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우리나라 IT업종 노동자들의 최근 1년간 자살시도가 일반 성인 기준의 28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IT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위험수위에 있다는 것인데, 이유로는 초장시간 노동, 파견·하도급 관행, 프리랜서 노동실태 등 고질적인 노동문제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6일, 지난 9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IT노동자 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철희 의원실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가 ▲심각한 장시간 노동 ▲파견 및 하도급 관행 ▲허울뿐인 '프리랜서'의 노동실태 ▲건강도 전망도 잃은 IT노동자로서의 삶 등 네 가지로 요약된다고 밝혔다.

(사진=Caspar Rubin on Unsplash)

이번 조사에서 IT노동자들 중 25.3%는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응답했으며,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을 준수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2.4%에 불과했다. 52시간 상한제 적용 이후 실제로 근로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응답 역시 17.4% 뿐이었다. 응답자들은 이러한 연장근로 발생 이유에 대해 대체로 '하도급 관행', '무리한 업무일정', '비효율적인 업무배치와 조직의 의사결정'을 꼽았다.

더 큰 문제는 초과근로시간이 아예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 전체의 57.5%, 300인 이상 사업장 정규직의 26.1%가 근로시간이 집계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아예 출퇴근 및 근무시간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8.3%였으며, 출퇴근 관리시스템인 출입카드를 사용한다는 응답은 43.6%에 불과했다. 10시 이후까지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야간수당을 지급받지 못한다는 의견도 52.6%에 달했으며 초과근로수당을 근로기준법 기준으로 지급받는다는 응답은 5.4%에 불과했다.

하도급 관행은 어떨까. 응답자 중 201명이 '원청·발주업체에서 일한다'고 답했는데, '원청·발주업체와 계약했다'는 응답은 100명에 불과했다. 수치상으로 절반이 하도급업체와 계약한 셈이다.

이철희 의원실은 "IT업계에는 일명 ‘프리랜서’들을 하도급업체들과 연결해주고 커미션을 받는 속칭 ‘보도방’, 즉 인력거래소가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다"며 "IT프리랜서들은 원청 또는 2, 3차 하도급업체의 채용절차를 거쳐 이들 인력거래소와 용역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사고 발생시 소속사업장은 인력거래소가 된다. 이들 인력거래소는 정식 사업장이나 정규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이 경우 아예 산재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응답자 중 25%를 차지하는 프리랜서의 처우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프리랜서 응답자의 62.4%가 계약기간이 1개월~6개월 미만이라고 답했으며 1년 이상 장기계약을 맺는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또 이들 중 65.6%는 프로젝트 수행 중 그만 둔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결과는 프리랜서들의 근로 안정성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들 중 32.6%만이 프리랜서의 살멩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나머지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희망했다. 이유는 '고용 안정성'(75.3%)이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IT노동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자살을 생각할만큼 위험수위에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 중 최근 1년간 자살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응답은 48.71%로 절반이 안 됐다. 그 중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는 응답자가 19명(3.78%), 실제로 최근 1년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4명(2.78%)이나 되었다. 우리나라 성인 일반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0.1%인 걸 고려할 때 IT노동자들의 자살시도율은 일반 성인의 약 28배에 달한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철희 의원실)

이철희 의원은 이번 실태조사와 함께 두 가지 사건을 언급했다. 하나는 2016년 3월 3일 M증권회사의 모바일 앱 구축 프로젝트 중에 사망한 고 장원향씨의 사건, 또 하나는 올해 초 과로와 스트레스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씨 사건이다. 이 두 사건에서 보이는 IT근로자들의 삶이 이번 실태조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 이 의원의 설명이다.

이철희 의원은 “90년대 말, 2000년대 초 IT 기술자를 꿈꾸며 공대로 진학했던 많은 인재들이 한참 일할 나이인 30대 중반, 40대 초반에 이른 지금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면서 "IT 강국을 표방하며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겠다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대열에 설 인재를 키우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의원실은 이번 조사 응답자의 70%가 정규직이었다며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IT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려했을 때, 실상은 이 조사 결과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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