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를 맞은 5월 23일 공교롭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렸다. 기묘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퇴보와 진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운명과 같은 인연과 악연들, 노무현과 문재인 그리고 이명박과 최병국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에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대다수 국민들과 등을 진 극우 세력들과 달리, 많은 이들에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하루였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품고 살아갔던 그는 평생 험지에서 정치를 했다. 편안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으로 가 악전고투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한나라당 깃발만 들어도 당선이 되던 시절에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던 그를 많은 이들은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다.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씨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9주기 추도식의 주제는 '평화가 온다'였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졌던 남북 평화 분위기는 이명박근혜 시절 완전한 단절로 이어졌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과 북이 그 어떤 소통도 하지 않은 채 대립각만 세우며 얻은 것은 불안과 공포 외에는 없다. '레드 콤플렉스'가 정치의 모든 것인 집단에게는 불안과 공포가 곧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시대는 다시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 정부가 추진해왔던 남북 대화를 다시 추진했다. 그리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있다. 남북미 정상들의 회담만이 아니라, 종전 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한반도에도 이제 영원한 평화가 자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다. 뿌리 깊게 내려진 냉전 사고가 사라지는 순간들이다.

친일파를 중용해 권력을 이어갔던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는 김일성과 함께 독재를 앞세워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다.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극우세력은 그렇게 우리 사회를 공포 정치로 지배해왔다. 이들과 정반대 편에 섰던 이들은 독재와 맞서야만 했다.

박정희에 의해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만 했던 김대중. 그렇게 대통령이 되어 한반도 평화를 갈구했고,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 중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관계는 누구나 아는 특별한 관계다. 인권 변호사로 맹활약했던 그들은 고난의 길을 스스로 걸었다. 영화 <변호인>으로 더욱 유명해진 부림사건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재판에 변호사로 참여한 최병국은 당시 공안검사였다.

뇌물수수와 다스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지역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8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징역 3~10년을 구형했던 자가 바로 공안검사 최병국이었다. 그리고 억울하게 공안사범으로 몰린 그들을 변호한 이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인권 변호사와 공안검사는 그렇게 2018년 다시 전혀 다른 자리에서 함께 언급되었다.

이명박 첫 재판에 최병국은 변호사로 함께했다. 공안 검사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16, 17, 18대 국회 3선 의원까지 지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안 검사로 무고한 시민들을 범죄자로 몬 자에게 국민을 대표하는 금배지를 안겨주는 일이 정상일 수는 없다.

고인에게 온갖 막말을 쏟아내던 자가 이제는 이명박의 변호사가 되어 변호를 하고 있다. '다스'부터 모든 혐의에 대해 부정하는 이명박, 그리고 그를 변호하는 공안 검사 출신의 최병국 변호사.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에 법정을 함께 지켰다.

인권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동고동락했던 노무현과 문재인. 9년 전 갑작스럽게 친구를 떠나 보낸 문재인은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고인의 9주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부산에서 개최된 APEC에 참석 후 세종시로 이동하던 길에 대통령이 탄 헬기는 다섯 번 정도 봉하마을을 선회했다고 한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있는 동안 다시 찾지 않겠다고 선언한 문 대통령은 고인의 생일날 하늘 위에서 친구를 기렸다.

이명박 비리 중 '다스'는 그저 시작일 뿐이다. 언론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자원외교만 해도 수십조의 혈세가 사라졌다. 4대강과 방산비리까지 더해진다면 그 금액이 얼마가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친구는 인권 변호사로 처음 만나 함께 정치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친구가 못다 한 한반도 영구 평화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한반도 종전 선언은 영구 평화를 위한 시작이다. 그리고 우린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아들 노건평의 말처럼 10주기에는 북한 대표가 참여하는 추도식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 협정을 맺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린 두 친구가 꿈꾸었던 세상을 함께 가게 되었다. 70년대 독재로 회귀하려 노력했던 자들과 한반도 평화를 통해 진정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너무 단순하며 명료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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