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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증'- 세련된 영화적 화법과 영리한 전략, 아쉬움 남는 캐릭터 활용법[미디어비평]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너돌양 | 승인 2019.01.07 22:58

독일이 낳은 문제적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신작 <통행증>(2018)은 참으로 이상한 영화이다. 1942년 안나 세거스의 소설 <수용소>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점령당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나치를 피해 도망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영락없이 현대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시대물이라고 하기에는 고증이 엉성하게 된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영화를 끝까지 보다보면 이 또한 감독의 노림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감시를 피해 유럽을 떠나려는 망명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통행증>은 엄연히 동시대적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현대극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나치군은 나치 군복이 아닌 전투 경찰복을 입고 등장하고, 유대인 색출뿐만 아니라 불법 체류자에 대한 탄압 또한 서슴지 않는다.

영화 <통행증 (Transit, 2018)> 포스터

나치가 점령한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도망쳤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로에 선 게오르크(프란츠 로고스키 분)은 우연히, 지인의 부탁으로 호텔에 피신 중이던 유명 작가 바이덴에게 편지를 전달해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바이덴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마지막 소설 ‘독일여권’을 손에 쥔 게오르크는 그날 밤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은 친구를 데리고 마르세유 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며칠 뒤 게오르크는 무사히 마르세유에 도착하지만 같이 기차를 탄 친구는 죽었고, 친구의 시신을 뒤로한 채 기차를 빠져나온 게오르크는 마르세유 시내를 배회하던 중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듯한 마리(폴라 비어 분)를 만난다. 마리는 죽은 바이델의 아내였고, 출국도 미룬 채 마르세유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편의 행방을 찾고 있다. 다음날 멕시코 대사가 바이덴에게 보낸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멕시코 대사관에 찾은 게오르크는 자신을 바이델로 오해하는 멕시코 대사 덕분에 3주 뒤 멕시코로 떠날 수 있는 통행증과 배표를 발급 받는다. 

나치를 피해 독일, 프랑스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런 긴박한 상황에도 남편의 행방을 찾느라 떠나지 못하는 여자. 그 여자를 사랑해서 역시나 떠나지 못하는 남자들의 간절함이 섞인 <통행증>은 통속적인 멜로처럼 보이면서도 기묘하고, 야릇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다. 나치에게 쫓기는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만큼, <통행증>에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사라진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해 누군가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나는 영화에선 희망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운 좋게 마르세유를 떠나도,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당면한 운명은 죽음뿐이다.

영화 <통행증 (Transit, 2018)>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통행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왜 필사적으로 나치를 피해 도망치려 했을까. 전자제품 수리 기술자인 게오르크가 나치를 피해 도망치려는 이유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힌트를 통해 그가 파시즘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이고, 나치를 피해 파리로 마르세유로 도망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예술적 소양이 상당한 걸 봐서는 게오르크 역시 작가, 예술가이지만, 예술가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기술을 배웠을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겠다.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와 영화 속 내레이션을 통해 독일, 파리에 이어 마르세유에도 곧 나치의 봄맞이 (인종) 대청소가 시작될 것이 예고되는데, 그 소용돌이에 생명을 위협받는 이들은 전쟁, 기아, 정치적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피신한 난민 혹은 불법체류자들이다. 

나치군이 점령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빌려 오늘날 난민들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통행증>의 영화적 전략과 메시지는 영리하고도 명료하다. <통행증> 외에도 최근 유럽 영화에서 빈번하게 제기되는 이슈와 주제는 난민이다.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자,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한 <주피터스 문>(2018)과 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아키 카루이스마키의 <희망의 건너편>(2017)은 시리아 난민을 소재로 한 영화였고, 태국에서 제작된 영화이지만 지난해 열린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만타레이>(2018) 또한 미얀마 당국의 박해를 피해 태국 국경을 넘다가 목숨을 잃은 로힝야 난민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통행증>은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을 빗대어 난민 이슈를 거론한 점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영화 <통행증 (Transit, 2018)> 스틸 이미지

그런데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여성을 그려내는 방식이 남성중심적 시선에 치우쳤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남편과 헤어진 마리의 곁에는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마르세유를 떠나지 못하는 의사가 있다. 그럼에도 계속 남편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는 마리는 남편의 통행증을 발급 받게 된 게오르크와 급사랑에 빠지지만, 여전히 남편을 잊지 못하는 순애보(?)를 보여 준다. 이러한 마리 캐릭터는 마르세유를 떠날 수 있어도 떠나지 못하는 남자들의 갈등과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꼭 여성 주인공을 이 남자 저 남자를 오가며 그들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로 그려야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피해 탈출하는 망명자들의 이야기에 빗대 현재 유럽 사회에 대두되고 있는 파시즘을 비판하는 세련된 영화적 화법을 보여주면서도 여성 캐릭터 활용법은 아쉬움이 남는 영화 <통행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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