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두영)가 지속되는 턴키계약 및 장시간 노동 근절을 요구하며 MBC를 항의 방문했다.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두 차례 MBC 사장 면담을 공식 요청했지만 MBC 측의 별다른 입장을 받지 못해 직접 방문에 나선 것이다.

방송스태프지부는 MBC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사장 면담을 위해 MBC 출입을 요구했으나 안전관리요원에 가로막혀 MBC 측과 40여분을 대치했다. 이후 이어진 MBC 비서실과의 간담회에서 MBC 측은 이번 주 내로 사장 면담 일정을 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27일 오전 서울 상암 MBC 사옥 앞에서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장시간 촬영 및 턴키 계약 강요하는 MBC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디어스)

27일 오전 서울 상암 MBC 사옥 앞에서는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의 '장시간 촬영 및 턴키 계약 강요하는 MBC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두영 지부장을 비롯해 김진규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수영 방송계갑질 119 변호사 등이 참석해 MBC가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두영 지부장은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공청회 등 여러 공식석상에서 대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방송사와 제작사는 우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며 "대화하는 척 하면서 시간을 벌고, 시간을 벌어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한 게 아니라 새로운 꼼수를 들고오는 실정이다. MBC를 필두로 노동기본권을 얻기까지 모든 방송사에 투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지부 출범 이후 문제제기를 이어오며 대화와 협력을 촉구해왔지만 현장에서는 개선이 보이지 않았고, 대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들은 MBC의 개선 속도가 방송사 중 가장 느리다고 보고 있다. '배드파파'를 비롯해 대부분의 MBC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턴키계약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용관 한빛센터 이사장은 "사회 모든 부분에서 적폐청산을 얘기하고 있는 언론이, 공영방송이 자기 자신의 적폐는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가"라며 "공영방송 MBC에서 먼저 환경 개선에 앞장서야 하는데 더 착취하고 있다. '대화'라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 노력마저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MBC 파업을 적극 지지했던 시민단체에서도 대화를 촉구했다.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저는 MBC 앞에서 '힘내라 마봉춘'피켓을 들고 MBC를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꽤 많다. 오랜시간 MBC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탰는데 이 자리에 참석하게 돼 착잡한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했던 공영방송 MBC의 책무는 MBC가 우뚝서서 우리를 이끌어달라는 것이 아니였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자는 얘기였다"면서 "이분들의 목소리가 불합리하거나,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모난 목소리였다면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MBC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다. 왜 각자도생의 동물의 왕국을 만드는 일에 MBC가 앞장서려 하나. 목소리에 대한 답을 함께 시작해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시민단체 대표와 노조 대표들이 '드라마에는 노동자가 없다'는 문구가 새겨진 종이박스를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김진규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 (미디어스)

김수영 방송계갑질 119 변호사는 "턴키(Turn-key), 키를 돌리면 시작된다는 뜻이다. 방송제작 현장에서 키를 돌리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CP가 큐사인을 내리면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작품을 만든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알아서 장비비와 인건비를 쓰고 각자 책임을 지라고 한다. 법원이 이를 보면 위장도급이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턴키계약'은 조명팀, 동시녹음팀, 그립(특수장비)팀, 미술팀의 경우 용역료 산정기준 없이 총액만을 명시하는 일종의 도급 계약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방송제작 특성상 사용자성이 방송사·제작사에 있기 때문에 '위장도급'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부터 언론시민사회단체 요청으로 드라마 제작환경 근로실태 조사를 9월 중 마무리 해 프리랜서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도출했으나 턴키계약을 맺고 있는 도급감독들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자회견 직후 방송스태프지부 일동은 최승호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서한을 들고 MBC로 향했다. 이들이 사장 직접 면담을 요구하게 된 배경에는 몇 차례의 과정이 있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 9월 20일 MBC와의 면담을 통해 제작환경 개선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10월 15일에는 MBC 측에 공문을 보내 개별근로계약 체결, 제작가이드 제정을 위한 TF 참여 등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자 면담은 거부됐다.

이후 지난 9일 한국방송협회 '상생 방송제작을 위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 선포식'에서 지부는 최 사장에게 면담 요청에 응해달라는 요구를 전달했고, 최 사장 역시 이를 수용했으나 이후에 면담 요청에 대한 조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기자회견 직후 방송스태프지부 일동은 최승호 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항의서한을 들고 MBC로 향했다. 그러나 서한을 든 지부 일동은 MBC 사옥 문 앞에서 안전관리요원들에게 가로막혀 출입이 통제됐다. 이후 40여분간의 대치 끝에 MBC 비서실 관계자와 지부 간 비공개 간담회가 진행됐다. (미디어스)

서한을 든 지부 일동은 MBC 사옥 문 앞에서 안전관리요원들에게 가로막혀 출입이 통제됐다. 안전관리국은 최 사장을 비롯한 MBC 관계담당자들이 현재 자리에 없고, 사전 약속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이유로 문을 막아섰다. 이에 지부측은 최 사장이 면담을 약속했지만 면담 요청 이후에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며 최 사장과 담당자 면담을 촉구했다. 결국 40여분간의 대치 끝에 MBC 비서실 관계자와 지부 간 비공개 간담회가 진행됐다. 비서실 측은 이번 주 내로 사장 면담 일정을 정해 전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스태프지부가 사장 면담을 요구하는 이유는 장시간 노동·턴키 계약 관행에 대한 방송사의 지침이 있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제작사 측은 방송사의 지침에 따라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부는 방송사와 제작사가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며 시간을 끌고 있고, 그 사이 장시간 노동과 턴키계약 관행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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