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계의 양대산맥 국민MC 유재석과 강호동. 두 사람은 단순 몸값으로는 가치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예능계에 미치는 파급력은 설명이 필요없다. 더 나아가 예능만을 접수했다기보단, 대중문화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떨치는 초특급 스타들이다.

막강한 투톱 유재석과 강호동의 파워게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유쾌한 웃음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 라이벌구도에 작은 분열을 일으키며, 경쟁에 뛰어든 MC가 있었으니, 바로 노장 이경규다.

혹자는 유강의 투톱체제가 무너지고, '유재석-강호동-이경규'의 쓰리톱시대가 열렸다는 섣부른 판단마저 내놓았다. 그러나 유강이란 높은 나무는, 한순간 불어오는 강한 비바람에 쉽게 흔들리거나 자리를 내놓을 정도가 아니다. 1,2년만에 키운 나무가 아니란 것이다. 아무리 <남자의자격>이 <1박2일>과 쌍두마차를 이루어도, 객관적으로 볼 때, 이경규를 유강라인에 놓는 것은 무리가 있다.

90년대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 <이경규간다> 등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절대MC로 군림했던 그도, 한 세기가 바뀌고 유강시대가 열리는 과정을 지켜보며, 소리 없이 쇠퇴의 길을 걸어왔던 게 사실이다. 순간순간 반등을 거듭하기도 했으나, 이경규 주가는 소폭상승 후엔 여지없이 급락했다. 꾸준한 블루칩 강호동, 유재석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이경규는 강호동, 유재석도 누리지 못한 '30년' 예능의 역사가 있다. 버라이어티의 1세대이며, 누구보다 노하우가 축적된 내실 있는 MC가 이경규다. 그의 장점이 궁합이 맞는 프로그램내에서 시너지를 낼 때면, 폭발력은 상상 그 이상을 만들어 낸다.

실질적인 현재의 성적표로는 이경규가 '유재석-강호동' 클래스에 들어갈 수 없다. 다만 오래전부터 꾸준히 축적해 온 히스토리가, 그를 유강반열에 올려놓는 일종의 어드밴티지가 되고 있다. 동시에 변화에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이경규의 결정력이, 여전히 매력적이란 점도 플러스알파다. 이경규를 최고의 MC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이유다.

유재석과 이경규의 덧셈승부!

시상식에서 유재석은, 언제나 선배 이경규를 언급하며 존경의 표시를 마다 않는다. 비록 두 사람이 함께 진행을 한 적은 없었지만, 이경규가 유재석의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종종 출연하며, 격이 없는 선후배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정감을 나누는 선후배 이경규와 유재석은, 유독 동시간대에 자주 맞붙는 상황에 놓였었다. 시청률이란 지표로 승패가 결정되는 매트릭스안에, 이경규와 유재석은 각자의 프로그램을 위해 진검승부를 벌였고. 마지막에 미소는 후배의 몫이었다.

유재석앞에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신 이경규. 대표적으로 <무한도전>과 <라인업>을 들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 컨셉, 연출능력, 캐릭터 등 서로 다른 조건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결과의 몫을 메인MC에게 지우는 건 가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메인MC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경규는 유재석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지만, 뒤집어 말하면, 국민MC 유재석에 맞설 카드는 강호동아니면 이경규밖에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경규는 평일심야, 주말저녁인 프라임타임에서 한동안 활약하지 못하고, 유재석을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침체에 빠졌던 이경규가 김국진, 김태원 등을 대동하고 해피선데이 <남자의자격>과 함께 돌아왔다. 동시간대 유재석-이효리의 <패밀리가떴다>는 막강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절대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차이는 좁혀지기 시작했고, 유재석이 하차할 무렵 <남자의자격>은 <패떴>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현재 일요일에 유재석은 없다. 그리고 강호동의 <1박2일>과 이경규의 <남자의자격>이 일요일 저녁을 점령하고 있다. <일요일일요일밤에>와 <일요일이좋다>는, <해피선데이>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카드 유재석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유재석이 돌아오는 날, 이경규 혹은 강호동과 피할 수 없는 경쟁에 놓이게 된다. 특히 <남자의자격>이 탄탄한 입지를 굳힌 터라. 이번만큼은 유재석이라고 해도 힘겨운 승부를 예고한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를 조금만 넓게 보면, 이경규와 유재석의 경쟁은 아름답게 비춰진다. 단순히 선후배간에 벌어지는 선의의 경쟁이란 측면만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하는 흔적이 잡히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스스로 '최고'에 사로잡혀 안이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아이템이나 트렌드에 휩쓸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경규는 독한 재미를 추구했던 <라인업>의 실패를 교훈삼아, <남자의자격>으로 진정성에 무게를 실었다. 건강한 토크쇼를 지향하는 <놀러와>에 맞서, 출산장려라는 공익아이템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단순히 시청률을 쫓기 위한 선택보다, 새로운 아이템, 긍정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쓴 잔을 마신, <하자고>, <옛날TV>, <기승사> 등의 실패가 있었기에 유재석은 <패밀리가떴다>를 만날 수 있었다. 참돔사건과 같이 잦은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패떴>을 쉽게 포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숨고르기를 선택한 건 적절했다. 변화를 읽고 앞장서서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을, 국민MC란 이름으로 보여 줄 타이밍이 돌아왔다. 유재석이 무슨 컨셉에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지, 기대감을 부풀린다.

언뜻보면 이경규와 유재석은 대결구도로 잡힌다. 그러나 스스로를 더욱 긴장시키고 최선을 다하게끔 만드는 동력은, 역시나 상대방에게서 얻는 자극이다. 프로그램의 폐지는 뺄셈으로 보일 수 있지만, MC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변화를 선도하는 덧셈승부를 해왔기 때문에, 경쟁은 아름답다. 고수들의 공통점은 상대가 강할수록 상대를 이기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란 걸, 유재석-이경규에게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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