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제가 롤러코스터라는 단어에서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날에 타기 무서워했던 대공원의 놀이기구, 한때 귀에 감기는 목소리와 유려한 기타의 조합으로 마음을 빼앗기게 했던 한 국내그룹의 이름, 최근에는 정형돈의 진상 연기를 키득거리며 즐길 수 있는 티비 프로그램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 남자의 자격 이후에 이 단어는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의미와 함께 기억되겠네요. 그것은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성공과 실패, 혹은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 롤러코스터란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남자가 자연스럽게 연상될 것 같네요. 최고의 광대,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실한 남자, 김국진이란 이름입니다.

사람을 웃기는 일이 쉬워 보이시나요? 단순히 망가지고 멍청해 보이는 것만으로, 유치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말장난이나 유행어 몇 마디로 쉽게 보는 이들에게 폭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이런 편견, 혹은 비하는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작정해서 웃기고 싶은 자리에 한 번이라도 있어본 적이 있다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맘에 드는 이성 앞에서 실없는 유머를 날려보고, 갑자기 무거워진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쉴 새 없이 머리를 돌려봐도 적절한 타이밍, 적합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웃음으로 이끄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웃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상태, 하루 24시간동안 매우 짧은 시간만을 차지하는 감정의 기복이니까요.

하물며 그 대상이 기호나 취향도 다르고, 연령과 살아온 모습이 제각각인 불특정 다수를 하고 있다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겠죠. 남을 웃긴다는 것에도 취향이 존재하고, 웃긴다는 단순한 한 마디, 짧은 웃음도 그 안에는 극도의 냉정한 평가와 자신만의 호불호에 의해서 결정되는 어려운 문제니까요. 광대, 혹은 개그맨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카메라를 통해 마주하는 이들, 냉정하고 무서운 상대인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막연하고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단연 정상의 자리에 오를 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거죠.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우리의 심장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진 것이란 이야기니까요.

김국진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가 수줍게 하나하나의 예시를 들면서 털어놓은 것처럼 5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세상으로 지배했던 연예계의, 아니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거인이었고, 많은 이들의 사랑과 열광을 단지 웃기는 것 하나만으로 지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가 그렇게 성공만을 맹렬하게 쫒아서 살아왔고, 그 인생길이 언제나 탄탄대로였다면 지금의 그의 모습을 향한 감정은 조금 달랐을 겁니다. 2010년의 그는 성공만큼이나 참혹한 실패를, 승리자의 기쁨과 영광만큼이나 패배자의 비루함과 아픈 상처를 품고 있는 인생의 선배, 한 명의 당당한 남자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이번 주 남자의 자격에서 그가 털어놓은 롤러코스터라는 인생의 비유가 마음을 건드리고 심장을 움직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얼마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새삼 알게 해준 그 10분이 조금 넘는 짧은 강연동안 전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어요. 그 누구보다도 가파르게 상승과 하락을 경험했으면서도 덤덤히 그 때의 영화와 추락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시간의 무서움과 성공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그 시간을 앞으로 겪어나갈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선배, 그리고 자기 자리 앞의 안전대를 잊지 말라고 자신이 직접 겪으며 알아낸 보물 같은 지혜를 선물할 줄 아는 사람. 네. 이제 그는 그 기나긴 롤러코스터의 오르막내리막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건드릴 줄 아는 대가가 되었습니다.

다시 서서히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어쩌면 이제야 진정한 김국진의,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혹 그렇게 높은 자리까지, 예전의 엄청난 성공을 능가할 만큼의 도약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실망스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지 않을까요. 롤러코스터는 하늘을 날기 위해 운행하는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끝날 결말이 예고된 짧은 여행이기에 그 격렬함 자체도 즐거운 것이니까요. 그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올라감과 내려감, 일어섬과 넘어짐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 그와 함께 여전히 웃고 또 웃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구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미 위대한 남자. 김국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10분이었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왜 이렇게 많은 결방 끝에 누릴 수 있었는지가 새삼 원망스럽고 아쉬울 따름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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