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없다", "방통위는 방통진흥원인가"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미디어운동시민단체들이 문재인 정부 미디어 정책의 '실종'을 비판하며 다시 미디어 개혁과제를 들고 나왔다. 이들 단체는 4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효성)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 시청자·이용자 권리 중심의 방통위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고, '시민 참여형' 방통위는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판단이다.

23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2019년 미디어운동시민단체가 제안하는 11대 개혁과제 발표 기자간담회-문재인 정부의 미디어개혁 실종과 4기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문화연대,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인권센터,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공동체라디오방송협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 등 10개 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들 단체는 오늘 발표된 11개 개혁과제를 방통위에 접수할 방침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없다"고 비판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오늘의 핵심요지는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없다', 그리고 '3기와 4기 방통위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3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2019년 미디어운동시민단체가 제안하는 11대 개혁과제 발표 기자간담회-문재인 정부의 미디어개혁 실종과 4기 방송통신위원회의 과제>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이들이 다시 모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결정으로 보인다. 강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유독 미디어 영역의 변화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촘촘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특히, 그 과정이 이뤄지는 하나의 시발점으로서 최근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를 단순 들러리 정도로 여길 뿐 파트너로 전혀 인식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히려 이전 방통위보다도 더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문제의식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미디어 정책 논의 및 결정에 있어 '시민참여형' 방통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총 11개 개혁과제를 다시 제안했다. ▲방통위를 시청자·이용자 권리 중심의 기구로 재편 ▲공영방송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제도개선 ▲무료보편적서비스 확대를 위한 지상파 정책 ▲시청권 보장을 위한 광고투명성 강화 ▲방송스태프·방송통신노동자 권리 강화 ▲공동체라디오 정책 체계 재구성 ▲유료방송 공적책무 부여 ▲성 평등 미디어 실현 ▲인터넷 본인확인제도 폐지 ▲통신심의 축소, 인터넷 표현의 자유 확대 ▲시민사회 역량을 강화하는 미디어교육 지원정책 등이다.

■ 방송통신기구, 방통위로 일원화… 시민참여형 거버넌스로의 전환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미래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통위 간 권한 혼재와 업무 중복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 부재로 정부조직개편은 소폭에 그쳤고, 방송통신기구 재편은 제외됐다. 당시 시민사회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사회적논의기구' 등으로 추후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현재 시민사회의 판단이다.

방송통신분야 정책은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권한과 업무가 흩어져 있거나 중복되어 있다. 이들 단체는 방송통신 정부 조직의 최우선 목표가 '공공성'이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국민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다루는 미디어 정책의 최종결정기구는 독립적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이들은 '공공성'을 목표로 하는 방통위에 시민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 방통위가 시청자·이용자 관점을 반영하는데 역부족이고, 공공성 의제는 사업자 요구에 따라 축소되거나 방치되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제안이다.이를 위해 방통위 내 시청자·이용자 정책 총괄 부서를 신설하고, 해당 부서에 민간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공영방송 투명성·책무성 강화… 이사회·시청자위원회 개선해야

공영방송 제도개선에 있어서는 크게 이사회와 시청자위원회 개선이 제안됐다.

4기 방통위는 지난해 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의견서를 마련했다. 방통위가 이사를 추천(선임)하는 현행방식을 유지하고, 가칭 '국민추천이사제'를 도입해 이사 정원의 3분의 1 이상에 대해 국민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국민의견 수렴은 전체 이사를 대상으로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이사 후보자 추천인 공개, 심사기준 및 추천 사유의 공개, 시민참여 방식 등 구체적 방안이 방통위 규칙으로 제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사회 구성에 있어 성평등 규정과 지역대표성 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시 양성평등기본법을 준용해 특정 성(性)이 정원의 60%를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지역 대표성을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 공영방송 이사회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 20명 중 여성 이사는 4명에 불과하다. 또 지역성을 대표하는 이사는 전무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사회 활동에 대한 감시와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경영평가에 이사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고, 회의공개 등 자치적인 운영원리를 확립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 보장을 위해 설치된 시청자위원회의 위상을 명실상부한 '시청자대표기구'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방송사업자나 사장이 자의적으로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해왔던 관행을 방지할 수 있도록 위원 선임방식을 개선하고, 시청자불만처리업무를 관장하도록 권한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이 제안됐다.

이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창현 KBS 시청자위원장(국민대 교수)는 "6월 이후 전체 시민사회 미디어운동 단체와 KBS 시청자위원회가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며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KBS 시청자위원회에 담아보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또 이 위원장은 "미디어운동은 KBS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장치였다"며 "1984년 시청료 거부운동을 비롯, 미디어운동을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공간과 기념일을 만들어 보고 싶다. 기념의 공간, 기념의 날을 만드는 데 시민사회와 연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2017년 8월 10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27개 언론시민단체가 주최한 토론회 '4기 방송통신위원회에 바란다' (사진=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 지상파 직접수신 확대 및 MMS도입 관련 구체적 계획 수립해야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의 정당성에는 시청자의 무료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현재 지상파 직접수신율은 5% 이하로 추정되고 있고, MMS(지상파다채널서비스)는 EBS 2TV 시험방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멀티 플랫폼 시대, 다채널 시대에 무료보편적 서비스 보장의 필요성이 있느냐는 반론도 존재하지만 노영란 메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처장은 "지난 KT 화재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지상파 직접수신 환경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고 말한다. 노 사무처장은 "방통위가 이 부분의 실시를 약속해놓고도 일언반구 말이 없다는 게 포인트"라고 꼬집기도 했다. 때문에 방통위가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방송광고제도, "광고제도만 보면 방통위는 방통진흥원 같다"

한석현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방통위는 지상파의 재원 확보라는 미명 하에 시청자에 대한 설득이나 의견 수렴 과정도 제대로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중간광고 허용을 발표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방송광고제도 개선과 관련한 시민사회의 요구는 크게 ▲지상파 중간광고 강행 중단 및 시청권 보장을 포함한 광고제도 전면 개편 ▲종편·지상파-홈쇼핑 연계편성 실태조사 및 금지방안 마련 ▲민영미디어렙 공적책무 부여 등이다.

시민사회는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과 관련해 시청권 훼손이 불가피 한 사안임에도 시청자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던 점, 지상파의 추가 재원 규모와 활용방안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강행을 중단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간접·가상광고 등으로 만연한 시청권 침해 문제를 상품고지 의무화 등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장기적인 지상파 재원 개선 속에서 시청자 설득과 함께 중간광고 추진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방송통신노동자들

지난해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와 함께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방송스태프의 호소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사와 제작사만이 스태프들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방통위가 사업자들을 규제하는 정부부처로서 반드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비정규직 방송스태프들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의무화 ▲방송계 탄력근로제 적용 제외 ▲통신노동자의 직접고용 확대방안 마련 등을 제안했다.

'턴키계약', '프리랜서' 등 다단계 하도급 계약구조 속에 있는 방송스태프들은 대부분 개별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못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 방송스태프 대부분의 노동자성을 인정했지만 소수의 방송·제작사들의 자발적인 개별근로계약 체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공정 계약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 공동체라디오는 민영방송?

시민이 참여하는 공동체라디오는 정부 방송정책에 포함되어 있을까. 시민사회는 공동체라디오가 방송정책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방송정책은 크게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대한 정책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공동체 방송영역은 제3의 영역으로 정부 정책 테두리 밖에서 방치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정책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규제는 받는다. 규제의 경우에는 민영방송에 대한 규제를 거의 동일하게 적용 받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시민사회의 설명이다. 진흥을 위해 기존 체계와는 분리된 별도의 방송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 유료방송사업자에 공적책무 부여해야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여부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료방송 인수합병(M&A)와 관련한 소식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유료방송 M&A, 허가·재허가에서 중요한 건 공공성 확보라고 말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10년 간 공정역영역의 발전은 후퇴한 반면, 산업영역의 유료방송 시장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규제완화 정책이 이뤄져 왔다. 그렇게 성장한 유료방송시장이 공적 책무를 지키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시민사회는 크게 ▲유료방송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심사제도 개선 ▲지역성 등 공적책무를 보장할 수 있는 유료방송 정책 마련 ▲유료방송 시청자위원회 설치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유료방송 간 M&A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노동권', '시청권', '지역성' 등을 주요 심사항목으로 설정하고, 사업자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료방송에 공적책무를 부여하는 방안의 하나로 '플랫폼 서비스의 개선'을 주요 목표로 하는 유료방송 시청자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채널 구성 및 편성에 대한 시청자 평가, 설치·AS 등에 대한 시청자불만 등 플랫폼 사업자의 공적책무 수행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시청자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 방통위에 '젠더 담당관' 두어야

시민사회는 방통위 정책에 젠더관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른 제안은 '젠더 담당관제' 도입이다. 모든 정책결정 시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영방송 이사의 성비, 각 방송사 및 방통위 내 정책 결정자의 성비, 각종 위원회의 성비 등 인력 구조 문제에 대한 관리·감독 역시 젠더 담당관이 맡게 해 성 평등 가치를 미디어 정책 전반에 녹여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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