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중에 피의자가 사망하는 것은 관계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사건이다. 특히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의 실체를 밝히고 문제를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이런 비극을 국면전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보수세력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불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주말 동안 이재수 전 사령관의 빈소에 들른 보수정치인들은 하나 같이 적폐청산의 탈을 쓴 문재인 정권의 정치보복이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여기에는 친박과 비박의 구분도 없을 정도이다.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가?

이재수 전 사령관은 비운의 인물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전임 기무사령관이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개인 비위에 대한 첩보를 보고했다는 이유로 쫒겨나자 직을 이어 받은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와 육사 동기로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도 남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비선권력을 두고 측근인 정윤회 씨와 친인척인 박지만 씨 인맥이 대립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재수 전 사령관은 자연스럽게 ‘아웃’됐다. 그 후임을 맡은 것은 최순실 씨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계엄령 문건 등의 핵심관계자로 지목된 상태지만 현재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비선권력을 따르며 국방부를 통제했다.

전임 정권에서 벌어진 기무사의 월권이나 청와대와의 유착관계 등을 밝히려면 국방부 장관에 이어 국가안보실장을 맡았던 김관진 전 실장에 대한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관진 전 실장은 지금도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등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보수언론 등은 검찰이 이재수 전 사령관에게 “윗선을 불라”며 압박을 했다는데, 그러니까 여기서 ‘윗선’은 김관진 전 실장일 것이다. 바로 그 김관진 전 실장은 이재수 전 사령관 빈소에 나타나 “참군인이었다”는 둥의 수사를 동원해 애도를 표했다는데, 기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9일 고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모습. (연합뉴스)

이재수 전 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난 자리에 추모 문구가 적힌 종이가 등장한 것도 기괴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는 “당신의 죽음은 조국을 위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써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검찰 수사를 받다가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조국에 도움이 될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재수 전 사령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윗선’ 그 자신의 안전이나 ‘적폐수사’를 중단시키는 등의 정파적 효과에 의한 것일 거다. 즉, 종이에 적힌 추모 문구는 특정 정치세력에 소속되었거나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보수언론들은 바로 이런 시각을 재생산하면서 이재수 전 사령관의 억울함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기무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것 밖에 없는데 정권과 수사기관이 이를 ‘사찰’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재수 전 사령관 본인은 당사자로서 억울한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무사의 역할과 권한을 중심에 놓고 보면 당시 상황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기무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음주행태나 TV시청 내용, 인터넷을 통한 중고거래 내역까지 파악했다. 이러한 행위의 의도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 등을 관리하기 위해서 였는지 아니면 당시 기무사 관계자들의 주장대로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서였는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더 따져 볼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기무사가 했다는 일 자체가 사찰의 범주 내에 들어간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민간인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기무사의 임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호 참사 당시 군이 역할을 했고 특히 해군이 구조나 지원 등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기무사가 예를 들어 군 소속 현장 요원 등의 일탈이나 비위 등에 중점을 두었다면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밝힌 내용들은 이 범주를 넘는 것이며 심지어 기무사가 세월호 인양 시점과 같은 정책적으로 민감한 쟁점에 대한 판단이 포함된 보고서까지 작성했다는 의혹까지 있다.

이런 일들은 군 조직인 기무사의 권한과 역할을 명백히 넘는 것임에도 군 통수권자의 권력을 보좌한다는 ‘통수보좌’란 명분으로 그간 이뤄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의 행태에 박근혜 정권만의 특별한 맥락이 작용한 것인지, 아니면 지속 되어온 잘못된 행태를 계속해서 한 것에 불과한지는 사건의 실체를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떤 경우든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지난 8월 문재인 정권은 국군 기무사령부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바꾸고 조직을 축소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그간 기무사의 일탈을 정당화해 온 ‘통수보좌’ 기능은 그대로 남아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 본인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이 권력을 함부로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정권이 바뀌고 다른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에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지금 이 사건을 대하는 보수세력의 태도는 이런 확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불충분한 개혁의 결과가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부조리를 끝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