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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놈’- 정의로운 열혈 기자에게는 '히어로'의 길만이[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10.19 16:57

'직필(直筆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음)’은 늘 위태롭다. 유래를 따질 것도 없이, '동호직필(董狐直筆)’이라는 고사성어로부터 조선의 역사 구비구비에서 직필로 간언했던 선비들은 그 붓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고래의 직필의 역사는 오늘날 기자 정신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언론 역사는 곧 정의로운 직필로 인해 거리로 내몰려야 했던 고달픈 저항의 역사였으며, 해외라고 다를 것이 없다. 사우디 정책과 왕실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의 날을 세웠던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는 '아랍 세계에 필요한 건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호소를 담은 칼럼을 끝으로 사우디 왕실이 보낸 암살조에 의해 살해 및 신체 절단, 사체 훼손이라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2018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직필'에 대한 탄압. 펜으로 만들어낸 힘은 강고하지만, 그 펜을 쥔 인간은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마블의 상상력을 통해 '히어로'로 승화된다. 

정의로운 기자 에디 브록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영화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가 인간 숙주와 결합하며 인간 따위는 거침없이 먹어치우며 지구를 넘보는 '빌런'이, 선인 인간의 정체성과 결합하며 그 경계선의 빌런 히어로로 거듭나는 걸 홍보의 초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여기서 선의 주체로서 프리랜서 기자인 에디 브록(톰 하디 분)을 내세운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에디 브록에게는 '전과(?)'가 있다. 1986년, 88년 코믹스에 그 등장을 연 에디 브록은 그때나 지금이나 열혈 기자였다. 근데 문제가 좀 있는. 그의 문제라는 건, 보도해야 할 기사라고 여겨지는 사건에 있어 브레이크가 잘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믹스 시절 에디 브록도 마찬가지다. 데일리 글로브지 기자였던 에디 브록은 그 데일리 글로브지에서 범죄자에 대한 특집 기사를 썼는데, 그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인물을 선정하여 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된다. 

<스파이더맨3>에서 퇴사한 에디 브록은 자신이 실패한 기사를 성공시킨 피터 파커에게 앙심을 품고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심비오트를 받아들여 '베놈'이 되어 '빌런'의 캐릭터에 충실한다. 

하지만, <베놈>은 <스파이던맨>에서 찌질했던 기자 에디 브록을 '정의'의 사도로 리뉴얼한다. 역시나 데일리 글로브에서 쫓겨난 걸로 설정되지만, 그건 <스파이더맨>과는 다른 뉘앙스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의 보도 태도로 둔화된다. 그런 그의 '정의로운 성향'은 현재 기사를 다뤄주고 있는 언론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생체 실험을 하는 혐의가 있는 거대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에 대한 의문을 쉬이 접지 못한다. 그러다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변호사로 고용된 연인 앤 웨잉(미쉘 윌리암스 분)의 노트북에서 석연치 않은 자료를 발견하고 '기자 정신'에 입각하여 보도하지만, 그와 연인의 실직과 이별로 그의 정의로움은 마감된다.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역시나 <스파이더맨3>에서 대상 인물에 대한 잘못된 설정에 이어 연인의 노트북 내용을 도용한 '도덕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스파이더맨3>에 비하면 애교로,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이 '물불 가리지 않는' 식의 캐릭터적 설정의 완화로 표현된다. 하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으면 뭐하나, 바위에 부딪친 계란처럼 에디와 에디의 그녀는 무참히 깨진다. 

그로부터 6개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압박으로 에디 브록은 그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기사를 쓸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여전히 연인을 잊지 못하지만 그녀에게는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 그러던 차,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노숙자들을 마구잡이 생체실험으로 그 생명을 앗아가는 걸 목도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도라 스커스(제니 슬레이트 분) 박사가 이전에 에디를 찾아온다. 이젠 더 이상 '정의롭지'않겠다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에디는 스커스 박사와 함께 라이프 파운데이션 실험실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외계에서 온 심비오트의 숙주가 되고 만다. 

기자의 정의가 실현되는 길은 숙주?

영화 <베놈> 스틸 이미지

대부분의 숙주가 심비오트에게 먹혀버리고 마는 것과 달리, 에디의 몸에 기생한 심비오트는 그의 몸을 매우 만족해한다. 살아있는 것들을 마구 먹어치우려고 하는 이 외계의 빌런은 심지어 에디와 합체하며 변화되기 시작한다. 아마도 무난한 재미의 히어로물로 찾아온 <베놈>에서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외계 심비오트가 에디를 숙주로 삼아 선과 악의 경계에 서게 된 이 지점이 아닐까.

물론 영화는 전반부에 정의로운 기자 에디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풀었고, 거기에 더해 혹자의 평처럼 '버디'무비처럼 정의로운 에디와 막강 빌런 외계 심비오트의 결합을 티격태격 액션씬으로 표현해 냈다. 하지만, 에디의 몸을 숙주로 삼은 외계 심비오트가 자신의 동료를 배신하고 지구별을 지키기로 변심하기까지의, 세계관의 변화라는 극적인 포인트에서 어쩐지 행간이 넓다. 그저 빌딩 꼭대기에서 바라본 지구별의 아름다움으로 퉁치기엔 말이다. 

결국 에디 브록의 거침없는 정의, 자신의 밥그릇과 연인의 밥줄까지 걷어찰 정도의 그 호기로운 정의가 식인 외계 심비오트마저 변화시킨 동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펜으로 실현하려 했던 에디의 정의, 그 좌절의 과정이기도 하다. 들통 나면 이별은 당연한 연인의 노트북 정보마저 포기 못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라이프 파운데이션 실험실에 결국 잠입한 에디의 기자 정신은 그러나 결국 외계 심비오트와 결합이라는 히어로적 방식이 아니고서는 해결이 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아이러니한 '승화'인 것이다. 

즉 성체와도 같던 거대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은 역시 에디 브록이라는 기자의 펜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걸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지구촌 어딘가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쓴 기자가 살해당하고 있는 현실처럼. 그래서 빌런이자 히어로인 베놈의 활약은 통쾌했지만 뒷맛은 쌉싸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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