

대통령이 더 자주 이런 대담 등의 기회를 갖기로 한다면 문제의 상당 부분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훨씬 더 다양한 주제를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어떤 언론사가 대담을 주관하든 기성 정치권과 주류 언론 시각 위주에서 벗어난 질문도 가능해질 것이다.

현 정권의 최대 무기는 여전히 대통령이다. 이 정권은 대통령이 가진 정치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을 수단으로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정치적 문제의 한복판으로 끌어 들여야 한다. 단기적 관점에서 선거공학을 논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라를 실제로 운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자들이 정치-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나 투자금 회수를 목표로 하는 주주가 아닌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되도록 정치와 기성 언론이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교훈을 얻을 때만 이번 사태는 생산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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