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한 방송작가가 방송 갑질 관행을 폭로하는 글을 KBS구성작가협의회에 게재했다. 그가 쓴 글에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뉴스타파 '목격자들', 방송PD들의 갑질 관행이 담겨 있다. KBS 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는 방송작가의 구인 구직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KBS 구성작가협의회에 올라온 폭로 글(미디어스)

고발의 글을 올린 그는 2016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송작가로 일했다. 그는 “월급은 160만 원이었다. 6주 간격으로 팀이 돌아갔는데, 그곳에선 24시간 일을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첫 주만 10시쯤 출근해 7시쯤 퇴근하고, 2-5주엔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고 전했다.

잔심부름은 작가의 몫이었다. 그는 “밥·커피 심부름이 주 업무였다. 글을 쓴다는 알량한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하는 곳이다. 나는 심부름꾼이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출근 1주일에 되었을 때, 담당 피디에게 불만을 말했지만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한다.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한다. 다들 그렇게 일해 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라는 답변을 마주하게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근무 환경에 의문을 품고 고용노동부에 고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연락이 온 고용노동부 조사관의 첫 마디는 '방송 쪽은 제대로 처리가 안 될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면 조사 받으러 한 번 나와요'였다. '관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사를 받으러 가지 않았다. 의지를 꺾은 것은 조사관의 태도였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로고와 SBS 사옥(뉴스타파/연합뉴스)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근 전까지 급여를 알려주지 않았다. 첫 출근 날 급여를 묻자 담당피디는 ‘공중파처럼 120만원씩은 못 줘’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2016년 당시 최저임금 기준 월 급여는 126만원이었다.

그는 “뉴스타파는 ‘사회 정의를 지키는 일인데 돈이 넉넉지 않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정규직들은 최저임금을 못 받으면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갑질을 고발하는 그들이 막내작가들에게 갑질을 하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현직 PD들의 인식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KBS에서 술을 마시고 회의에 들어오는 PD가 있었다.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PD였으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당당했다”고 전했다. 이어 “PD를 말리지 못한 조연출이 다른 스태프들 앞에서 대신 죄인이 되었다. 그 사람(PD)은 이번 KBS 파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파업이니 뭐니, 권력에 희생당한 약자인 척 하는 당신들이 웃긴다. 당신들은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 그런 것도 하겠지. 나는 당신들의 착취로 당장 먹고 살 일이 아쉬워 사회에 관심조차 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송작가들의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직원처럼 상주해 일하면서도 보험은커녕 계약서 한 장 요구하기 힘든 작가들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고백했다. 또한 “10여년 전, SBS 막내작가 한 분이 본사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점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노동자의 비참한 선택을 조명해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치부가 두려워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고 강조했다.

방송계갑질 119에도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한 항의가 나오고 있다(미디어스)

익명을 요구한 현직 방송작가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글을 보고 울컥했다. 나와 주변 작가들이 겪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동료들에게 비슷한 사례를 많이 들었다. 게시글을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많은 작가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24일 올라온 해당 게시물은 25일 11시 30분 기준으로 조회 수가 1만 5천을 넘어섰다. 게시 글에 공감한다는 댓글이 이어지고, ‘방송계갑질 119’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BS측은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뉴스타파측은 “정확한 사실을 확인 중”이라며 “현재는 최저임금이나 시간 외 수당 등 노동법을 다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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