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아동·청소년 배우의 노동인권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4년 아동·청소년 배우 보호를 위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도입됐지만 구체적이지 않아 촬영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9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아동 청소년 배우 노동인권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관계자들이 밝힌 아동·청소년 배우 노동권 침해 사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은 “아역 배우는 보통 학원과 에이전시에서 (방송 일을)시작한다”면서 “현장에서는 실습이라는 이유로 점심을 먹으면 출연료를 주지 않고, 점심을 안 먹으면 (출연료로) 만 원을 주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19일 열린 아동 청소년 배우 노동인권개선을 위한 간담회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송창곤 국장은 “에이전시에서 갈취하는 것”이라면서 “보통 6개월간 갈취가 계속된다. 6개월이 지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려고 하면 압력이 들어와 출연을 못 시키게 한다”고 밝혔다. 송창곤 국장은 “에이전시 대표가 아역 배우 부모에게 가방을 선물 받았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배우 허정도 씨는 “(아동·청소년 배우의)노동 시간은 성인 수준과 같다”면서 “인격에 대한 보호는 없다. 아동, 청소년 배우에게 윽박지르고 욕설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허정도 씨는 “전쟁터인데 아이들이 총을 들고 나와 있는 격”이라면서 “학습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이들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성장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아동·청소년 배우의 노동권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관련 법은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2014년부터 아동과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보호를 위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시행되고 있다. 법에는 ▲아동·청소년 보호 ▲학습권·인격권·수면권·휴식권 보장 ▲용역 제공 시간제한 등에 대한 규정이 있지만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실효적인 제재 규정도 없다.

해외의 경우 한국과 달리 아동·청소년 배우 보호와 관련된 법이 세분화되어 있다. 미국·영국·프랑스의 경우 청소년을 연령에 따라 세분화하고, 배우의 연령에 맞는 용역 제공 시간과 학습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아동·청소년 배우가 장기 휴학을 하면 학교가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정에서 가정교사를 두게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현재 법은 연령에 대한 세분화된 내용이 부재하다”면서 “국내 아동 청소년 연기자의 권익 및 학습권 보장 실태는 공식적으로 조사된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종임 위원은 “(당국은)프로그램 녹화 시간·제작 현장의 대기 시간·휴식시간·안전장치 구비 여부·재산권 보호 등 보호 장치가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지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아동 청소년 연기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국내법이 제작현장에 적용되는지는 제작자의 윤리나 인격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임 위원은 “미디어에서는 뛰어난 연기력이나 주목받는 캐릭터로서의 아동 청소년 연기자를 조명해왔을 뿐 카메라 밖 연기자들의 생활이나 카메라 앞 연기자들의 어려움은 간과해왔다”면서 “아동·청소년 배우에 대한 체계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한 드라마의 야간 촬영 현장. 위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미디어스)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현행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아동·청소년 배우들의 기본권 보장의 필요성을 선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그러나 아동·청소년 배우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모호하고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어 실질적으로 규정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두나 변호사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의 법은 아동·청소년 배우의 노동 가능 연령과 노동의 범위에서부터 노동 시간·휴식·학업성취·계약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면서 “아동·청소년 배우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과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보완·개선하는데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시청자가 해당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권순택 활동가는 “시청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아동·청소년 배우의 노동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보이콧 운동 등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순택 활동가는 “연기자는 팬덤 문화가 있어 확실한 팬층이 존재하나 배우는 확실한 팬층이 없어서 어렵겠지만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도 씨는 “학교나 노동부에서 현장에 외부 보호자 1명을 파견해야 한다”면서 “에이전시는 현장에서 을이기 때문에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 권력 관계가 없는 사람이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아동 청소년 배우 노동인권개선을 위한 간담회'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주최로 19일 열렸다. 발표는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변호사·송창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대외협력국장이 맡았다. 토론자로는 배우 허정도·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PD·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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