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69주년 기념일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세계인권선언 기념식을 개최하고 서울시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의 날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등 여러 곳에서 인권을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과연 인권은 기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인권이 필요한 곳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다.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표결된 지 한 해가 지났고 촛불혁명의 힘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과연 국민들의 삶이 더 나아졌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하늘 가까이 저 높은 곳에는 노조탄압 중단과 생존권을 주장하면서 차디찬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땅에는 현장실습이란 이름으로 사실상의 노동착취를 감수하고 일하다 결국 목숨까지 잃은 청소년 노동자들이 있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큰 적폐 중 하나였던 사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심야에 공권력을 동원하여 주민들과 활동가를 내쫓으면서 사드를 추가배치하고야 말았다. 이 밖에도 추운 겨울 거리에서 죽어가는 홈리스들 문제, 제2의 세월호라 불리는, 광화문 농성장에서 몇 달째 서명을 받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 10년 넘게 삼성의 직업병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강남역 8번 출구에서 2년 넘게 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반올림 투쟁 등 사회 곳곳에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함께 권리를 외치고 있는 투쟁이 2017년 내내 있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7 프로젝트 <그날들> 출간 기자회견 ‘정권은 바뀌어도 인권은 그대로... 지금, 여기, 인권이 필요하다’

매해 한국 사회 인권현실을 돌아보고 다시 현재를 짚어보며, 더 많은 인권의 실현을 요구하기 위한 프로젝트 <그날들>을 발간하고 있다. 2017 프로젝트 <그날들>에는 총 97개 인권의 장면들이 담겼고,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등, 인권의 실현을 요구하기 위해서 12월 9일 1시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출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다산인권센터 등 다양한 인권운동 영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서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이들/소수자가 있다는 제목으로 발언을 하였다. 현장 분위기를 살려 발언했던 내용을 그대로 담아보고자 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주노동조합 사무차장을 맡은 박진우라고 합니다. 내일이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69주년이라고 하는데 이 추운 날씨만큼이나 한국사회의 인권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림자인간이라고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은 무려 200만 명이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는 좀처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올해만 해도 벌써 열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밞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돼지농장에서 똥을 치우다가 가스중독으로 사망한 네팔노동자 고 테즈 바하두르 구룽 씨은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마스크 하나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한 스트레스와 건강악화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노동자 고 께서브 스레스터 씨는 가족에게 남긴 유서 한 장과 320만원을 남겼습니다. 주말이면 태권도를 배우러 다녔다는 네팔 노동자 고 타파 체트리 랄 바하두르 씨는 평소에도 월 400시간 이상 사상공으로 일하며 어깨와 허리통증을 호소했고 조선소 도장 작업 중 추락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가족의 병원비를 보내기 위해 12시간 주야간 맞교대를 했던 필리핀 노동자 고 다요 크리스티앙 구인또 씨는 섬유공장에서 원단 절단작업 중에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광화문에서 추모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던 태국노동자 고 추티마 씨는 힌국인 남성 동료로부터 성폭행을 피해 저항하던 과정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올 한해에 있었던 안타까운 죽음들이고 이마저도 언론과 단체들에 의해서 알려진 것일 뿐, 훨씬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음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죽음을 외면한 채,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다시금 요구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땅에 죽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피부색, 국적, 성별, 비자유무 등에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기자회견 직후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세계인권선언일 맞이 차별금지법 제정촉구대회-우리가 연다, 평등한 세상> 집회를 열었다. 지난 기고 글에도 작성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과정을 통해 결국 우리 안에 차별과 배제를 극복하고 더욱 큰 확장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링크). 빨간색 드레스코드를 맞추기 위해 빨간 모자, 빨간 조끼, 빨간 목도리, 빨간 장화 등을 입고 온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단체 활동가, 정당인, 활동보조인 등의 모습을 보면서 바로 지금 이곳에 모인 우리들이 인권이란 확신이 들었다.

기자회견부터 함께했던 한 이주노조 조합원은 춥지 않냐는 질문에 “괜찮아요, 이렇게 같이 사람들 모이면 따뜻해요”라는 우문현답을 해주었다. 날씨가 좀 추우면 어떠하리, 암만 추워봤자 우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인권은 그대로인 지금 여기, 인권이 필요하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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