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난감’한 상황 첫 번째. 서울에 올라온 지 1주밖에 안 돼 서울 지리에 어두운 나에게 ‘김용철 변호사 기자회견 취재’ 특명(?)이 떨어졌다. 장소는 제기동 성당.

짐작컨대 그곳에 온 기자 수는 100여명. 그 좁은 곳에 덩치좋은 남자 기자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어찌어찌 앞자리에 앉았건만 웬걸? 김용철 아저씨 사진찍기에 열중하느라 보도자료 받는 걸 까먹고 있었다. 배포된 보도자료 숫자는 그곳에 있던 기자 수에 비해 너무나 적었다. 그래서 오른쪽 입구에 앉아있는 기자들만 받고 있었다.

“허걱” 외마디의 괴성과 함께 나는 어떻게라도 보도자료를 받기 위해 손을 뻗쳤다. 내 팔 길이에 비해 그곳은 너무나도 멀었으니 보도자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나에게 돌아온 것은 보도자료가 아닌 일요신문 모 기자의 짧은 욕설. 카메라를 가렸기 때문이었다. 귀엽게 생긴 인상과 달리 업무에서 너무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니 “역시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는, 다소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대략난감’ 상황 두 번째. 처음으로 내가 비평기사를 쓴 날이었다. KBS의 <미디어포커스>에 열광했던 내가 비평기사를 쓰게 되다니. 실로 감개무량할 일이었지만 실제로 감개무량할 여유같은 건 없었다. 편집장의 독촉 아래 괴발개발 써냈던 기사.

일단 기사 저장고에 넣었지만 ‘오타’와 ‘논리가 이상한 문장’을 바로잡기 위해 몰래 고치는 중이었다. 그런데 웬걸? 1m도 안되는 편집장의 자리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꽉(편집장이 나를 부를 때 부르는 호칭) 너 뭐한거야아아아” 내가 일단 넣어놓은 기사를 데스킹 하고 있었던 편집장. 15분 가량을 보고 수정해놨는데 내가 내 컴퓨터로 수정하는 바람에 그게 다 날아갔다고 했다. 나는 그야말로 ‘대략난감’ ‘무한 뻘쭘’. 성격좋기 그지없는 편집장일지라도 많이 열받았을 거였다.

‘미디어스 공채1기’ ‘신학림 기자와 동기’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자랑스런 그 이름들과 달리 솔직히 말해서 나는 ‘쌩 초보’. 솔직히 이곳에 올라오기 전 지망생들끼리의 스터디모임에서는 “잘한다” 소리를 곧잘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정말 ‘완전 바보’나 마찬가지란 걸 매순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여행가방 하나 끌고 광주에서 올라왔다. 사범대생이었지만 기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고 수많은 매체 중에서 특히 매체 비평지에 들어오게 된 것을 ‘운명’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 서울 미아리의 자취방에 혼자 누워있는 순간에는 스스로에 대해 참으로 많은 회의가 들었더랬다.

“멋 헌다고 사서 고생을 하냐”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데 네가 세상을 아직 몰라서 그런다”는 부모님의 말씀. 그래도 나는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재밌는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기자 생활에 대해 뭘 알겠냐만. 글쎄. 지금으로썬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로 미디어스 수습기자가 된지 6주가 지났으며 앞으로 탈(脫)수습까지 6주가 남았다. 마라톤의 중간 지점을 돈 것이다. 적응되지 않았던 폭탄주와 술자리가 이젠 적응 돼 급기야 “내일 일이고 뭐고 진탕 먹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내가 공부해야 할 것, 챙겨야 할 사안, 회사가 돌아가는 패턴도 조금씩 보인다.

늘 치열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기자의 길이었다. 아직 미디어스의 ‘꼬맹이 수습’에 불과하지만, 뭐 어떠랴. 앞으로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모든 걸 배워나가면 될 것을. 잘못했으면 수정하고 틀렸으면 다시 배우면 된다. 어린 여자애라고 얕보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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