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아시아경제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문건에 '한-미 동맹 균열이 심각하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자사 보도를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아시아경제는 "해킹 조작이 있었다면 본지 또한 피해자"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시아경제가 해당 보도를 위해 취재 의무를 다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아시아경제는 28일 '한반도 정세 관련 보도 취소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시아경제는 해킹 논란을 야기한 지난 26일자 '한미동맹 균열심각…靑의실토' 등 2건의 기사를 경찰의 관련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이 보도에 대해 국가안보실을 사칭해 작성한 문건으로 해킹을 통해 전파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만약 수사 결과 이 보도와 관련, 해킹 조작이 있었다면 본지 또한 피해자"라면서 "하지만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로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을 밝혀 드린다. 혼란을 겪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도를 취소한다는 점, '해킹 조작이 있었다면 본지 또한 피해자'라고 한 점이 눈에 띈다.

<한반도 정세 관련 보도 취소합니다> 아시아경제 11월 28일자 보도

이와 함께 아시아경제는 해당 보도의 취재 경위도 밝혔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17일 해당 보도와 관련된 학술회의 주최 측으로부터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평가와 전망(한중정책학술회의)'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첨부된 이메일을 받았다"며 "메일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전략비서관 특별강연 원고'라고 적시돼 있었다"고 했다.

이어 "학술회의가 열린 22일 오전 문제 메일의 발신자로 적시된 A대학 B연구원과 통화했고, 청와대 비서관의 행사 참석과 강연 여부를 확인했다. 당시 통화에서 이 연구원에게서 청와대 비서관의 참석과 그 자료의 발표 여부에 대해 '점심에 발표한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또 본지 취재기자는 이 연구원과는 메일 외에도 행사 당일 세 차례 통화하면서 행사의 진행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이 기사가 보도되기 이전인 지난 26일 오전 10시께 청와대 측에도 문건의 존재를 알리고, 최종 확인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청와대측으로부터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수준의 답변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수준"은 정확히는 "문건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아시아경제가 취재의무를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문건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당사자 취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26일 JTBC '뉴스룸'은 "지난주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을 사칭한 이메일이 대규모로 유포된 것으로 JTBC 취재 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메일은 지난 17일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연구원 서모 씨 명의로 보내졌다. 메일에 첨부된 파일에는 '권희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강연 원고'라고 적혀 있었다.

서 씨는 JTBC'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제 계정을, 해킹을 당해서 그 문건을 사람들에게 보냈다고 하더라. 저희 연구소 김흥규 소장님도 영국 출장 중에 해킹을 당하셔서 소장님은 보낸 적이 없는데 소장님 이름으로...(발송됐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도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스피치 하는 건데 민감한 사안이 포함돼 있고 보안메일로 취급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않나. 권 비서관에게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느냐고 확인했더니 본인은 절대 그런 메일을 보내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태의 전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김 소장은 지난 13일 권희석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명의로 된 문제의 이메일을 받았다. 권 비서관은 22일 행사에서 오찬 연설을 하기로 예정돼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김 소장은 문서에 적시된 '안보 사안이니 보안을 요한다'는 문장을 보고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공개발표문이었기 때문에 보안을 요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김 소장은 권 비서관에게 연락해 권 비서관이 보낸 메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고, 행사 참석자들에게 권 비서관을 사칭한 이메일을 조심하라고 알렸다. 그런데 이후 17일 다시 같은 제목의 이메일이 중국정책연구소의 서 씨 이름으로 다시 발송됐다. 김 소장은 재차 행사관계자들에게 주의 메일을 보냈다.

김 소장은 "서 모 연구원의 메일을 도용해 마치 권 비서관의 파일인 것처럼 저희 회의 참여자를 포함해 다중에게 뿌린 것”이라며 “저희도 이를 인지하여 참여자들에게 바로 경고 메일을 보내 아직 피해자로 연락 온 것은 없다. 나중에 보니 서 연구원의 별도 이메일까지 만들어 뿌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김 소장은 "서 모 연구원의 명의를 도용해 뿌린 파일이 아시아경제 기자에게도 전달되어 이 문제의 보도가 나간 것으로 보인다"며 "저에게 확인 작업만 거쳤더라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분명한 사실은 권희석 비서관이 문서를 보낸 바 없고, 강연 내용도 보도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또한 해명대로라면 아시아경제는 연구소 연구원으로부터 '점심에 발표한다'는 설명을 듣고, 행사 당일에도 세 차례 통화하며 행사의 진행을 확인했음에도 정작 현장에는 가지 않았다. 문건의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셈인데 현장에 가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

더구나 아시아경제는 '해킹 조작이 있었다면 본지 또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는 일종의 피해자 코스프레로 사실 확인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언론사가 할 말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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