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자 조선일보에서 아주 웃기는 기사를 봤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이 작성한 만물상 칼럼이다. <르몽드 매각>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내용은 사뭇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런데 왜 이걸 "아주 웃기는 기사"라고 평하는가? 답은, 칼럼을 읽어 보시면 안다.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절로 알게 돼 있다. 직접 찾아서 읽을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요점만 짚어 소개하면 대략 이렇다.

칼럼을 쓴 오 씨는 첫 문단에서부터 권력에 대항한 르몽드의 역사를 꺼내든다. 1957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 르몽드가 프랑스 정부의 알제리 탄압을 낱낱이 추적한 기사를 실은 죄로 정부에 의해 압수수색과 정간을 당했고, 그 후 4년 동안 압수수색 10차례, 정간 19차례를 당했다는 것이다.

여기가 첫번째 웃음 포인트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3월에 태어나서 1940년 8월에 문을 닫기까지 20년 5개월 동안 조선일보가 일제에 저항해서 조선총독부에 정간당했다고 자랑하는 횟수가 무려 4차례다. 4년 동안 19차례 정간과 20년 동안 4차례 정간의 차이가 빚어내는 컨트라스트에 주목하시라.

그조차 신석우, 이상재 등 사회주의 계열이 잠시 조선일보를 장악했던 20년대에 국한됐을 뿐. 놀랍게도 작금의 '방씨 조선'의 문을 연 방응모가 1933년 조선일보 법인을 새로 인수한 후부터는 정간을 당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방 씨 자신의 입으로 "굴근 철쇄로 억매이고 날카로운 총검밋테 떨허 오직 노예적 굴종을 하지 않흐면 안 되어섯다"(1945년 속간사)고 실토한 조선일보가 자랑스런 르몽드의 투쟁의 역사를 감히 입에 담고 있으니 그 언밸런스를 보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오 씨는 둘째 문단에서 르몽드와 드골의 인연을 떠올린다. 드골의 제안해 의해 창간된 르몽드가, 드골이 "공화국에 힘을 실어 달라"고 요구했을 때 '좋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힘인가'라는 사설로 맞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번째 웃으면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조선일보는 권력자가 요구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기는 비겁과 굴종의 달인에 다름 아니다. 박정희의 유신을 묻지마 찬양하고 인간 전두환을 미화하는 낯뜨거운 기사도 이런 저자세에서 나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조선일보의 저자세는 지금도 현행진행형이다.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상천외한 작문까지 서슴지 않는 조선일보의 열정을 보라. 이런 신문지가 권력 앞에 당당한 르몽드의 기개를 논하고 있으니 그 민망함 때문에라도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오 씨는 셋째 문단에서 르몽드 살리기에 나선 독자들의 사랑을 언급한다.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 르몽드에게 정부가 언론통제 일환으로 구독료 인상을 금지하자 독자들이 르몽드 구독운동을 벌이고, 인상하려 했던 구독료와 실제 구독료의 차액을 르몽드에 기부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번째 웃으면 된다. 르몽드를 르몽드답게 만드는 것이 독자들의 전폭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라면,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답게 만드는 것은 상품권이나 경품으로 독자들을 호리는 삐끼짓이다. 오죽하면 '자전거신문' 내지는 '비데신문' '상품권신문'이란 닉네임까지 붙었겠는가. 이런 신문지가 고결한 르몽드의 이름을 대책 없이 입에 올리고 있으니 마냥 우스울밖에.

오 씨는 넷째 문단에서 권력의 친소와 상관없이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르몽드의 신문관을 되짚는다. 대선에서 미테랑을 지지한 르몽드였지만, 프랑스 특수부대가 프랑스 핵실험에 반대하는 그린피스의 해상 시위를 막기 위해 시한폭탄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미테랑을 궁지로 몰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네번째 웃으면 된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선거 때마다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특정 색깔의 권력과 자신을 한 몸 취급하는 권언유착의 산 증인이다. 나아가 '인간어뢰'에서 보듯, 오보 수준을 넘어 소설을 지향하는 환타지의 대가다. 이런 신문지가 '진실의 대명사' 르몽드를 입에 담고 있으니, 그 뻔뻔함에 어찌 가소(可笑)치 않을 수 있으랴.

칼럼 마지막 문단에서 오 씨는 르몽드의 재정적 어려움을 다룬다. "신문이 재정적으로 독립해야 기자의 독립과 언론자유가 보장 된다"고 믿었던 르몽드가 경영난에 빠져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 씨는 "르몽드가 지켜온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는 당부와 덕담으로 칼럼을 끝맺는다.

이 대목에서 소리 내어 실컷 웃어도 된다. 작금의 조선일보가 르몽드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 있다면 넉넉한 돈줄밖에 없다. 그게 조선일보의 유일한 자랑이다. 돈밖에 가진 게 없는 조선일보의 눈에 진실에 대한 목마름밖에 가진 게 없는 르몽드의 처지가 얼마나 딱하게 보였을까.

그래도 그렇지, '권력과 자본의 마름' 노릇을 하는 조선일보 따위가 '정론지의 대명사' 르몽드를 향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운운한다는 건, 염치와 체면이 100억분의 1.46g 정도만 있어도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요, '넌센스 오브 넌센스' '망언 오브 망언'이다.

애당초 두 신문이 가는 길 자체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데, 르몽드 재정이 어려운들 그게 조선일보와 무슨 상관? 입 닫고 가만있으면 중은 갈 것을, 괜히 나서서 비웃음을 자초하는 꼴이라니~! 레 미제라블

- 블로거 虛虛님(http://findingecho.tistory.com/)의 동의를 얻어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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