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미디어행동이 주최한 공청회와 KBS가 주최한 공청회가 연이어 진행됐다.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몇 가지 논의 지점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프레시안 채은하 기자는 △진짜 6500원으로 올리나 △수신료를 더 내면 KBS가 바뀌나 △종합편성채널에 광고 물량을 몰아주기 위한 것 아닌가 △보스턴컨설팅그룹 '24억 보고서'는 공개하지 않나 △전기요금에 계속 통합해 수신료 징수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어떤 형태로든 KBS 안팎에서 논의가 이어진다면 다행인데, 김인규 사장은 달가워하지 않는듯 하다.

미디어행동은 김인규 KBS 사장에게 국민공청회에 공식 초청을 한 바 있다. 김인규 사장은 “수신료 인상금액 및 인상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공청회에 참석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여 불참하니 깊은 이해를 부탁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자리겠지만 기왕 KBS가 주최하는 공청회에 인사말까지 할 요량이었으면 걸음을 하는 게 좋았을 테다.

▲ 김인규 KBS 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KBS 수신료 현실화 공청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규 사장은 KBS 주최의 공청회 인사 자리에서 △국민은 전문성이 없으므로 수신료를 내 전문가인 방송인들에게 운영 신탁 △광고가 수신료보다 많은 기형적 구조 △종편채널 광고 재원이 아닌 공영방송 재원구조 논의 요청 △이사회와 국회 등 대의기구를 거쳐 현실화 수순 등을 언급했다. 초점은 ‘종편채널 광고재원이 아닌 공영방송 재원구조 논의’에 있는데 공청회에서 지연옥 KBS 시청자본부장은 이 부분을 자세히 발표하지 않았다.

보스톤컨설팅사가 이사회 보고 당시 가장 무게를 두었다는 ‘적극적 개선안’(글로벌베스트 공영방송)의 경우 보도.교양 제작비를 올리고 광고비중 0%, 인력감축 14%, 사업경비 절감 9%, 콘텐츠 수입 2014년 사업수입의 15%를 적용해 손익분기점 수신료 6,500원(당기순손실 3조7,834억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계산을 거쳐 당기순손실이 3조7,834억원이 나오는지, 6,500원으로 인상하면 어떻게 글로벌베스트 공영방송이 된다는 건지 설명하지 않았다. 김인규 사장이 “종편채널 광고 재원이 아닌 공영방송 재원구조 논의 요청”임을 입증하려면 이 산출 내역을 공개해야 하지만 밝히지 않았다. 사실상 시민들이 인상안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공청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껍데기만 내놨다는 것부터가 좋지가 않다.

김인규 사장의 태도는 흡사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이 진행한 TV연설의 태도를 닮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하고서도 세종시 수정안, 4대강 등 추진해오던 주요 국정 현안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스스로 접지 않고 국회로 떠넘겼고, 4대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 사업이라는 주장과 함께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인규 사장은 지난 1월 12일 수신료 인상에 관한 공개질의에 답변하지 않았고 국민컨설팅 보고서 발표 때 제안도 무시했으며, 공개하고 공유해야 마땅할 정보공개청구의 주요 내용을 경영상의 비밀 등의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이같은 맥락과 공청회 인사말의 태도로 미루어 김인규 사장은 시민사회와의 교감을 배제한 채 이사회와 국회를 거쳐 결정하면 된다는 생각만 쥐고 있는듯 하다.

신자유주의 통치 양식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합의에 의한 배제의 정치’인데 워싱턴 컨센서스나 민주개혁정부가 가동한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례가 그러하다. 이같은 신자유주의 통치 양식으로서의 사회적 합의는 불가피하게 사회적 배제를 수반한다. 신자유주의의 이념과 속성이 시장을 중심으로 한 강탈에 의한 축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경우에는 ‘중남미 국가의 경제위기 처방 10대과정’이 중남미와 제3세계의 민중을, 노사정위원회의 경우에는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각각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관철함에 있어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라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두었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는 합리적인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한나라당은 작년 7월22일 국회 일방 강행을 결심했고 표결 과정에 재투표, 대리투표라는 희대의 촌극으로 입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려 놓았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논의 사안이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되는 순간 배제의 통치로 전환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애당초 합의 시도 자체가 어려운 사안들, 가령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같은 경우에는 국가적 수준의 배제의 정치가 구사된다. 전반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통치의 특징은 민주개혁정부처럼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기보다 독주와 배제의 정치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농후하다. 지방선거에서 민의를 확인하고도 4대강,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TV연설도 이를 입증한다.

김인규 사장의 수신료 인상 추진 과정 역시 ‘합의없는 배제의 정치’ 양상이 뚜렷하다. 공청회는 패널 구성 등에 있어 사회적 논의의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고, 보스턴컨설팅 용역 과정은 비밀과 음모의 방식으로 진행했다. 공개해야 마땅할 각종 정보공개에 응하지 않았고, 향후 시청자위원회 의견 수렴, 이사회 보고 및 심의.의결 과정도 ‘합의 없는 배제의 정치’ 방식이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시민사회와의 ‘합의 없는 배제의 정치’는 시민사회의 이반과 불만을 부르고, 배제의 정치의 결과가 시민의 이해를 거스르면 저항과 시민행동을 자극하게 된다. 김인규 사장이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합의 없는 배제의 정치’를 구사하는 데는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이사회라는 심의.의결 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6,500원 인상안의 산출 내역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을지 회의스러운데, 이처럼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다룸에 있어 김인규 사장 자신을 대신해 ‘합의없는 배제의 정치’를 감당할 것이라는 판단이고, 자신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더군다나 이사회는 지난 6월 4일 이미 수신료 인상안과 한 세트라 할 조직개편안을 깔끔하게 의결한 바 있는지라 김인규 사장의 자신감은 한층 더 충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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