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8월 6일자 2면
레쳇은 한 쪽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톱니바퀴이다. 이미 돌아간 바퀴는 되돌려지지 않는다. 2007년 4월에 체결된 한미FTA 협상에 ‘레쳇’ 조항이 있다. 국가간 FTA에 있어 레쳇 조항은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사용하되 오직 개방과 자유화만 보장한다. 협정 이후 협정과 관련한 법률 재개정이 필요해도 협정 당시 맺은 수준 이상의 규제를 강화하거나 세율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시민들은 앞으로 미국식 표준화에 맞추어 삶을 설계해야 지혜로운 처세를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체득했다. 결정되어버렸고 다시 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1년 전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불법으로 통과시키고도 느긋했다. 야당 의원들이 각 법률안 가결선포행위를 한 국회의장을 상대로 헌재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 각하, 인용 어떤 결정이 나오더라도 다음 대비책이 있었다. 되면 되는 대로 밀어붙이고 안 되면 다시 국회 표결에 부친다는 거였다. 시민들은 지금껏 피땀으로 이루어온 민주주의에 대한 괴리감을 체감했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인 민주주의의 형식적 요소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시민의 사회적 권리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는 악화되는 상황을 목도했다. 다수결이라는 물리력이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민주주의가 다수결에 의해 압도되는 것, 다수결의 힘이 시민의 사회적 권리의 질을 악화하고 심지어 파괴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작년 10월29일 헌재는 절차의 위법을 분명히 했지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일단은 방통위의 시행령 등 후속 조치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헌재가 절차에 관해 위법 판결을 하면서 효력에 관해 기각 판결한 것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배하는 것이었다. 헌재는 입법부의 재투표와 대리투표라는, 절차와 원칙 위배의 비난을 무릅쓰고 목적을 관철하는 실력행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시민은 과정과 절차야 어떠하든 경쟁과 효율을 극대화해 결과에 도달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처세를 배웠다. 기만과 술수, 거짓과 폭력을 통하더라도 결과에서 이기면 된다는 시대정신을 체득했다.

행정부와 입법부와 헌법재판소가 오늘날 이같은 생존의 원리와 처세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데 이를 거슬러 살아간다는 건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최선보다는 차선을, 차선보다는 차악을 찾게 되고, 소극적 반발을 통한 정당성과 회피의 불가피성을 찾기 십상이다. 완강한 저항은 때때로 원칙주의로 회자되고, 아름답지만 실리가 없다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한다. 사실에 관한 진실에 접근하거나 과소대표되는 사회구성원의 편에 서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유무형의 압력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방통위는 이달 중 종편채널사업자 심사기준과 선정방식을 담은 기본계획안을 상정하고 공청회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었다. 출근 한 달이 채 안 된 양문석 방통위원은 지난 4일 “헌재가 민주당이 제기한 부작위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종편 진행을 미뤄야 한다. 민주당이 이기면 종편 논의는 끝나는 것이고, 민주당이 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된다. 모법인 방송법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시행령 집행에 들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미 1년을 훌쩍 돌아버린 레쳇 톱니를 원점으로 되돌려놓겠다는 기세인데, 문득 이 이야기를 전해들을 나머지 방통위원들의 표정과 심경이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양문석 위원은 지금 세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하나는 종편을 레쳇으로 기정사실화하여 스탠바이하고 있는 종편예비사업자와 미디어 업계에 심리적 충격을 가한 점, 하나는 수적으로 안 될 게 뻔하다는 일그러진 민주주의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맞서고 있다는 점, 하나는 아름답지만 실리가 없다는 비아냥까지 감수한다는 점이다. 사회 실천과 투쟁의 영역에서 정책 집행과 논쟁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 양문석 방통위원, 첫 활약은 일단 합격점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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