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남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 사진 ⓒ 연합뉴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셋째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뉴스는 현대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이자 세계적 정치스캔들이다.” (9월15일자 조선일보 기획 특집. 세습 독재 국가들)

옳으신 말씀. 조선일보는 3대 세습의 북을 통해 세습 독재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 7개국을 소개했다. 시리아, 콩고, 아제르바이잔, 쿠바, 리비아, 이집트, 카자흐스탄 등이다. 콩고의 경우 아버지 로랑 카빌라 대통령 암살 직후 아들 조지프 카빌라 현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35세 이상으로 되어있던 출마 나이 제한을 30세 이상으로 고쳤다고 한다. 최근 대한민국의 한 장관이 석.박사 자격기준을 살짝 바꿔 딸을 특채한 경우와 닮았다.

북은 지난 해 12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북은 ‘화폐교환에 관한 내각결정’(제423호)에서 ‘인민생활 안정과 향상’과 ‘경제관리체계와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화폐개혁을 했다고 밝혔다. 북의 화폐개혁은 시장경제 억제와 사회주의 개혁경제 가능 강화, 인플레이션 억제, 지하자금 통제 등의 효과와 함께 후계구도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의 권력세습이 안정되게 이루어질 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안팎에서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조선일보의 말대로 세계적 정치 스캔들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3대 세습이 이뤄진 나라로 대한민국의 사례를 빼먹었다. 이병철 회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권력을 장남 이재용에게 물려주었고, 이재용 씨는 불과 60억 원으로 국내 최대 기업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이재용 씨는 1995년 말 삼성 계열사인 에스원 주식 12만1800주(23억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주(19억원)를 매입한 뒤 두 회사가 상장하자 605억원에 보유 주식을 매각해 시세 차익만 563억원을 남겼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매입자금 96억원은 이 돈에서 나왔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16억원을 증여받은 여동생 세 명은 삼성 계열사들이 포기한 전환사채, 당시 8만5천원짜리를 7700원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총 120여만주를 사들여, 에버랜드 전체 지분의 64%를 차지했다. 이재용 씨 지분만 25.1%,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1대 주주를 차지했다. 이재용 씨가 60억원으로 출발한 후 연매출 1백41조원, 자산 230조원(2006년 기준)의 삼성그룹을 지배하면서 납부한 증여세는 고작 16억 원이었다.

작년 5월29일 대법원은 삼성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삼성의 후계 구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걸림돌을 제거해주었다. 그리고 작년 연말에 삼성 전무로 있던 이재용 씨는 부사장(COO)으로 승진하여, 직원 18만 명, 자산 규모 180조원의 삼성그룹의 사실상의 수장이 되었다.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 세습 프로젝트가 완료됐다.

▲ SBS 사옥 ⓒ 미디어스
부자 세습은 민영방송 SBS에서도 순항 중이다. 윤세영 회장은 SBS를 통해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골몰해왔고, 아들 윤석민에게 어떻게 하면 대물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북이 화폐개혁을 단행해 세습을 준비했다면 윤세영 회장은 지주회사 설립을 통해 세습을 준비했다. 북이 ‘인민생활 안정과 향상’과 ‘경제관리체계와 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면 윤세영 회장은 ‘방송의 공익성 강화’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윤세영 회장은 2008년 2월 SBS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두 단계를 거쳤다. SBS를 방송사업부문과 투자사업부문으로 7:3 비율로 하되, SBS와 SBS홀딩스로 인적 분할하여, SBS 지배주주인 태영건설이 SBS와 SBS홀딩스 양쪽 모두에서 30%의 주식을 소유하는 1단계. 그리고 분할된 SBS에서 태영건설의 소유 주식 30%를 SBS홀딩스로 철수하는 2단계.

이로써 윤세영 회장은 1인 소유주식 상한선 30%로 제한된 방송법을 피해갔고, 태영건설은 SBS홀딩스의 주식 60% 이상을 소유하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SBS홀딩스는 SBS 주식 30%, SBS콘텐츠허브 75.1%, SBS골프 52.2%, SBS스포츠 51%, SBS인터내셔너 100%를 소유하는 지배주주가 되었다.

윤세영 SBS홀딩스 회장은 SBS 이사회 회장이고, SBS홀딩스의 대표이사(부회장)는 윤세영 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태영건설 대표이사이며, 윤석민 태영건설 대표이사는 SBS홀딩스가 지배주주로 있는 SBS플러스, SBS골프, SBS스포츠의 비상근 등기이사이다. 윤세영.윤석민 부자는 지주회사 SBS홀딩스를 통해 강력한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SBS 당기순이익은 77억원인데 SBS플러스는 152억원, SBS콘텐츠허브 50억원, SBS홀딩스가 213억원을 기록했고, SBS홀딩스는 213억원 중 16.2%에 이르는 34억6천만원을 현금 배당으로 유출했다. 2009년에도 미디어홀딩스 당기순이익 231억원 중 12%에 이르는 34억원을 현금 배당했다.

북에서는 권력기구를 통해, 남에서는 편법 승계와 지주회사라는 합법적인 제도를 통해 제각기 부자 권력 세습이 이뤄지고 있다. 이 사이에 세습할 게 노동력밖에 없는 이 땅의 아버지들은 절망스럽다. 40세의 한 아버지는 흑진주 3남매를 두고 바다로 뛰어내렸고, 나이 43세의 한 아버지는 11살 아들과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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