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참사’에 정권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통계청이 2018년 7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는데 취업자 수 증가가 고작 5천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요일인데도 19일 당정청은 한데 모여 긴급회의를 열아야만 했다.

통계청 발표는 한국 경제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40대 취업자 수가 가장 많이 줄었다는 부분이다. 40대는 우리 경제의 ‘허리’에 해당하고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도소매업 숙박업 제조업 등에서 임시직 위주로 취업자가 감소했다는 점이다.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 흐름이 뚜렷하다는 게 대다수의 해석이다.

문제는 이게 놀랍게도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40대, 임시직, 제조업 건설업 숙박업 도소매업 교육서비스업 등 위기와 노동시장 양극화는 부분에 따라 멀게는 지난 정부로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다급해진 이유는 대외적 상황이나 인구구조의 변화, 심지어 날씨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핑계(?)를 댈 소재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부는 “예상보다 더 좋지 않다”고 나름 설명하고 있으나 이런 점에서 오늘의 상황은 이미 예견되고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올 상반기를 지나면서 분명해진 정권의 태도 변화를 보면 그렇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나 주52시간 근로에서의 처벌 유예, 인터넷 전문은행으로 대표되는 규제완화 드라이브는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시점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통계청 발표에 때맞춰 보수세력도 들고 일어났다. 다른 외부의 변수가 없는 만큼 지금과 같은 상황은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장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으로부터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공약을 포기해야 하고, 이를 가로막는 ‘운동권’ 출신 참모들의 배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19일 당정청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이와 유사한 상황인식을 드러냈다. “그간 추진한 경제정책의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할 경우 개선 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다만 여당 관계자들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틀은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편 것으로 보도가 되고 있다. 보수언론은 이런 구도를 근거로 김동연 부총리를 ‘탄광의 카나리아’로 묘사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용상항 관련 긴급 당정청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제라도 소득주도성장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보수세력의 이런 주장이 과연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정치적 논쟁이 경제주체들에게 부정적 심리효과를 일으킨 점이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의 정부 정책이 ‘고용참사’를 불러올 정도가 되는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이해찬 의원이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년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성장잠재력이 매우 낮아져서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는 그래서 절반의 진실이 있다. 언론은 이를 전형적인 ‘남탓’으로 다루고 있으나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일을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 아닐까?

사실 최저임금 인상 외에는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부를만한 뭔가가 제대로 실행된 일도 없지 않느냐는 거다. 소득주도성장의 입안자로 불렸던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다른 것도 아닌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관한 논란 때문에 물러났다는 것도 그렇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의 수호자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봤을 때는 정권 핵심인사도 아닐뿐더러 이 지면에서도 익히 언급했듯 정부 주도의 정책과는 거리가 먼 주주자본주의론자이다. 굳이 따지자면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다루는데 적합한 인사인 것이다.

마찬가지 성향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전담한다면서도 대기업에 자율적인 지배구조개선을 주문하는 선에서 나아가지 못하다 애꿎은 참여연대 등을 혁신의 걸림돌로 지목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앞서 홍장표 전 수석의 후임으로 등장한 관료 출신 윤종원 경제수석은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벌개혁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고 자평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취업 비리 등 검찰 수사로 초토화됐고 정부의 태도가 대기업 의존적인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을 함께 볼 때 이 정부에서 경제민주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거의 끝나지 않았나 한다. 그 외 분야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부터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주문인가? 과거의 보수정권이 선택한 길로 다시 가라는 것이다. 무너진 40대 고용을 만회하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 등의 단기부양에 나서야 하고, 부동산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해야 하며, 얼마 안 되는 일자리를 나눠 갖기 위한 노동유연화가 추진돼야 한다. 기업의 활력을 살리기 위해 법인세 인하 역시 다시 단행해야 한다. 그러면 대기업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도 내이긴 하겠지만, 정권이 그토록 목말라 하는 일자리 창출로 보답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해법이 만들어 낸 세상에 이미 살고 있다. 따라서 실패한 길을 다시 가는 건 답이 아니다.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 정권이 약속했지만 아직 손도 대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경기부양이나 산업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더라도 재벌의 선의에 기대면서 약자의 희생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면 사회적 합의의 틀이 실효성을 가져야 하고 여기서 도출된 합의가 각 경제주체에 강제력을 가져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은 현실적으로 이런 형태의 사회적 합의 없이는 결실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것들이 분명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금껏 제대로 추진된 바는 없다.

아울러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 13일자에 실린 글에서 “2018년 한국은 내수 침체와 경기 둔화가 우려되고 취업자 증가는 부진하며 대외적인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거시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적자를 감수하고 돈을 더 써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관료들도 이런 진단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는 확장적 재정 운용에 대해 말하면서 장기적인 증세 논의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증세를 통한 사회안전망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증세 논의 자체가 쉽지 않다. 종부세와 임대소득,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듯 하다. 전문가들은 그 다음 논의 대상으로 소득세를 꼽는데 중간층 여론에 대단히 민감한 현 정부의 특성상 ‘면세 비율 40%’ 대목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안 되니까 하지 말자는 것은 패배주의다.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위한 정책 어젠다의 기획과 조정(sequencing)에 나서야 한다. 부총리가 남 얘기 하듯 한 마디 흘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무게 중심을 잡지 않으면 우왕좌왕하다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경제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한 김영삼 정권의 경우 내내 ‘방향 전환’을 하느라 경제부총리는 6번, 경제수석은 5번 바뀌었다. 어떤 의미로든 이 전례를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 소득주도성장이 애초에 대통령도 믿지 않았던 수사(rethoric)에 불과한 것으로 귀결된다면 그런 정치는 곧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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