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파-계층도 피하지 못할 우리 세대 숙제”라는 질문이 있다고 하자. 어떤 키워드가 답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내놨고, 동아일보는 보수진영이 프레임을 선점했다고 논평했다.

7일자 동아일보에 “공정사회, 어느 정파-계층도 피하지 못할 ‘우리 세대 숙제’”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공정사회’ 아젠다는 이념의 중간지대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중간지대를 넓혀가면 진보진영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정리한다. 기사가 노리는 진보진영의 타겟은 지난 달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제안한 ‘사회복지 부유세’ 신설이었다. 민주노동당의 고안물이었던 부유세의 제기는 민주당 내에서도 편향 논란이 있어 차기 대선 구도를 놓고 치열한 가치 경쟁이 예고된다고 짚었다.

▲ 동아일보 7일자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라디오 연설에서 “추석을 앞두고 더더욱 시민들의 그 아픈 마음을 더 느끼고 있다.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라고 밝혔다. 5일에는 “(공정사회는) 사회지도자급, 특히 기득권자에게 지켜져야 할 기준이며 아마도 기득권자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고도 했다. 공정사회라는 기표는 있는데 자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기의는 없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라는 외시적 문제를 “어느 정파-계층도 피하지 못할 우리 세대 숙제”라는 공시적 층위로 끌어낸 후 서둘러 프레임 문제로 둔갑시켰다. 여기서 신화적, 이데올로기적 의미 작용이 이뤄진다. “성장의 온기가 아직 골고루 퍼지지 않아 마음이 무겁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오버랩된다.

“대통령이 연일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청와대와 정부, 권력이 공정하지 못한 것에 문제의 초점이 있다”는 야당의 반박은 군색하고 초라하다.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의 손 따라 둔 응수에 불과하다.

기사는 민주당이 사회복지 부유세와 같은 좌편향적 정책을 펴기에 한계가 있을 것, 보수진영의 상징인 ‘성장’의 가치도 외면할 수 없을 것, 그러므로 진보진영의 설 자리는 좁아지게 될 것이라며 가치 경쟁에서 보수진영의 우월적 지위를 유도한다. 말하자면 동아일보는 공정사회라는 기표를 캐치하여 잽싸게 진영 테제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같은 단정은 ‘공정사회’ ‘공정성’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을 부른다.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공정성의 질적 접근을 봉쇄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공정하지 않는 계급 적대의 요소를 낡은 진영 테제 안으로 가두어놓는다.

근대적 공정성에 대한 처방은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대화를 통한 공동체 감각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타인을 생각하는 제3의 위치가 발견되는 질적 공정성의 확장에 있다. 이는 주관적이며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근대적 저널리즘의 관습이었던 이성 중심적 공정성이 아니라 타자의 감각적, 감정적 개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소통하는 공정성을 의미한다. (아렌트)

대통령이 추석을 앞둔 서민의 아픈 마음을 헤아린다는 연설을 하고, 그 아랫것들이 대학 수시모집이나 중앙정부 각 부처 산하 단체 지자체 등에 정실인사나 보은인사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는 상명하복의 노력으로 공정사회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도 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공정한 사회와 관련해 갑자기 높아진 엄격한 잣대로 과거 관습적으로 허용됐던 부분까지 재단해서 인민재판식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며 경계하고 나섰다.

서민이 아프게 된 구조적인 문제를 제3의 위치에서 소통할 수 있는 특정한 장치를 마련하거나, 공론장을 통한 숙의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노력없이 ‘공정성’과 ‘공정사회’는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질적 공정성에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다.

동아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를 “어느 정파-계층도 피하지 못할 우리 세대 숙제”로 단정한 후 서둘러 중간지대를 향한 보수와 진보의 낡은 진영테제로 프레임을 짰다. 이 프레임 안에 현실에 존재하는 공정하지 못한! 불공정한! 수많은 적대!들을 가볍게 포섭했다.

그렇다면 다시 “어느 정파-계층도 피하지 못할 우리 세대 숙제”라는 질문이 있다고 하자. 어떤 키워드가 답일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