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눈 시리게 아픈 로맨스 <눈이 부시게> (2월 11~12일 방송)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지난 11일 방송된 JTBC <눈이 부시게>는 가슴 아픈 두 청춘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백마탄 왕자님 혹은 신데렐라, 캔디 같은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둘 다 아픈 청춘. 소주잔을 가운데에 두고 “내가 너무 애틋하다. 나는 내가 너무 잘됐으면 좋겠는데 내가 좀 후져”라며 소주 한 잔 들이키는 혜자(한지민)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고아원에 갈지언정 할머니한테 안 간다. 다시는 나 같은 놈 떠맡아서 지옥같이 살게 안 할 거다”라는 준하의 아프면서도 담담한 대화.

꿈이 명확한 남자와 뭘 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 여자.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여자와 사랑이 부족한 남자, 그러나 둘 다 자신만의 아픔이 있다. 남자는 가족의 결핍, 여자는 꿈에 대한 자신감의 결핍. <눈이 부시게>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로맨스다. 다른 20대의 그것처럼 달달하진 않지만 서로의 빈자리를 소주로 채워주는 그런 현실 로맨스 말이다. 그래서 두 남녀의 뜨거운 키스보다 따뜻한 포옹을 기대하게 만든다.

특히 이준하 역의 남주혁은 <눈이 부시게>를 통해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 쳐들어온 아버지에게 맥없이 맞고 쓰러지는 모습, 그 순간 카메라에 잡힌 초점 잃은 아픈 눈빛.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어디 가서 피투성이 상처를 내고는 아버지에게 뒤집어씌우던 준하의 아픈 눈빛은, 아버지를 구하려고 시간을 돌리다가 70세 노인이 되어버린 혜자의 슬픈 눈빛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

말없이 술을 마시는 혜자에게 “응원이 필요한 상황이야,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야? 아무것도 못해주는 상황이면 같이라도 마셔주려고”라며 섣부른 응원이나 위로 대신 같이 있어주고 같이 술 마셔주는 준하의 모습에서는, 한지민과 남주혁이 띠동갑 차이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이 어두운 터널을 함께 걸어가는 청춘동지처럼 보인다. 나이차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남주혁의 성숙하고 풍성한 연기력이 초반부터 돋보이고 있다.

그래서 다른 듯 비슷한 구석이 많은 이 남녀의 로맨스는 드라마 제목처럼 눈이 부실 것만 같다. 물론 그들 앞에 닥친 현실은 눈이 부시기는커녕 눈이 시릴 정도로 아프지만, 그걸 꿋꿋이 헤쳐 나가는 그들의 노력만큼은 눈이 부실 것이다.

이 주의 Worst: 이 꼰대 토론을 언제까지 봐야 되는지 KBS2 <6자회담> (2월 12일 방송)

이경규, 김용만, 박명수, 김희철, 장동민, 장도연. 여섯 명의 패널은 성별, 연령, 직업, 캐릭터, 성향 어느 것 하나 대표성이 없다. 그냥 아저씨 다섯에 장도연 한 명. 12일 방송된 KBS2 <6자회담>의 첫 번째 주제는 ‘꼰대’였다. 그 시작은 명절 친척들의 금기 질문 3가지였다. 결혼 안 하냐, 취업 안 하냐, 공부 잘하냐가 그것이었다.

KBS 2TV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6자회담>

명절의 금기 질문 리스트는 매 명절 때마다 기사로, 방송으로, SNS로 퍼져나가 이제는 온 국민이 외울 정도로 진부해진 주제다. 그런데 그 지겨운 질문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질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질문을 던져야만 했던 친척들의 심리를 대변하며 두둔한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다”, “지금 몇 시냐고 물을 순 없으니 그런 걸 묻는 것”이라면서.

꼰대의 어원을 설명하고, 개그맨들이 꼰대의 유형을 상황극으로 재연하고, 여섯 패널들이 각자의 경험담 혹은 지인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꼰대의 유형을 확장시키다가, 뜬금없는 명언으로 마무리했다. 결국 토론 시작 전에 했던 ‘꼰대가 사회적 문제다’라는 논의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셈이다. 그냥 잔챙이 같은 에피소드만 나열했을 뿐, 이게 왜 사회적 문제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는 전혀 하지 않았다.

KBS 2TV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6자회담>

백 번 양보해서 ‘꼰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여섯 패널들은 얼마나 생산적인 발언을 쏟아냈을까.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 이해할 수 있어요. 워크샵 느낌으로 하면 되니까”, “교장형 꼰대는 악의는 없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봐요.”라는 김희철의 꼰대 두둔 발언을 시작으로, 이경규는 한 프로그램 식사 자리에서 스태프들이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하자 다 해장국으로 통일하라고 버럭했다면서 일종의 무용담처럼 털어놓았다.

박명수는 토론의 흐름 자체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상황극만 하며 개그 욕심을 냈다. 아, 물론 웃긴 포인트는 거의 없었다. 이경규는 혼자 흥분하며 꼰대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자기 식대로 토론을 주도했고, 장동민과 김희철은 이에 동조하며 흐름을 이어가고, 김용만은 느긋하게 팔짱 끼고 관전했으며, 장도연은 설문조사 결과 같은 자료를 내밀며 비서 역할에만 급급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박명수가 ‘충고하고 싶어도 참는 것이 어른이다’라며 명언을 투척하자, 꼰대를 주제로 한 토론이 끝났다.

설 특집 1회성 파일럿 방송인 줄 알았는데, 4부작 방송이다. 그 말인 즉슨, 앞으로 두 번이나 KBS2 <6자회담>을 더 봐야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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