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 방정오 전 대표가 TV조선 대표이사직을 사퇴했다. 최근 불거진 초등학생 딸의 운전기사 폭언 논란 때문이다. 언론이 공개한 방 전 대표 딸의 음성은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그러나 10살에 불과한 초등학생의 음성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고, 초점이 아이에게 맞춰진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7일 MBC는 <허드렛일에 폭언까지…"나는 머슴이었다"> 리포트를 방송했다. MBC는 조선일보 사주일가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운전기사의 증언과 녹취를 토대로 조선일보 일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운전기사 김 모 씨가 자녀들의 등하교, 사모 수행 등 허드렛일을 담당했는데, 디지틀조선일보로부터 급여를 받았다고 한다. 사주일가의 일을 담당하면서 회사가 급여를 지급했다면 배임죄나 횡령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다. 방정오 전 대표의 딸이 '해고'를 입에 담은 후 실제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MBC는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방 전 대표 초등학생 딸의 음성을 함께 공개했다.

21일 미디어오늘은 <[단독] 조선일보 사장 손녀, 운전기사 '폭언' 녹취록 공개>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MBC 보도에서 음성이 조금 더 구체화됐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미디어오늘은 방정오 사장 딸의 음성을 #1~#5로 정리해 1분 40초 분량의 음성파일로 만들어 함께 게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급력은 컸다. 미디어오늘이 음성파일을 공개한 후 주요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는 '조선일보 손녀', '방정오 딸' 등으로 도배됐다. 지난 21일 미디어오늘이 음성파일을 공개한 후 23일까지(네이버 기준) '조선일보 손녀'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가 331건, '방정오 딸'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가 350건이다. 두 단어가 모두 들어간 기사가 248건이다. 반면 지난 17일 MBC 보도 이후부터 미디어오늘 보도 전까지 같은 키워드로 작성된 기사는 각각 2건, 4건이다. 미디어오늘의 음성파일 공개가 그만큼 파장이 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MBC와 미디어오늘이 방정오 전 대표의 10살 초등학생 딸의 음성을 공개한 것이 언론윤리 차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린이 보호는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짊어져야 할 책무다. 따라서 언론은 어린이에 대한 취재·보도를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제7장 '어린이와 청소년 인권'의 2는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한다"고 돼있고, 7장 2의 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충격을 줄 우려가 있는 선정적, 폭력적 묘사를 자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자녀도 사회 보호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MBC와 미디어오늘이 방정오 대표 딸의 음성을 공개한 것은, 음성을 통해 조선일보 일가의 특권의식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사회 지도층의 일그러진 도덕의식을 고발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개인 일을 봐주는 사람의 급여를 회삿돈으로 지급하는 등의 법적 문제를 제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살은 '10살 초등학생'에게 돌아갔다.

자극적인 음성 공개가 과연 필수적이었냐는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사건의 본질은 디지틀조선일보가 회삿돈으로 운전기사를 고용해 조선일보 오너 일가에게 제공했다는 점"이라며 "아이의 음성을 보도할 이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아이가 공개돼 검색어 1위, 2위하고 있는데, 아이가 언론의 비판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이런 보도가 적절한지 공론화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런 것에 단독을 붙이고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논의해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이의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거기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기득권의 일그러진 모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필요한 만큼 인용하더라도 아이의 목소리까지 들려줄 필요가 있었을까. 아이 말을 정리하고 어떤 어투였다고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게 더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 교수는 "언론 윤리적 관점에서 아이의 음성까지 올릴 필요가 있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녹취록을 작성해서 글로 올렸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음성파일 자체를 공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더군다나 (언론의) 본질을 강조해야 할 언론비평지가 그런 보도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유보적 입장을 내놨다. 정 교수는 "조선일보든, 경제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이들이 최소한 사람을 대하는 자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인권을 고발한다는 면에서는 훌륭한 고발이었다"면서도 "한편으론 아이를 악마처럼 비추는 자극적인 내용이다. 녹취를 보여주지 않고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 방법이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본질이 '자식을 잘못 키운 부모'의 문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민하 저술가는 "본질적으로 운전기사가 아이의 말 대로 해고된 게 문제"라면서 "하지만 아이의 발언을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보도한 것은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어린이의 일탈로 몰아가면, 그렇다면 본질인 TV조선의 문제 등이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될 우려가 있다"며 "그래서 음성파일을 공개할 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2일 방정오 전 대표가 TV조선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횡령·배임 등에 대한 사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방 전 대표의 사과문은 "제 자식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운전 기사분께도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다시 사과 드립니다. 저는 책임을 통감하며 TV조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는 내용이었다.

인권의 측면에서도 음성공개는 과도했다는 지적이다. 이민석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아이가 만 9세인데 형사미성년자가 만 14세다. 최근 형사미성년자 연령 낮추자는 얘기도 만 12세 정도"라며 "촉법소년이라고 봐도 너무 어리다. 이런 아이의 음성까지 공개하며 보도하는 건 과도하다. 아직 인지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에 대한 인격침해"라고 비판했다.

현장 기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일간지 기자 A씨는 "굳이 음성파일 전부를 공개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결국 클릭수를 높이려고 했던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A기자는 "단독 전쟁 속에서 다른 언론이 이런 식의 보도를 했다고 하면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미디어 비평하는 곳에서 이런 보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매체 기자 B씨는 "음성공개 여부를 따지는 건 너무 이상적인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상만 쫓다보면 현실에서 드러내야 할 것을 놓칠 수 있지 않나"라며 "가해자의 시선에서만 보지말고 피해자의 시선에서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상이 어린아이였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라고 말했다.

주간지 기자 C씨는 "아이가 만약 일반 시민의 아이였다면 공개해서는 안 됐다. 그러나 1등신문이란 조선일보, 한국의 최고 엘리트, 특권층의 아이라면 충분히 보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충분히 국민적 공분을 자아낼 사안이었고, 공개한 것이 팩트가 아닌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제지 기자 D씨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잘된 보도라고 본다"라며 "어찌됐든 사건 자체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D기자는 "설령 대상이 아이라 해도, 잘못된 점을 세상에 알리는 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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