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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취소한 안희정을 보며'선의'로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의 연속… 세상 바꾸는 정치 포기 안 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3.09 09:27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8일 예정했던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했다. 검찰조사가 우선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그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전날 나온 추가 폭로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정됐던 기자회견에서 안희정 전 지사가 최초 폭로자와의 ‘특수한 관계’였다는 주장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기자회견은 취소됐으므로 이러한 예상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게 됐다. 안희정 전 지사가 과거 주장한대로 ‘선의’를 가정해 해석해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안희정 전 지사가 보여준 사건에 대한 일련의 대응 과정에 과연 ‘선의’가 작용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초 폭로에 대해 언론을 통해 “합의된 관계였다”고 반응한 게 대표적이다. 안희정 전 지사는 폭로자가 JTBC에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호소한 직후 “비서실의 해명은 잘못되었다”며 입장을 바꿨다. 그런데 “합의된 관계였다”는 해명이 순전히 측근들의 ‘잘못된 대응’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건의 특성상 비서실이든 아니면 측근이든 대응에 나선 사람으로서는 안희정 전 지사에게 사실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 확인 과정에서 최소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어야 앞서와 같은 대응이 가능하다. 이 점을 보면 안희정 전 지사 본인이 직접 사건 정황을 왜곡하려 했거나 최소한 사건의 본질을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사건 직후 안희정 전 지사가 ‘잠적’을 택한 것에 대한 여러 평가도 있다. 애초 일각에서는 안희정 전 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므로 조속한 신병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안희정 전 지사가 측근 10여명과 함께하고 있고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가능성은 일축되었다.

오히려 안희정 지사의 잠행은 어떤 반성이나 부끄러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비상시의 행동수칙을 이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언론을 통해 두 번째로 공개된 피해자가 고용된 곳으로 알려진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에 1톤 트럭을 보내 자료 등을 회수한 것이 그렇다. 안희정 전 지사 측이 회수한 자료의 성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성폭력과 관련한 사실관계가 문서 등의 형태로 남아 있으리라고 보긴 어렵다. 합리적인 추측은 이 연구소와 안희정 전 지사와의 관계 등에 대한 부분에서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거나 업무 또는 보호 감독 상의 관계에 있을 때 적용된다.

여론은 안희정 전 지사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면서 뒤로는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에 대해 경악하고 있다. 앞서와 같은 대응은 이러한 인식을 강화하는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사실 안희정 전 지사의 행동은 여러모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많다. 수행비서를 맡았던 피해자에게 “너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투명하게 비춰라. 그림자처럼 살아라”라고 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렇다. 이러한 언행은 속물적인 여의도 정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표현은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안희정 전 지사 특유의 ‘조직관’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주장하는 운동권 성도덕 파탄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홍준표 대표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해 사건을 흥미 위주의 것으로 만들고 이념을 근거로 한 대립구도를 강화해 오히려 기득권이 재생산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착취의 현실을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홍준표 대표는 청와대에서 진행된 여야 대표 회담에서 안희정 전 지사 사건에 대한 ‘임종석 기획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이는 전형적인 2차가해의 행위이다.

8일 충남도 공보실 관계자가 신형철 비서실장이 보낸 안희정 전 지사의 기자회견 취소 문자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라 흔히 ‘운동권 출신’으로 표현되는, 어떤 이상적인 가치와 노선을 중시하는 사람들조차 성별격차에 따른 모순을 재생산하고 이를 조직논리로 정당화하는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 안희정 전 지사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8일 공개한 성명서의 내용에서도 이러한 정황은 확인된다. ‘김지은과 함께 하는 사람들’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는 이들은 당시 대선캠프 내에서도 성폭력을 비롯한 폭력이 용인되는 강압적 문화가 만연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성과’를 향한 조직적 효율성의 논리로 정당화됐다.

물론 이런 모습은 진보적 정치인이나 운동권 출신들이 좌우하는 캠프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한다”가 아니라 “안희정조차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희정 전 지사의 사건은 물론 가해자에게 법적책임을 엄히 묻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인 또는 세력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기회 역시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나쁜 짓을 서슴지 않는 진보보다는 아예 솔직하게 나쁜 짓을 숨기지 않는 보수가 낫지 않느냐”란 형식으로 유통되며 정치불신을 재생산하는 냉소주의의 논리이다. 보수정치가 항상 나쁜 짓을 하도록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고,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이라는 어떤 ‘전형’은 보수정치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데에서 이 논리는 사실 왜곡이다.

그런데 이 사실 왜곡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가 상기해야 하는 진리는 단지 이런 이유로 어떤 이상을 추구하는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 차원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이 사건을 앞에 두고 해야 할 일은 세상을 바꾸는 걸 그만두는 게 아니다. 안희정 전 지사의 사례를 들어 그가 추구한다고 말해왔던 어떤 진보적 가치 전체를 ‘불매’하는 게 아니라 더 완전한 형태로 실현해줄 것을 기성 정치에 요구해야 한다.

만일 기성 정치가 그것을 끝내 감당할 수 없다면 스스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새로운 정치’의 과정에서도 당연히 또 다른 안희정 전 지사와 같은 인물이 등장해 유사한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때의 우리 사회는 사건의 각 단계에 있어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선택과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오늘’을 당장 만들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부끄러움을 딛고 감히 글을 쓴 것은 이런 이유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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