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의원이 발표한 반성문, 두 개의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하나는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 좌초, 대연정, 한미FTA 추진 등 주요 현안이 진행되던 당시 방관했던 자신을 돌아 본 점, 그리고 듀크 대학 연구소에 머문 동안에 금융위기를 목도하며 신자유주의가 서서히 침몰하는 거대한 타이타닉호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 점이다.

정동영 의원이 쓴 반성문은 반성의 지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 한미FTA 추진에 대해 심각한 검토와 고민없이 비켜서 있었다며 반성했다. 한미FTA를 추진했던 참여정부 인사들, 특히 국민참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반성의 언저리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운동의 적극적 역할론을 제기했던 희망과대안의 한 핵심 간부는 파병이나 한미FTA에 대해 “파병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한미FTA도 비준만 남은 상태다. 지나간 것을 지나치게 따져서는 안 된다”며 손사레를 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한미FTA 추진 당시 당의장직을 수행했던 정동영 의원이 시기와 관계없이 잘못을 시인한 것은 그 자체로 귀감이 될 만하다.

참여정부 신자유주의 정책 비판의 요체는 파병-전략적유연성-한미FTA-비정규직법으로 압축된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 의원이 기왕에 반성의 대상을 열거할 것이면 분양원가 공개, 대연정, 한미FTA가 아니라 비정규직법 개악을 포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동영 의원은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의 10년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850만명, 자영업자 600만명, 농민 400만명이 몰락의 위기에, 실업자 400만명이 집집마다 넘쳐난다고 했지만, 이 원인을 IMF 때 김대중 대통령이 눈물을 머금고 서명한 ‘각서’ 탓으로 돌려놨다. 엄밀하게 하자면 2003년 9월에 잉태되어 2006년 11월30일에 탄생한 비정규직법을 지목했어야 한다.

정동영 의원은 2004년과 2006년 당의장을, 2005년 통일부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았고, 지금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파병-전략적유연성-한미FTA는 한미동맹을 공통분모로 하는데, 정동영 의원은 이들 정책을 추진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중요한 위치에서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이를 의식한듯 “한미FTA를 초고속으로 밀어부칠 때도 그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심각한 검토와 고민없이 비켜서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미FTA를 반성한다는 것이 한미FTA 추진 당시를 반성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한미동맹으로 인해 빚어져온 문제들과 함께 비준을 앞둔 현재의 한미FTA에 대한 의견도 솔직하게 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서라도 상당한 수준의 반성의 표현들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정동영 의원은 민주당 의원으로서는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풀어놨다. 가령 “저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전망과 비전을 갖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했습니다.”라는 대목이다. 거시적이기도 하거니와 현실이 워낙 신자유주의 지배적인 세상으로 바뀐지라 어지간한 사유와 통찰 없이는 발언하기 어려운 일이다. 민주당 의원으로서의 정동영 의원이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에 대비하는 비전, 실효성있는 정책 대안을 어떻게 만들 수 있다는 건지 어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동영 의원은 ‘담대한 진보’를 선언하고 그 핵심으로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을 제기했다. ‘역동적 복지국가’에 대해 “부의 재분배를 넘어 적극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복지국가”이며 “고용, 주거, 교육, 의료, 노후 등 삶의 전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적 경제인권을 보장하고 이를 근거로 경제의 역동성까지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며 곧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이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 재분배에 있다는 점에서 이를 넘기 위한 전략 논의가 이뤄진다면 환영할 일이다. 신자유주의의 업적들, 열거하자면 토지의 상품화와 사유화, 소농 인구의 강력한 추방, 공유.집단.국가 자산 등 다양한 형태를 띤 소유권의 배타적 사유재산권으로의 전환, 공유물에 대한 권리의 억압, 노동력의 상품화와 생산 및 소비의 대안적 형태의 억제, 자산의 전유를 위한 식민적.신식민지적.제국적 과정, 토지의 교환과 조세의 화폐화, 인신매매와 고리대금 및 국가 채무와 ‘강탈에 의한 축적’의 혁신 수단으로서의 신용 체계, 특허 및 지적소유권으로부터의 지대 추출, 한 세대 이상의 계급투쟁으로 획득한 다양한 형태의 공적 소유권(국가연금, 유급휴가, 교육 및 보건의료에의 접근 등)의 완화 또는 제거 등을 들 수 있다.

부의 재분배가 지구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지금, ‘담대한’ ‘역동적’ 같은 수식어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절은 지났다. 반성문을 넘어,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간파했다는 정동영 의원의 사유와 통찰이 ‘경제의 역동성까지 확보하는 전략’에 어떻게 반영될 지 자못 궁금하다.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복지국가’가 이같은 신자유주의의 업적에 반기를 드는 담대함과 역동성을 구체적으로 담아낸다면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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