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사람의 마음으로 장난을 치는 이런 유의 관심 끌기 고백이 많다 보니, 게다가 그 주인공이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개그맨이다 보니 선뜻 믿기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것이 전파를 통해 수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목격하는 공개된 장소, 그것도 진지함이나 진정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벌어진 것이니 믿기 어려울 수밖에요. 김경진이 동료 개그우먼 양해림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한 얼떨결의 사랑 고백은 이렇게 수많은 의문부호와 의심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예인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기엔 너무나 많이, 빈번하게, 꾸준히 속아 왔으니까요. 우린 그것도 알면서 모른 척, 그냥 다 그런 것이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가상 고백을, 연애를, 심지어 결혼을 용인해온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진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관계가 진실인지 여부가 아닌 그저 보여지는 것, 그들 선남선녀들 사이에 벌어지는 알콩달콩함과 애틋함이 차지해 버렸거든요. 결과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냥 저질러보고 다들 몰려들어서 구경하는 것이 지금 TV 속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심의 눈, 또 그게 그렇겠거니 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도 김경진의 어설픔, 발언의 타이밍과 배경을 생각하니 금세 누그러집니다. 게스트를 이리저리 질질 끌고 다니며 실토하라는 강압 아닌 강압에서 나온, 그렇게 심각한 발언도 아니었고 MC들에 의해 내용이 크게 부각되는 것도 아니였죠. 매번 라디오스타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스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툭 던져지고 툭 사라지는 별 것 아닌 화제 던지기였어요. 어쩌면 요즘 방송에서 이렇게 별 것 아닌 연예인의 사랑 고백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유망한 개그맨이 소심하게 털어 놓은, 이런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야 말로 어쩌면 정상적인 것일 겁니다. 그냥 고백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할 뿐, 그들의 사랑이야 그들의 영역으로 맡겨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프로그램의 진행에 몰두하는 것이죠. 김경진이 고백하던 말든, 여전히 내용은 무작정의 달인 김흥국에게 맞춰 있었고, 그 고백마저도 김흥국의 막무가내 발언의 소스로 삼아 그 특징을 부각시키는 것에 불과했었죠.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 둘에 대한 관심이 뒤늦게 불긴 했지만 적어도 프로그램 내에서의 확산과 부풀리기는 보이지 않았어요.

전 이런 쿨한 모습이 좋더군요. 물론 김경진이 다른 사랑 고백의 주인공들처럼 유별난 것도, 이제 막 방송 경력을 시작하는 이들의 사랑에 큰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라디오스타 네 명의 MC들은 게스트의 유명세와 인지도, 영향력에 몹시도 민감한 사람들이고 관심을 끄는 먹이감에 벌 떼같이 달라붙는 사람들이잖아요? 그가 좀 더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뽑아먹고 놀려 댈 수 있을 만한 내용이었겠죠. 그렇지만 김경진의 다소 부족한 인지도가, 김흥국에게 쏠리기 시작했던 녹화 분위기가 만들어준 이 화려하지 않은 고백이야말로 가장 담백하고 재미난 사랑 고백이었어요.

어쩌면 제가 라디오스타나 김경진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과 관심이 있기에 그렇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네 명의 까칠한 MC들이 한정된 스튜디오에서 말싸움을 벌이는 이곳은 무엇을 하든 심각한 진정성을 말하는 것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재미와 웃음에 더더욱 집중하는 이 순혈 오락 프로그램입니다. 한 사람의 고백도, 눈물도, 아픔도 모두 웃음으로 바꾸어 버리는 마법의 공간이죠. 그러니 이곳에서의 호감 표시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어요. 그냥 그것대로 하나의 웃음 소재로 사용되고 쿨하게 사라질 뿐입니다. 그렇게에, 평소엔 연예인의 공개 프러포즈가 꼴시러웠던 저도 유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더군요. 고백하려면 이들처럼. 김경진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라디오스타여서 유쾌하고 즐거운 장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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